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발터벤야민.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아주 가끔은 읽는다는 일은 견디는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대단한 인내와 견딤이 필요한 책이었다. 도서출판 길에서 출판한 벤야민 선집 10권 중 제 1권이 바로 이 책이다. 벤야민의 선집 중 유일하게 비학술적인 책이라고 한다. 총 248페이지의 비교적 짧은 책인데, 읽기가 만만치 않다. 사물로서의 문자는 모두 읽을 수 있고, 종종 모르는 단어나 어휘는 검색을 하거나 옮긴이 주를 참고하면 되었지만, 사물로서의 문자를 배치하고 관계를 맺는 발터벤야민식 글은 매우 어렵다. 불성실하게 읽지도 않았고, 예전에도 가끔 읽었기에 낯설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난해하다. 미숙한 독자의 불평을 해소하기 위해서인지 책에서 무려 40여페이지를 발터 벤야민과 이 책의 설명에 할애하고 있다. 선집 1권이라 그런 자세한 설명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다. 아무래도 /일방통행로/ 한 권을 읽기 위해서는 선집 여러 권을 같이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이 생애와 당시의 시대적 맥락도 두루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거기에 발터 벤야민 해설서나 연구서도 곁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발터 벤야민이 매력적인 작가이자 학자인지 꽤 괜찮은 해석책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일방통행로/를 읽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와 축적이 되어야 하고, 여러 우회로를 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꽤나 성가신고 귀찮은 일이지만 어쩔수 없어 보인다. 뭐. 인연이 닿으면 차차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번역자 중 한 명인 최성만의 이 책에 대한 해설을 읽어보는 것이 좋아 보인다.
/독일은 당시 인플레이션 속에서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었고, 시민사회 사람들 사이의 전승된 소통형식과 유통구조는 몰락해 가고 있었으면, 발달되어가는 기술은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와 자연의 착취에 봉사하면서 문학과 예술의 상품화 과정도 급속도록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전통적 형태의 책도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구텐베르크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광고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 그의 텍스트는 이러한 역사적 변환기의 사회적 경험들을 만화경처럼 그러모은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개인과 사회의 파괴적 발전을 중단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정치적 태도를 요구한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에서 1892년에 출생했고, 1940년 미국으로 도피할 예정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 독일을 탈출하려다 실패하자 그곳 국경마을에서 자결한다. /일방통행로/ 1928년에 출판되었다. /일방통핼로/는 최성만의 의하면 밴야민의 중.후반 사유의 모티프들이 응축되어 있는 책이라고 한다.
최성만은 만화경처럼 그러모은다고 하였는데, 나는 사막의 신기루나 옅은 안개 속에 어렴풋한 사물을 포착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간 벤야민의 글쓰기와 사유를 ‘사유이미지‘라고 하는 모양이다. ’사유이미지란 /관상학적 내지 현상학적 시선/, /이미지로 응결된 사유/, 이미지적 사유/ /이미지는 정지속의 변증법이다/ /의지에 생생한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이미지다/ /신경 감응이 없는 표상이란 없다/ /이미지를 배치하는 방식의 원리는 한마디로 몽타주다/ 등등.
경험상 책을 한 권 읽고나면 적어도 후련하다든가, 마침내 다 읽었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나는 지단 달 내내 어떤 책을 읽었다거나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책만큼은 해당되지 않는다. 후련하지도 끝났다는 안도감도 책을 읽었노라고 말하기도 참 애매하다. 일테면 만화경이나 사막의 신기루 혹은 안개 속에 흐릿한 사물의 윤곽만을 간신히 본 후에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는 곤혹스러움 같다. 신기루의 윤곽을 정확히 포착하겠다고 시도를 해보아야 아무 소용없는 짓인 것처럼. 안개 속의 실체를 규명하겠노라 안개 속으로 점점 들어가 보아야 그냥 안개 속에서 헤매다 주저앉을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이번 읽기에서 나의 이런 곤란은 무지에만 절대 돌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벤야민의 글쓰기 방식인 /사유이미지/에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 그래서 기존의 문법이나 시선을 가지고는 벤야민을 읽어내기가 여간 어려울 수도 있다. 아마도 벤야민이 의도한 방식일지 모른다. 신기루나 안개 속의 흐릿한 윤곽을 기어코 잡아보겠노라고 하는 사유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용한 방식이 아나다. 신기루나 불분명한 윤곽을 그냥 이미지로 사유하라고 하는 듯하다. /일방통행로/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나 사물을 묘사한다. 아니 묘사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 사유한다. ‘마권매표소’ 앞에서 벤야민은 이런 사유를 한다. /이제 가족은 가장 너절한 본능이 똬리를 틀고 있는 칸막이들과 구석들로 이루어진 부패하고 어두운 골목이다 속물근성은 사랑의 삶을 철저히 사적인 일로 만든다/ 혹은 재봉용품이라 제목을 붙이고 /범죄자를 죽이는 것은 윤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범죄자를 죽이는 것의 합법화는 결코 윤리적일 수 없다./ 등등
피폐하고 궁핍해지고 복잡하고 상업적 이해관계만 있는 자본주의화된 독일의 거리를 배화하거나 카페 창밖에 보이는 일상적인 사물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 사유를 하고 있다. 마권매표소나 재봉용품을 보거나 지나가면서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를 연상하며 어떤 사유를 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합쳐 /사유이미지/라고 하는걸까? 이런 식의 사유이미지에 너무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이건 마치 순간적인 사유의 포착과 비슷해 보인다. 뭐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인상 포착(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지만) 같다. 물론 벤야민이 이런 글을 메모같이 쓰지는 않았다. 한 단어 한 문장 심사숙고하여 /사유이미지/라는 글쓰기 방식을 창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기존의 글쓰기나 사우로는 기술복제시대에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감도 있고, 전통적인 사유방식으로 자본주의 시대를 넘어 혁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벤야민은 좌파이며 사회주의자로 분류된다.
예전에 사진 기술이 없었을 때 사람을 찾기 위해서 몽타주를 이용하곤 하였다. 사진은 실물을 그대로 복사하지만, 몽타주는 여러 목격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그 인물의 윤곽을 그려낸다. 몽타주를 그릴 때는 단지 얼굴 모양 뿐 아니라, 남성이야 여성이냐 나이는 어느 정도냐? 출신이 어디냐? 성격은 어떻고 하는 모든 정보를 모아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걸 역으로 환산하면 완성된 몽타주를 보고 나이. 성별. 재산 정도 .고향. 출생과 경력 등을 유추해 볼 수도 있게 된다. 그 외에 몽타주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줄지도 모른다. 몽타주는 신기루처럼 그 인물의 대략적인 윤곽만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런 이유로 훨씬 풍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얼굴 전체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하나의 점이나 주름의 이미지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사유를 전개할 수 있지 않을까? 야간용 의사 호풀 종을 보고 벤야민은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성적인 만족은 남자를 그의 비밀에서 분리시킨다/. 주유소 앞에서는 이런식으로 사유한다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보다는 사실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한 번도 그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확신을 뒷받침한 적이 없었던 사실말이다/
이 책은 어려운 책이고 나의 독서 자랑을 만족시키지도 못하는 책이다. 또한 나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발터 벤야민식의 글쓰기를 배우고 싶고 이런 식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 매번 틀에 갇히고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는 이런 글쓰기 말고 자유자재하게 글자를 배열하고 배치를 바꾸고 사유를 풀어내고 싶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지만 문자라는 사물을 가지고 글을 만들어 내는 식자공처럼 글을 다루고 싶기도 한다. 벤야민의 /역사테제/ 등 몇 권의 책을 전에 읽은 기억도 나고 지금도 책꽂이에 있지만, 아직 나에게는 벤야민은 너무 멀고도 먼 존재이며, 쉽사리 입문을 시도하고 싶지 않은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사람들의 견해란 사회생활이라는 거대한 기구에서 윤활유와 같다. 우리가 할 일은 엔진에 다가가서 그 위에 윤활유를 쏟아붓는 것이 아니다. 숨겨져 있는, 그러나 반드시 그 자리를 알아내야 할 대갈못과 이음새에 기름을 약간 뿌리는 것이다/
여러 면으로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첫댓글 발터 벤야민처럼 글쓰기로 대갈못과 이음새에 기름을 약간 뿌리는 행위를 꾸준히 하시네요.
윤활유를 꾸준히 치면 녹슬지않고 오래 쓸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