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4] 이소담(李小淡) - 내 인생 외길에 걸고 5. 전도된 인물들 - 1 1 선생님께서 초기에 백 사람을 리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전도하라는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보다 큰 인물을 전도하겠다고 다짐하고 밥만 먹으면 전도하러 나섰다.
2 그리고 집에 찾아오는 사람을 접대도 할 새 없이 전도만 하니까 하루는 남편이 손님 대접을 그렇게 소홀히 하느냐고 나무라면서도 열심히 전도 활동을 해서 신경성 소화불량까지 없어지니 좋은 현상이라고 했다.
3 식후에는 늘 소화가 안 돼 소화제를 복용해야 했는데 매일 전도를 위해 활동을 열심히 하자 그것도 어느 틈에 먹지 않게 된 것이다. 4 어느 날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만나 내가 원리를 듣고 은혜받은 이야기를 하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사모님, 저 같은 사람도 그곳에 갈 수 있을까요” 하며 쉽게 전도된 분이 송도빈 장로이다.
5 나는 말씀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에 용기를 내어 대환영하며 강의소로 안내했다. 원리도 일주일밖에 듣지 않은 나로서는 들은 것이 그저 좋기만 한 정도인데 한 사람을 쉽게 전도하니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았다. 6 원리를 듣고 좋아하던 송 선생이 며칠간 보이지 않아 미 공보원(당시 씨의 직장)에 찾아가니 “사모님 저 때문에 오셨군요. 염려 마세요. 이미 마음 깊이 결심했는데, 구세군과 집에 시련이 있어서 그래요” 한다.
7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핍박과 비난을 참고 넘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파 처음으로 주님의 사정을 느끼며 “주여 당신의 아들을 보살펴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간절한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8 결국 통일교회에 나가려면 구세군에서 빌려준 집을 내놓고 교회와 완전히 인연을 끊어야 했다. 그들도 송 선생을 위해 40일 기도까지 했으나 조금도 변치 않으니 구세군에서 쫓아냈다. 천막집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철두철미한 신앙생활을 하는 걸 볼 때 예수와 같이 보이며 속세 인간같이 안 보였다. 9 그 후 일이 순조롭게 되어 가정도 복귀되고 송 선생은 최봉춘 선생을 전도하여 최 선생은 일본 개척 전도를 나가게 되었다. 이때 송 선생은 최봉춘 씨의 어려움을 알고 아들의 등록금을 최 선교사에게 보내고, 아들은 학교를 휴학하고 식구 위해 봉사를 많이 하는 분이다. 지금은 기성 축복을 받으시고 세 아들 또한 축복을 받아 하늘이 기억하는 가정이다.
10 12월 29일, 이화전문 가정과 후배이고 내가 생활개선 위원으로 있을 때 부녀 과장으로 있으며 공부도 잘했고 책임감이 있으며, 적극적이고 똑똑한 친구가 부녀 국장으로 있다기에 찾아가니 부재중이라 나오는 길에 같은 사무원이며 후배인 김주화 씨를 만나 붙잡고 전도를 하니 허허 웃으며 “기쁘고 좋은 곳이라면 가지요. 내일 오후에 오세요” 한다. 11 다음 날 약속한 대로 찾아가니 김순화 국장이 “웬일이요?” 하며 반가워한다. 나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전도를 시작했더니 “그럼 갑시다” 한다. 나는 “주화 씨도 약속했으니 두 분이 같이 갑시다” 했더니 “주화 씨는 내일 가는 것이 어때요. 오늘은 내가 먼저 갔다 와 보고” 하니까 “네 국장님 먼저 다녀오세요” 하는 것이었다.
12 그래서 김 국장만 강의소로 안내를 하였더니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곧 식구가 되어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 그에게도 가정적 사회적인 핍박이 따르니 직장도 나오고 좀 더 뜻 앞에 충성하고자 온 힘을 기울여 앞장서 달리던 믿음의 딸이, 지금은 고인이 되어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남은 것은 회한밖에 없다. 13 그 후 전남대학교수인 이필규 박사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을 하나님은 허락하셨다. 대학 봄방학 때 서울 남동생과 같은 대학교수인 이 박사님이 동생 집에 놀러 왔을 때 전도하고픈 마음에 원리 말씀 전한 후 곧장 홍인동교회로 안내하였다.
14 그는 유 협회장님과 장시간 대화를 한 후 아주 교회서 하루를 묵으면서 문 선생님도 뵙고 참진리를 발견함에 기뻐하며 점점 뜻과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15 처음으로 창설된 원리연구회 지도교수가 되어 핍박과 시련 속에서도 잘 견디어 이겨내셨다. 지금의 교수교회 맨 앞자리에 믿음의 터줏대감처럼 대머리 박사님이 자리를 차지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든든한 마음 금할 길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