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① 분리수거》
우리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피한다.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재수 없다!’이다. 하지만 나이가 여든이 되고 보니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우리 부부도 이제는 죽음을 알고 가끔씩 사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자는 이야기부터 ‘유산 분배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도 이야기했다. 자식이 다 같다지만 사실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식이 있으니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지만 써놓은 유서도 없으면 내 뜻대로 분배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유서 써놓고 어디에 두었으니 죽은 다음에 보고 잘 이행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기는 아직 아닌 것 같다. 만에 하나 유산을 똑같이 분배하지 않는다면 애들이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위 사람한테 이야기해보니 왜 골치 아프게 다르게 하냐고 말한다. 할 말이 없다. 우리는 결혼하지 않은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해도 생활에 차이가 나면 적은 아이에게 더 줄 수도 있으련만 아이들 처지에서는 잘 이해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나와 아내의 이야기이고 지금부터는 죽은 사람 이야기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그냥 보통의 죽음이 아니라 혼자 살다 죽은 사람, 그래서 죽은 지 어느 정도 지나 시신부터 유품 정리를 하는 『유품정리사』의 이야기이다.
책 1장에는 열세 사람 죽음의 흔적 이야기이다. 물론 남긴 흔적을 보고 저자가 유추하고 쓴 글이니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다. 하지만 흔적만으로도 어쩌면 그렇게 의도하였음이 적절(?)했다고 믿고 싶다.
두 번째 이야기 제목이 [분리수거]이다. 흔히 쓰는 단어이니 눈길이 가지 않았다. 다시 읽으며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의뢰인은 집주인이 아니라 동네 부동산 중개업 사장이다. 빌라 1층은 필로티 형태로 주차장이고 2층부터 층마다 6개의 원룸이 있는 20세대가 넘는 빌라이다. 사고가 난 것을 입주민이 안다면 모두 이사 간다고 하니 남모르게 처리해달라며 간단하지만 정확하게 용건을 잘 이야기해 주었다.
아래는 책을 그대로 옮겼다.
분리수거
정말 이 안에서 사람이 죽은 채 석 달이 흘렀을까?
삼 층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를 기다리는 것은 복도만큼 기다란 어둠과 정적뿐이다. 설명을 미리 듣고 오지 않았다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런 낌새도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다. 문 앞에서도 죽은 자의 응당한 자기소개 같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복도의 막다른 벽에 붙은, 시간을 두고 이따금 분사되는 방향제의 레몬 냄새가 어슴푸레 느껴질 뿐이었다.
건물은 일 층이 들어설 공간에 ‘필로티piloti’라고 부르는 육중한 기둥을 세워 주차장을 만든 전형적인 도시형 생활 주택이다. 층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총 여섯 개의 원룸이 좌우로 마주 보는 구조. 이 좁다란 건물에 스무 세대가 넘는 독립 가구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건물과 어깨동무하는 주변 건물도 구조가 엇비슷하다. 이 건물은 거대한 공장 단지를 둥그스름하게 에워싼 원룸촌의 남쪽 테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여섯 개의 숫자를 누르자 신호음과 함께 현관문 잠금장치가 열린다. 문을 열자마자 복도의 공기와는 상반되는 역한 냄새가 강렬하게, 마치 감당 못할 만큼 많은 양의 고추냉이가 든 초밥을 삼킬 때처럼 코 윗부분까지 순식간에 뚫고 올라온다. 들어서서 문을 급히 닫는다. 내게 일을 맡긴 건물주가 통화를 하며 누누이 부탁한 말이 떠오른다.
-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알면 다 빠져나가요. 절대로
그 건물에 사는 누구도 알게 해선 안 됩니다.
우선 본능적으로 발길이 창문으로 향한다. 숨부터 좀 쉬자. 상황판단은 그다음이다. 하지만 창문은 생각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청록색 천면테이프를 직사각형의 창틀 사방으로 꼼꼼하게 붙였기 때문이다. 바깥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일부러 막아놓은 것이다. 칼을 꺼내 테이프의 한 귀퉁이를 일으켜 세우고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붙잡아 힘주어 천천히 잡아당긴다. “드으윽”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프가 힘겹게 뜯겨나간다. 그 자리에는 가로세로로 촘촘히 직조된 망사가 여분의 본드에 붙어서 뚜렷하게 존재를 남긴다. 창문을 열자 그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자비 없는 세상을 원망하고 죽은 인간조차도 그 자리에 방치된 채 오랫동안 썩어갔다면 그 냄새는 자비가 없다.
죽은 이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밀실. 착화탄으로 자신을 실수 없이 죽이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현관문의 좌우와 위아래 틈 역시 청록색 천면테이프로 꼼꼼하게 막아놓았다. 문 아래 우유나 신문을 넣을 수 있는 원형 투입구도 테이프를 가로로 여러 겹 붙여서 막았다. 화장실의 배수구와 환풍기를 비롯하여 가스레인지 위의 팬이나 싱크대의 배수구까지, 집 안의 모든 구멍을 찾아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신중하게 단추를 채우듯 밀폐과정을 하나하나 거치고, 화장실 바닥에 캠핑용 간이 화로를 놓고 착화탄 여러 개를 얹어 불을 피웠으리라.
침대 매트리스엔 검은색 눈사람처럼 맞붙은 원형 핏자국 두 개가 선명하고 갈색 스타킹을 벗어놓은 것처럼 길쭉한 피부 조직이 오그라든 채 들러붙어 있다. 거울 앞에 놓인 여러 화장품 용기 사이에 사진이 어디론가 사라진 두 개의 빈 액자가 세워져 있다.
화장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착화탄 재를 쓸어 담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
‘화로 근처에 있어야 할 라이터 같은 점화장치가 없다.’
토치램프나 하다못해 제과점 성냥조차 없이 무슨 방법으로 불을 붙였을까? 여느 착화탄 자살 현장에 비하면 화로 주변이 너무 깨끗하다. 구조대원이나 경찰의 현장 감식반이 앞서 다녀갔을 테지만 자살 현장에서 그런 것을 치우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시체를 수습하느라 사용한 보호 장갑이나 신발 덮개, 거즈 따위의 소모품을 바닥에 버려두고 가는 것이 다반사. 쓰레기를 만들고 가는 일은 있어도 줄이고 가는 일은 없다. 집주인은 이곳에 유족조차 다녀가지 않았다고 했다.
의문은 현관문 왼쪽에 놓인 가정용 분리수거함을 정리하며 풀렸다.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구분해두기 위해 네 칸으로 나누어진 수거함에 사라진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불을 피우는 데 쓴 금속 토치램프와 부탄가스 캔은 철 종류를 모으는 칸에, 화로의 포장지와 택배 상자는 납작하게 접힌 채 종이 칸에, 또 부탄가스 캔의 빨간 노즐 마개는 플라스틱 칸에 착실하게 담겨있었다.
자살 직전의 분리수거라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전에 다른 자살자의 집에서 번개탄 껍질을 정리해둔 광경을 본 적은 있지만, 이것은 본격적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착화탄에 불을 붙이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에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고? 그 상황에서 대체 무슨 심정으로? 자기 죽음 앞에서조차 이렇게 초연한
공중도덕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막강한 도덕과 율법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마저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는가.
유품을 담은 봉지와 마대를 주차장으로 내릴 때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키 작은 남자가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다가왔다. 나에게 유품정리업체서 왔냐고 묻고는 자신을 이 건물의 계단 청소를 받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 서른 살이나 됐을까? 착한 분이었어요. 인사성도 바르고.
맨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인데---.
갑자기 말을 쏟아내는 그를 데리고 서둘러 주차장 밖으로 나갔다.
- 매년 설날과 추석엔 양말이나 식용유 세트 같은 것을 준비해서 주곤 했어요.
- 알던 분이셨군요. 뭐라 위로해드릴 말이 없네요. 그런데 우리 이야기를
누가 들으면 안 되니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주세요.
- 예, 저도 알아요. 집주인도 제정신이 아니죠? 자기가 열쇠로 문을 따고
집 안을 봤으니까요. 저는 그 아가씨가 몇 달 안 보이기에 이사 갔거니 했죠.
말없이 떠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좀 섭섭했는데---.
지난주에 제가 청소하러 왔을 때 저기서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내려오더라고요.
가려져 있으니까, 나는 그게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어요.
개나 고양이?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으니까요.
구조대원이 떠나고 나서야 집주인이 내려와서 301호 여자가 죽었다고 했죠.
사내는 담배 하나를 꺼내 들고 불을 붙이는 것도 잊은 채 계속 말을 이었다.
- 아무튼 정성껏 잘 정리해주세요. 남 일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잘 살아야 하는데---. 진짜 남 일 같지 않아요.
건물 청소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종량제 봉투는 착화탄에서 벗겨낸 포장지와
병원에서 받았을 수십 장의 약 봉투로 채워있었다.
앨범과 액자에서 빼냈을 수많은 사진의 모서리가 뾰족한 톱니가 되어
봉투를 뚫고 나갈 듯 날카롭게 찌른다. 그 모든 것이 죽기 전에 스스로 정리한 것이리라.
그녀의 못다 한 이야기, 한숨과 절망이 가득한 사연이 작은 봉투에 고스란히 담긴 것만 같다.
어떤 날은 이 세상의 온갖 할 수 없는 사연이 바람에 실려와
잎이라곤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내 마음을 세차게 흔든다.
그런 날은 작은 봉투 하나 버리는 일조차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