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장 고무신 할 켤레를 샀다.
그 깜장 고무신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고 미처 체면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참, 어이없게도 손바닥만한 그 깜장 고무신이 왜 눈에 들어와 박히는지, 나는 목아래로 꿀꺽 삼킨 침이 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심장에 가서 박히는 것을 느꼈다.
아주 오래 오래 전에 교사 초임 시절에 시골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나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시골 생활이 틀에 박히지 않아 무조건 열심히 선생질(?)을 하였었다.
보리와 밀을 구분할 줄 몰랐던 선생은 시골 아이들에게 되레 놀림감이 되기도 하였다.
굴밤과 진짜 밤나무를 구분할 줄 몰라 또 아이들은 담임인 선생이 무지무지 무식하게 보였을 테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것에 절대 선생을 왕따시키지 않고 잘 보듬어 주었다.
"이것은 보리라예, 보리는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자라에, 그리고 이건 밀, 밀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예."
종알종알 아는 건 다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게 지들이 선생인 줄 착각도 한다. 그리고 뿌듯해 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한 그런 시골 학교 생활에서 더 많은 것을 알고 배우게 되었다, 명문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선생이 되기 위해 교대에서 배우고 익힌 노력 이십여 년 평생 지식이 정말 부실한 공부(?)였음을 알게 되어 밤이 되면 하늘의 달을 보고 헛웃음을 웃기도 하였다. '달님, 당신은 알겠지요 지금의 내 모습을요.'
깜장 고무신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의 집안은 소리나지 않게 참 가난하였다. 쌀보다 보리가 반 넘어 섞인 보리밥을 허연 김치 한 보시기로 맛있게 먹어야 하던 그때,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던 순하디 순한 아이들,
교실 복도에는 신발장이 나란나란 낑겨 있는데, 거기에는 니내 할 것 없이 모두모두 깜장 고무신이 줄줄이 진열된 것처럼 놓여있었다. 수업이 마쳐지면 아이들은 그 나란나란한 신발장에서 깜장 고무신을 꺼내 챙겨 신고 집으로 들로 가 버렸다.
말순이도 인자도, 철규도 종수도, 모두 깜장 고무신이었지만 나는 어느 것이 누구 것인지 구별하지 못했으나 순이도 자야도 철규도 종수도 그들 자신의 깜장 고무신을 잘도 찾아 신고 떠났다.
나는 2023년도에 어떤 민속가게에서 깜장 고무신을 발견했을 때, 그냥 그냥, 눈앞이 깜장 고무신처럼 까매져 버렸다. 울컥 그리움으로 넘어올 것 같은 지난 시절이었다.
내 그리움은 2023년이 1971년을 찾아 간 것이다.
그 깜장 고무신은 그 당시에 보았던 것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그래도 그것은 분명 깜장 고무신이었고, 까만 몸체에 여러 가지 꽃무늬와 당초무늬를 색깔 있게 그려놓아 한껏 멋을 부려 놓았다.
그러나, 그런 무늬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지나간 1971년의 풍광들이 파노라마처럼 휘둘려 내 눈앞을 흔들거렸다.
나이들면 과거를 먹고 산다는 말이 새삼 깨달아진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기에 자꾸만 눈앞이 흐려질 뿐이다.
첫댓글 '참,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