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② 쌍쌍바》
이제 막 문을 열어 인적이 드문 백화점의 월요일 아침. 의류 매장 앞에 설치된 널찍한 가판대 위에는 저마다 다른 색깔과 무늬의 옷들이 가지런히 접힌 채 열을 맞춰 누워 있다. 중년 여성 두 명이 잠시 그 앞에 머물다 떠나자 정돈된 세계는 온데간데없어진다. 멀찌감치 서 있던, 머리가 길고 앳된 점원이 다가와 빠른 재생 화면처럼 능숙한 솜씨로 옷을 갠다. 태극권을 하듯 무심하지만 정확하고 낭비 없는 손놀림. 옷들이 널브러진 가판대에 다시 태초의 질서가 부여된다.
모퉁이에서 화장실에 간 일행을 기다리며 그런 장면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녀의 방이 떠오른다.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된 단칸방, 그녀는 그 방에서 일생의 마지막 청소와 정리 정돈을 마치고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모습에 비하면 체구가 건장한 노인이 건물 앞에서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이라는 요청에 따라 부랴부랴 길을 나섰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골목은 벌써 어둑어둑했다. 죽어버린 여자로 인해 다른 세입자들의 아우성을 감당하느라 얼마나 괴롭고 난처했는가에 대한 격정적인 토로를 마치고, 건물주는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열쇠를 건넸다. 체구에 비하면 가늘고 긴 손가락, 손등을 감싸는 잔털조차 밀가루가 묻은 것처럼 새하얗다.
지하 복도 끝에 있는 방에는 지독한 냄새가 기다리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머리 위에서 타이머 전등 또한 오래 참았다는 듯이 “팟”하고 불을 밝힌다. 방 한쪽 벽에 붙어 있을 전등 스위치를 찾을 새도 없이, 순간적인 빛 아래 비극적인 상황은 숨김없이 전모를 드러낸다. 방안에는 도시가스의 배관이 정사각형 천장의 한쪽 변을 따라 길게 연결되어 있고, 그 파이프에 일 미터 정도 길이의 주황색 빨랫줄이 끝마디의 실타래가 풀어진 채 매달려 있다. 그녀는 그 파이프에 묶은 줄로 고리를 만들고 스스로 목을 매 죽은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빨랫줄에 맞닿은 벽지는 거꾸로 그린 거대한 물음표 모양으로 피가 검붉게 물들어 있다. 무엇이 그녀를 자살로 이끌었을까?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 빨랫줄의 매듭을 하나하나 푼다. 이 줄을 푼다고 죽은 이의 가슴에 굳게 맺혔을 슬픔마저 풀리지는 않겠지. 피에 젖은 벽지를 뜯어내고 바닥에 흥건히 젖어 있는 이부자리를 걷어서 위생 봉투에 밀봉한다. 참혹한 흔적을 어느 정도 치워내자,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그 방의 구체적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만 지운다면 아주 깨끗한 방이다. 먼저 옷걸이용 행어가 눈에 띈다. 바지는 바지대로 예리하게 날을 세운 채 일렬로 걸려 있고, 코트나 점퍼는 보관용 커버가 씌워져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달려 있다. 옷은 행어의 가로 봉을 따라서 긴 것부터 짧은 것 순으로 점층적인 형태로 걸려 있다. 플라스틱 서랍장에는 양말과 속옷이 색깔별로 구분되어 있고 부채꼴로 접혀 수직으로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실로 완벽한 정리 정돈이다. 샴푸나 보디클렌저 용기의 펌프 노즐이 향하는 방향도 어디에서건 정북방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한 곳만을 향한다. 문득 화장실 거울 앞 양치용 컵에 나란히 놓인 칫솔 두 개가 눈에 띈다. 혼자가 아니었던 것일까? 면도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화장실 벽면에 붙은 플라스틱 수납장 안에는 남성용 면도날 카트리지 세트가 놓여 있고, 그중 두 개는 비어 있다.
부엌살림을 치우면서 그녀와 함께 머물던 이의 존재가 드러났다. 혹은 존재의 부재가 드러났다고 할까. 싱크대 위의 수납장과 서랍 안에 숟가락과 젓가락, 밥공기와 국그릇은 모두 쌍을 이룬다. 인스턴트 라면도 종류별로 두 개씩, 즉시 데워서 먹는 카레도, 바나나처럼 구부러진 과자도, 찻잔은 물론 찻잔 아래 까는 티코스터조차 두 개씩이다. 남은 술은 한 병이어도 소주잔과 맥주 컵만큼은 저마다 두 잔씩….
저 혼자서 스스로 삶까지 끝내버린 싱글 여성에게 남겨진, 먹는 데 쓰는 살림만큼은 싱글이 아니라 더블인 셈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했어도 그와 함께 먹는 데 쓰는 물건만큼은 차마 버릴 수 없었을까? 먹고사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삶에서 절대 도려낼 수 없는 가장 뿌리 깊고 본질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것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함께 먹고살려는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부정한 방법으로 최고 권력을 탐한 자도, 빵을 몇 개 훔쳐 가슴에 품고 달아난 자도 결국 식솔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가장 원초적인 스타팅 블록에 발을 디디고 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다 보면 출발지는 어느새 잊히게 마련이고, 도착하는 지점 또한 애초의 목적지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냉장고 속 음식을 비우고 나서 위쪽 냉동 칸을 연다. 서늘하고 텅 빈 가운데 쌍쌍바 하나만이 냉기를 품은 채 놓여 있다. 둘이 사이좋게 쪼개서 나눠서 먹도록 만들어진 빙과. 각자 먹을 수 있는 두 개의 빙과가 아니라 굳이 쌍쌍바를 골라서 나눠 먹으려던 애틋한 마음이 나를 흔든다.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자는 일을 하면서 감정이 동요하지 않도록 늘 마음을 다잡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쌍쌍바만은 냉정함을 지키고 바라볼 수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작고 사소한 것에 더 크게 흔들렸던 것 같다.
그녀와 함께 먹고 마시던 자는 그렇게 먹을 것 하나로 존재를 선명하게 남겨놓았다. 쪼개서 나눠 먹는 빙과류가 전하는 아찔한 존재감. 그가 사라지자 그녀의 삶, 그녀가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그의 부재가 그녀의 존재를 온통 흔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백화점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이름조차 모르는 그녀의 마지막 수고, 방을 쓸고 닦고 묵묵히 빨래를 개는 모습을 하릴없이 떠올린다. 그토록 쓸쓸하고 외로운 풍경을 당신은 일찍이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이제 수없이 떠나간 가족 친구 이웃은 그래도 자연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지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는 사고사나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책은 그런 비정상적인 사람의 이야기이다. 죽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차마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자격은 있는가? 아무도 그렇게 당해보지 않았기에 대답할 방법도, 설득할 방법도 모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무조건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등 돌리고 돌아서는 것이 최선인가?
요지경의 독후감은 군더더기, 오늘은 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