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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작사가 반야월 선생 , '소양강 처녀' 등 주옥같은 5,000곡 남기고…
2012년 3월 26일 오후 별세한 고 반야월(95) 선생이 자신의 유작인 '울고 넘는 박달재'에 잠들 것으로 보인다.
故 반야월(본명 박창오) 선생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가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수 겸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씨가 향년 95세의 나이로 별세한 가운데
송파구 풍납동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5일장 장례)에 빈소가 마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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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한 故 반야월 선생은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1938년 '사막의 애상곡'을 부르며 데뷔 '불효자는 웁니다', '화물선 사랑',
'오동잎 맹세', '꽃마차' 등의 노래로 사랑받은 가수 겸 불세출의 작사가였다.
1945년 이후 남인수, 황금심, 현인, 명국환, 백설희, 권혜경, 이미자,
김세레나, 남일해, 배호, 하춘하, 남진, 나훈아, 은방울자매 등
수많은 가수들의 히트곡에 주옥같은 노랫말을 선사했다.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고개', '무너진 사랑탑', '삼천포 아가씨'
, '소양강 처녀', '만리포 사랑' 등 5천여 곡을 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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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정부로부터 대중 가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훈장 화관장을 받았으며,
2004년 국제 저작권협회(CISAC)로부터 골드 메달, 지난해 ㈔ 한민족 문화협회로부터
한민족 문예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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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울고 넘는 박달재의 무대인 박달재(해발 453m)는 제천시 백운면 백운산에 있는데
기념관 건립 협의를 위해 제천시를 방문한 생전의 고인은 소장품 무상 기증 협약을 한 뒤
박달재를 둘러보기도 했다고 한다.
박달재 정상에 내년 10월까지 건립될 계획인 반야월 기념관에는 고인의 소장품 158점 등
한국 가요 100년의 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될 예정이다.
제천시 관계자에 따르면 "장례 후 곧바로 박달재로 모실지, 아니면 기념관 완공 후 모실지는
미정" 이라면서 " 제천시는 소장품을 아낌없이 기증하신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최고의
기념관이 될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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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의 대표곡 '불효자는 웁니다'는 어머니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눈물을 흘리게 했던 한국인의 대표적인 노래이다.
이 곡은 가슴을 울려오는 노랫말처럼, 이 노래가 녹음된 사연도 눈물이 날만큼 기구하다.
일제강점기, 반야월은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참지 못하고 마냥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그때 한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말했다 "당신이 진방남 아니오."
반야월이 조선에서 최고로 노래 잘 부르는 가수로 합격해 조신일보에 사진과 함께 실린 것이다.
진방남은 태평레코드 회사에 전속가수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그는 가수 수업을 받으며 레코드 녹음을 준비했다.
당시에는 레코드 취입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가야 했다.
진방님은 일본이 싫었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백년설, 고운봉, 신카니리아 등의 가수들과 함께 일본 오사카에 갔다.
가수가 돼 어려운 집안을 일으킬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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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에 피곤한 가수들이었지만 체류비를 아끼기 위해 바로 녹음실로 들어갔다.
그때 진방남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식을 들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전보가 녹음실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진방남과 동료 가수들은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타국에서의 설움을 달랬다.
그러나 녹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방남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통곡하면서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를 녹음했다.
그의 노래 소리는 마치 가슴이 찢어지는 통곡과 같아, 그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었다고 한다. 진방남의 나이 22살 때였다.
머나먼 곳에서 어머니를 잃은 진방남, 그는 9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그때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살아계실 때 효도하지 못한 아픔 때문이었다.
반야월 선생은 그의 대표곡 '불효자는 웁니다' 이외에도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 처녀', '꽃마차' 등
한국 가요를 대표하는 수많은 히트곡을 불렀다.
또 1942년부터는 작사가로 활동하다 마산 방송국 문예부장을 거쳐 한국 전통가요 사랑뿌리 회장 등을 역임했다.
반야월 선생의 본명은 박창오 씨이며, 가수 활동을 할 때는 진방남, 이후
작사가로 활동할 때는 반야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반 선생의 별세 소식에 누리꾼들은 "진방남 선생님 별세하셨군요. 눈물로 가셨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소서" "인생은 초로와 같다더니 반야월 선생님이 별세하셨군요.
불효자는 웁니다 들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나 반야월 선생님 노래 들었습니다. 비보를 듣고 마음이 아픕니다"
"아. 반야월 별세. 큰 별이 졌군요"라는 큰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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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진해농산학교
경력 2003 ~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 명예회장
1999 ~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원로회 의장
1986 ~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 회장
1974 ~ 한국원로가요작가백년동지회 회장
1964 ~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창설, 이사
1951 ~ 마산방송국 문예부장
수상내역 2006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06 제44회 가수의날 최고원로가수특별상
1991 국민문화훈장
1990 KBS 가요대상 특별상
1970 TBC 방송가요대상 특별상
1967 공보부장관 감사장
1966 국제가요대상 작사상
첫댓글 반야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