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넷째 날. 하늘의 접속코드
✼함께 읽을 말씀 : 마가복음 15장 34절
✼함께 부를 찬송 : 복음성가 214장(땅끝에서)
❍ 고통, 하늘의 접속코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개인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수많은 말씀 중에 가장 가슴 아픈 내용이 바로 이 구절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참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구절이자, 십자가의 죽음이 예수님께도 결코 쉽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어쩌면 구원의 길은 이런 절망의 심연(深淵)을 건너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의 고통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리고 슬픕니다.
그런데 성경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이 말씀 또한 단순한 절망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이 구절이야말로 하늘의 아버지와 연결되는 접속코드에 가깝습니다.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참혹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탄식하며 이렇게 호소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다윗의 절망은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있습니다(시 22:2). 신앙인에게 가장 큰 고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고, 고통의 무게가 줄어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무슨 말로 위로하겠습니까? 다윗도 이점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원수의 비방거리가 되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니(시 22:6), 자신의 형편없는 처지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도 가려집니다. 특히나 참을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의 이런 말입니다.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시 22:8)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조롱하던 소리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마 27:43)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요철 구간을 통과하기도 합니다. 고통이 엄습하고, 기도에는 응답이 없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며,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죽음의 구간이 우리 인생에 찾아옵니다. 시편의 다윗도, 십자가의 예수님도, 그리고 또 신실한 성도들도 이런 구간에 머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이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은 당신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이 시편의 종국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 마음이 물 같이 쏟아지고, 뼈가 어그러지며, 입천장이 마르고 무너지면서까지 기도하고 기도하였더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은 목격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와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며, 여호와의 나라와 주재하심을 찬송합니다(시 22:27-28).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처럼 땅끝, 절망의 심연에서 부를 찬송이 여기에 있고, 바로 거기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의 비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처럼 그 말씀을 하시려다가 고통으로 인하여 말씀을 이어가지 못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신 것은 고통의 탄식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염원하는 내용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책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당신을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을 버리는 것이 곧 하나님 자신을 버리시는 것과 같다는 말이죠. 여기서 핵심은 아들의 고통을 아버지도 같이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난 과정 없이 고난을 극복할 수 없으며, 죄의 심장에 서지 않고서는 죄를 제거하지 못하기에 그 자리에 당신의 아들을 세우신 것이고, 거기에 아버지 하나님도 함께 합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죽었을 때 아버지도 울고, 하늘도 울고, 빛도 그 힘을 잃어 흑암으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만세 반석이 열리듯이 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과거 고통을 피해 달아났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의 서신에서는 고통을 피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 자체가 영광이자 또한 하나님의 영의 임재라고 말합니다(벧전 4:12-14). 우리가 고통을 통해서 도달해야 할 영적 좌표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