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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8 /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고후5:14-19)
남미 국경지대의 한 세관원이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통과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고민에 빠졌습니다.
매일 오토바이 뒤에 큰 짐을 싣고 다니는지라 밀수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몇 번이고 검문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보니 하도 답답해서 하루는 할아버지에게 대놓고 물었습니다. “영감님, 절대로 체포하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밀수하는 게 있지요? 대체 뭡니까?”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토바이라네!”….
오토바이에 실린 짐에만 관심을 가졌던 세관원은 정작 할아버지가 타는 오토바이가 매번 바뀌는 것은 알아채지 못했던 겁니다.
이처럼 사람은 대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의 인생은 한번밖에는 살아 볼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인생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또한 예기치 못한 고난과 역경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다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에게 그런 인생을 살도록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사시다가 때론 막막한 인생의 시기를 만날지라도 그런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절대 실패할 수 없는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가 노예로 팔리고 누명을 쓰고 죄수로 감옥에 갇히고 할 때까지만 해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요셉의 인생이 결코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요셉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끝내 요셉에게 축복으로 실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믿으신다면, 나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도 이루어질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대부분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자주 듣고 배웠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에 종종 잘못된 정체성을 가지고 잘못된 인생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로는 구원받았음을 아는데 현실에서는 구원이 주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오늘 본문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은 영어로는 New Creation인데, Create 즉 창조하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의 의미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창조되었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했었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만하면 살만하다 싶었지요. 그때 사탄이 접근을 합니다. 사탄은 사람에게 시험이 있게 했고 사람이 그 시험에 실패함으로써 사람은 에덴의 축복 잃게 되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권세도 잃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사탄은 사람을 향해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게 지금까지도 우리를 향한 사탄의 시험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이 사람을 향해 이런 짓을 하는 동안 하나님은 뭘 하고 계셨을까요? 사탄이 주는 시험 앞에서 속속 실패하는 인간을 보며 하나님은 손 놓고만 계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까지 사탄의 시험이 반복된다면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또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시험 많은 이 땅을 살면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창조주의 은혜가 바로 우리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낭패나 실패를 한 경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말들을 하지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마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엎질러진 물통을 바로 세워 다시 물을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실패했던 인생을, 안 되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영적인 원리가 이렇게 돌아가기에 태초 이래로 지금까지 사탄이 온갖 시험이나 문제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그런 사탄도 하지 못하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만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말 그대로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는 사탄의 시험과 환란을 당하는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임진왜란 중에 모함을 받아 파면당했다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 나가면서 이런 선포를 했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고. 그리고 그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시험과 역경 앞에서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과 배포가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는 아직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그러면 우리도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내가 하나님의 형상인 것을 믿으신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는 고백이 어려운 시험 앞에서나 새로운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늘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도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는 것. 이렇게 하는 것이 올해 교회 표어처럼 한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주 안에서의 새것이라 함이 단순한 개선이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듯이 주 안에 있는 우리 인생에도 모든 것이 새로 창조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나 여러분은 더이상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그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서건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이 말 한마디만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축복과 권세가 회복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최근 신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은 우리의 영은 물론 정신과 마음 게다가 육체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으로 의견을 통일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고 할 때도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거나 변장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은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다만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드러내 주셨을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서 드러나지 않았던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회복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영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면 내게서도 성령님의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면 미움도 근심도 분노도 사라지고 감사와 평안을 회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면 약한 것이 강해지고 나음을 얻고 치유를 받을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을 이루는 세 영역 곧 영과 마음과 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동시에 작동되어야만 우린 사탄의 시험 앞에서도 승리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은 예배에 와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 있다면? 혹은 마음은 간절해도 순종해야 할 몸이 따라 주지 못한다면?
결국 영과 마음과 몸 중 믿음이 부족한 어느 한 부분으로 인해 우리 인생은 실패할 수 있으며 실망할 수 있으며 피곤하고 병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라면 영혼이 잘 돼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어떤 환경에 놓이든 어떤 역경을 만났든 영과 마음과 몸이 동시에 작동하여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순종할 수만 있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은 합력하여 선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힘입어 우리 각 사람의 영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될 것입니다.
이왕에 우리가 믿는다고 할지라면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봐야 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맘이 약해지면 안 됩니다. 영으로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몸으로 은혜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니 잠시 돌아보세요. 이제까지 이 세 영역 중 내가 실패했던 부분은 어느 곳인지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소중합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며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피를 흘려야 할 만큼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다.”
그러니 이제 더는 나 자신을 볼 때나 다른 사람을 볼 때 성취나 공로, 소유, 외모, 실력, 신분…. 등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상대가 나에게 이로우냐 원수냐로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은 비록 실패한 삶일지라도, 실망한 마음일지라도, 심지어 지치고 아픈 몸일지라도, 게다가 사람이 내게 아픔을 주고 원수로 다가오고 괴롭게 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나를 보고 너를 볼 수 있으시기를 권면을 드립니다.
세상이 준 이전 것들에 연연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이전 것이 그 어떤 아픔이든 괴롬이든 실패요 원수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곧 예수님이 믿음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서 이전의 그 모든 사탄의 것들은 지나가게 하시고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의 축복과 권세만 있게 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단…. (한 번 따라 하세요.) “나는 /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 믿음이 흔들리면 우리에겐 더는 소망도 기회도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사람들이 꼭 궁금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형상이고 새로운 피조물인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여러분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믿음이 없어서? 내 죄가 커서? 내가 기도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에 TV를 보니까 최면술사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고 의식이 몽롱해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동물이 될 거라는 말을 하고는 사람들을 깨웁니다. 그러자 깨어난 사람이 정말로 개라도 된 듯이 멍멍거리며 짓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원숭이처럼 까불기 시작했고, 누구는 닭처럼, 누구는 돼지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최면술사가 최면을 풀었고 조금 전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얘기해 주었을 때 사람들이 놀라고 신기해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설사 사람이 최면에 걸려 멍멍 짖는다고 해도 그건 개를 흉내 내고 있는 사람이지 그 사람이 개는 아니지 않겠는가? 구태여 최면이 아니더라도 꼬꼬댁거린다고 사람이 닭은 아니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지 아시겠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최면에나 걸린 듯 사단의 거짓말에 속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내가 지은 죄들로 인해, 나의 순종하지 못함과 제대로 믿었는지에 대한 불안감들로 인해 나는 하나님의 축복 대상자가 아니라는 사탄의 최면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고 새로운 피조물인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 대상자입니까, 아닙니까?
헷갈리지 마세요. 우리가 죄인이란 말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짓된 사단의 최면과 시험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믿게 하는 것이 사탄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너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누구라도 사탄의 시험에 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시험이 왔다고 모두가 다 사탄에게 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 21절에서 권면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예를 들어 누구라도 가난의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나는 가난뱅이다, 나는 소망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언제든 우리를 부유케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난 시험에 맞서 부유해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싸움을 싸우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이쯤에서 한 번 더 질문을 드립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왜 아직도 사탄의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이 이전 것들이 지나가지 않고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것일까요? 아직 예수님이 내게서는 이전 것을 지나가게 하지 않으셔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내게서 이전 것들이 지나가지 못하고 아직까지 있는 이유는 내가 그것들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리,”고.
그런데도 걱정을 붙들고, 분노를 붙들고, 욕심을 붙들고 심지어 싫은 것들과 미운 사람까지를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 보니 그런 것이 불순종이 되어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지나가게 하시는 역사가 나타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선한 힘이고 곧 믿음입니다.
내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내 성취 때문이 아닙니다. 내 자격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것을 회복시켜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린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한은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되고 그 형상으로 누리는 축복과 권세도 다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렸지요? 생각이 곧 믿음이라고. 그렇듯이 몸으로 하는 것 즉 그것이 말이든 행동이든 우리가 행하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만이 아니라 몸까지 믿음대로 행동하려 하세요. 그것이 순종입니다. 몸만 교회 오지 마시고 마음까지 교회에 있게 하세요. 그것이 온전한 예배입니다. 입으로만 기도하지 마시고 마음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려 하세요. 그것이 진정한 간구입니다.
시험을 가져와 육체와 마음에 고통과 고민을 준 것도 모자라 인생의 매 순간을 괴롭게 하는 사탄을 향해 ‘내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이제는 담대하게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향해 또한 절망하고 걱정하고 분노하며 때론 두려움에 떠느라고 미처 스스로를 돌이켜 볼 여유도 없이 낙심만 하던 자신을 향해 이젠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라고. “하나님이 곧 회복시키실 것이다.”라고.
예수님이 그렇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라면 누구라도 새로운 피조물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사탄이 저와 여러분에게 시험은 줄 수 있어도 그 시험에 넘어지고 아니고는 저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이 믿음만이 우리가 사탄의 시험에 지지 않을뿐더러 사는 내내 인생을 승리하게 해 줄 것입니다.
마침 사순절 기간을 지내는 이 한 주간 동안도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어디서든 바로 그 자리에서 이 믿음으로, 이 선포로, 여러분에게 있던 사탄의 시험과 속임수를 이겨내고 영과 마음과 육이 모두 승리해서 여러분의 가정과 기업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승리하는 은혜가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