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상의 강정(剛正)
중 석기(釋器)를 제주(濟州)에 안치하고, 전 정승 손수경(孫守卿) 등을 죽이고, 강윤충(康允忠)을 폄(貶)하여 동래현령(東萊縣令)으로 삼았다.
그전에 충혜왕(忠惠王)이 궁인(宮人) 임씨(林氏)를 사랑하여 석기를 낳았었다. 충정왕(忠定王)이 폐위(廢位)되었을 적에 석기의 머리를 깎아 만덕사(萬德寺)에 있게 하였었다. 그 뒤에 원에서 장차 석기를 부를 것이라는 말을 왕이 듣고서 석기를 불러 돌아오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왕은 호군 임중보(林仲甫) 등이 석기를 받들어 물래 불궤(不軌)를 도모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순군옥에 가두고 조사하니, 말이 손수경과 찬성사 강윤충ㆍ밀직 홍준(洪峻) 등 10여 인에 관련되었다. 이에 손수경과 임중보 등을 모두 죽이고 강윤충을 폄하였다.
감찰 대부 손용(孫湧)도 고발당하였다. 그때 손용은 마침 대각(臺閣)에 앉아 있었는데, 왕명을 받든 자가 와서 붙잡아 가려 하니, 함께 앉았던 자들이 모두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오직 지평(持平) 전우상(全遇祥)만이 정색하여 말하기를,
“대관은 비록 죄가 있더라도 마땅히 대의(臺議)가 파한 뒤에 옥에 나가는 것이니, 당신들이 함부로 대각에 들어올 수는 없소.”
하고, 평상시와 같이 일을 다스렸다. 손용이 순군옥에 나아가니, 옥을 다스리는 관리가 임중보에게 힐문(詰問)하기를,
“그대가 손용을 아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여, 드디어 손용이 석방되었다. 왕이 석기를 제주로 귀양 보내면서 사람을 시켜 바다 중간에 이르러 물에 밀쳐 빠뜨리게 하였으나, 석기가 죽지 않고 도망하여 숨었다.
출처: 동사강목
安置僧釋器于濟州 殺前政丞孫守卿 貶康允忠爲東萊縣令 初忠惠幸宮人林氏
生釋器 忠定之廢 祝其髮置萬德寺 後元將召釋器王聞之召還 至是 王聞前護軍林仲甫 欲奉釋器 潛啚不軌 囚巡軍按治 辭連守卿及贊成事康允忠密直洪峻等十餘人 於時 幷斬守卿仲甫等 貶允忠 監察大夫孫湧 亦被告 時湧方坐臺 承命者來 欲執以去 同坐皆錯愕 不知所爲 獨持平全遇祥正色曰 臺官雖有罪 當罷臺後就獄爾 不可直入臺中 治事如常 湧詣巡軍 獄獄官詰仲甫曰 汝識孫
湧乎 對曰 不知 遂釋之 王故釋器于濟州 使人至海中 擠之於水 釋器不死亡匿
[동사강목 제14하 丙申 恭愍王 5年 6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