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5.(토) 정기 답산 안내
일 시: 2022. 10. 15. 8:30 출발
출발지: 대전시 중구 중앙로 77. 학회사무실(중구청역 4번출구 앞)
답산지: 전북 익산시
1. 진주소씨(晉州蘇氏) 소영(蘇瑛)선생 묘
-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212-1.
통덕랑(通德郞:정5품) 소영(蘇瑛)선생의 묘는 이곳 진주소씨 용화산 묘역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점하였다. 이 자리는 풍수지리의 교과서적인 형세의 길지(吉地)로 용(龍), 혈(穴), 사(砂), 수(水), 향(向)에 큰 흠이 없는 보기드믄 곳이다.
비록 대지는 아니지만 이런 좋은 자리를 얻은 것을 보면 소영 선생은 생전에 적덕(積德)을 많이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물형(物形)이, 익산 북쪽 십리에 있다는 “삼마음수형(三馬飮水形)”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 저수지가 있어 융저수(融瀦水)에 융취명당(融聚明堂)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 진주소씨(晉州蘇氏) 소자파(蘇自坡)선생 묘역(墓域)
-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196-1.
용화산 기슭 동쪽에 있는 진주소씨 묘역에는 소자파 선생의 장인 개성왕씨 사과(司果:정6품) 왕석주(王碩珠)공의 묘가 위에 있고 그 앞에 소자파선생의 묘와 아들 및 자손들의 묘가 있다.
소자파(蘇自坡:1451~1524:30世)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완주군 이서면에서 소효식(蘇效軾)공의 장자로 태어나 왕석주공의 외동딸과 혼인하여 외손봉사를 하였다. 1483년(성종14)에 과거에 급제하여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종5품) 등을 역임하고 구례현감으로 임지에서 73세에 졸하였다. 아들 7형제가 모두 벼슬길에 올라 위세를 떨쳤는데 그 중에 5남 소세양공이 진주소씨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조선 전기의 문신 문정공(文靖公)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68~1562)선생은 익산 금마면 출신으로 문장과 시문으로 이름을 떨치고 벼슬이 종1품 좌찬성에 올라 대제학을 겸하였다. 화암서원에 배향되었고 저서에 양곡집(陽谷集)이 있다. 한때 조선의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의 연인(戀人)이었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물형(物形)이 용마음수형(龍馬飮水形) 같다. 여기서 연구할 점은 혈(穴)을 맺는 용(龍)과 혈을 못 맺는 사(砂)를 분별하는 법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점심: 우리맛 황토쌈밥 - 익산시 금마면 용순리 141-1(063-832-3392)
3. 익산(益山) 미륵사지(彌勒寺址)
-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미륵사(彌勒寺)는 백제 무왕(武王) 때 왕비인 사택왕후(沙宅王后)의 발원으로 639년에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임이 석탑 해체 중 내부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의 기록으로 드러났다.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제되었고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로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물형(物形)이 개자형(介字形) 같은데, 부족한 자리라 뒤에 인공동산을 조성해야 하는 등 비보(裨補)할 곳이 많다. 이곳에서는 미륵산의 배(背)와 면(面), 임두수(淋頭水)와 누시수(漏腮水) 그리고 전착후관(前窄後寬)과 전관후착(前寬後窄)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할 곳이다.
4. 청송심씨(靑松沈氏) 2세조(二世祖) 심연(沈淵)공 묘
- 익산시 함열읍 남당리 242.
합문지후(閤門祗候:정7품)를 지낸 심연(沈淵)공은 말년에 경상도 산청현감을 마치고 그곳에 눌러 살다 묻히었다. 아들 심룡 공이 손자 심덕부 공을 한산의 이곡(李穀:이색선생의 父)선생에 유학시키고 왕래할 때 이곡선생으로부터 강릉김씨 사당이 있는 이곳이 명당자리라는 소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심덕부 공에게 이곳으로 옮길 것을 유언하였다.
심덕부공은 1377년에 산청에서 이곳으로 면례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 후 실전되었다. 1715년에 되찾았으나 고비위(考妣位)의 위치도 고증할 길이 없어 1720년에 상하 두 봉분의 중간에 비를 세웠다.
이 묘를 쓰고 22년 뒤에 손자, 41년 뒤에 증손자, 89년 뒤에 고손자가 각각 정승이 되었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물형(物形)은 앞에 동지산이 태음금체(太陰金體)의 월봉(月峰)으로 보이니 방해야유형(螃蟹夜遊形) 같다. 그리고 용분삼세(龍分三勢) 중 평지지세(平地之勢)를 생각해볼 곳이다.
5. 함라(咸羅) 마을 삼부자집
-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438.
함라 마을에는 만석꾼이 3명, 천석꾼이 4명, 백석꾼이 20여 명이 난 부자마을이다. 흙 돌담길로 유명한데 옛 담장은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이 마을에는 숙종 때부터 노소(老所)가 있어서, 선행자에게 상을 주고 상하분별을 모르는 자, 불효자, 게으른 자들에게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신 허균(許筠)이 이 마을에서 일 년여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저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이 들어있는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를 저술하였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마을 뒷산인 함라산(咸羅山:239.8m)이 마치 장삼을 입고 염주를 든 스님의 형상인데, 손에 든 시주받는 그릇이 위치한 자리에 함라 마을이 있기 때문에 부자마을이 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즉 물형(物形)이 호승포전형(胡僧鋪氈形)을 말하는 것 같다. 회룡고조(回龍顧祖)와 공배수(拱背水)를 생각해 보아야 할 곳이다.
학회소식: 9월 답산시 윤명옥님 55,000원, 임흥수님 5만원, 조병운님 5만원,
이연희님 견과류, 김진선님 삶은 계란 찬조.
연락처 : 총무위원 백은주 : 010-6520-0942.
2022. 9. 14.
민중원 풍수명리 학회
첫댓글 참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