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수의 의미 >
첫 번째 홍수는 노아 때에 일어났고, 두 번째 홍수는 그리스도의 출현 때에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홍수란 실제 물의 홍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홍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생명수나 목마른 자들이 먹는 물은 모두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는 '말이나 글'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홍수를 만난 사람들은 바로 이스라엘 선민들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이 제시하는 길로 가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4장 9절]
그것은 마치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을 것이나 내가 다시는 홍수로 땅 위에 있는 것을 멸하지 않기로 약속하였으므로 내가 다시는 너에게 분을 내지 않으며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산들이 없어지고 작은 산들이 옮겨진다 해도 나는 네게 인자함을 베풀 것이며 내가 네게 약속한 화평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7~39]
그리스도의 임함이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 홍수 나기 전부터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육신의 욕구를 따라 살면서 그들이 홍수로 인해 전부 죽게 되기까지 그들은 자기들이 죽을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리스도의 임함이 그들에게 노아의 때에 일어난 홍수와 같을 것이다
홍수의 개념을 다르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특별한 일을 만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삶의 경험을 많이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생관, 인간관, 가치관 등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진 이 가치관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입니다. 저녁 7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달을 보며 "달님... 달님..." 하면서 소원을 빌었는데 9시 뉴스에 달에 도착한 우주인이 손을 흔드는 화면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가 논리의 홍수를 만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홍수 전에 불이 내려옵니다. 불이란 전함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멸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는 그리스도께서 "내가 불과 성령을 가지고 왔다."라고 말하며 아울러 "불이 붙었으니 목적 달성을 한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같은 영을 살리는 말씀이 사는 자에게는 성령이 되고, 살지 못하는 자에게는 멸하는 불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완성형으로 말하지 않고 불이 붙은 것을 완성형으로 말하는 것은 멸절 당해야 하는 대상이 자신들의 멸절을 인식해야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공의를 실현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불이 붙음을 완성형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출현이나 공의 실현의 결과로 성령의 법이 출현하여 자기의 기득권이나 자기의 이익에 해를 끼친다고 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승리감에 도취가 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 십자가로 인하여 완성된 공의의 논리가 모세의 행위의 율법을 무력화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의 율법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성령의 법은 홍수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