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삼킨 비틀스의 리더 존 레넌을 읽고
봉명초6 김학준
글짓기 선생님께서 독서감상문으로 쓰고 싶은 위인을 써 오라고 하셨다. 난 무조건 존 레넌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 본적은 없지만 난 존 레넌을 엄청, 많이, 진짜 같은 단어로는 표현하지 못 할만큼 좋아한다. 전에 존 레넌에 대해 읽어본 책이 페이지 수가 적기도 하고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에 존 레넌 책을 새로 샀다. 책의 쪽수가 200페이지가 넘지만 흥미롭다 보니 술술 읽혔다. 그리고 내가 비틀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직도 전설적인 록 밴드이고 노래 자체만 들어도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AI가 복원해서 나온 비틀스의 마지막 신곡인 Now And Then을 들어보니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에 정말 슬펐다.
존 레넌이 태어날 때 나치가 잉글랜드 항구도시인 리버풀을 노렸다. 리버풀에는 계속 폭발 소리가 울렸다. 그 리버풀에는 스물 여섯살의 줄리아 스탠리 레넌이 존 레넌을 낳았다. 존 레넌의 이름은 줄리아의 아버지 이름의 존을 붙히고 가운데 이름은 윈스턴 처칠의 이름을 붙였다. 존의 집안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노동자 집안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다. 해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항해를 하시다 밀수 혐의로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이렇게 생활비가 끊긴 줄리아는 존 다이킨스라는 남자와 재혼하고 존을 언니인 메리 스미스에게 맡겼다. 때마침 아버지가 돌아왔고 양육권이 아버지에게 넘어갈 뻔했지만 결국 리버풀에 남게 되었다.
이것만 봐도 존 레넌이 어릴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것 같았다. 또 경제적으로 부모님도 정말 존 레넌을 두고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존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것,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가혹한 결정을 내린 것이 존 레넌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또 이후 유치원에서 퇴학당하고, 초등학교도 강제 전학을 당한 존 레넌은 악명높은 문제아가 되고 말았다. 어린 아이에게 이런 힘든 시련을 준다면 이렇게 되는 것 같다. 반항아인 존 레넌을 응원하고 싶다. 나는 좋은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정말 복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 같으면 좋겠다.
존의 어머니는 로큰롤에 대해 알려주셨다. 존은 로큰롤에 푹 빠졌다. 그리고 존의 상징인 기타를 처음 사 주셨다. 존은 행복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시고 말았다. 당시 줄리아는 44세였고,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낸 경찰관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존은 분노에 휩싸였다. 존은 텅 빈 마음을 두 가지로 채웠다. 이 두 가지는 존 레넌을 떠나지 않았다. 하나는 술과 약물이다. 존은 성공 이후에도 술과 약물 때문에 신문에 자주 나타났다. 다른 하나는 음악이었다. 음악으로 어머니와의 추억을 생각했다고 한다. 존은 술에 취해있지 않은 시간을 대부분 밴드 활동으로 채워나갔다고 한다. 존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영국에는 여러 음악이 섞인 형태의 ‘스키플’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유행했다, 때마침 존은 자신의 밴드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밴드를 만들었다. 밴드의 이름은 쿼리뱅크 고등학교의 이름을 따서 ‘쿼리맨’으로 만들었다. 이게 비틀스의 모태가 된 것이다.
비틀스가 정말 대단해서 비틀스가 그냥 특별한 것 없이 그냥 만들어진 줄 알았지만 모든 건 다 과정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비틀스는 쿼리맨에서 모든 과정이 갖춰진 것 같다. 그리고 과정만큼 중요한 것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존 레넌이 친구가 없었다면 비틀스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존은 술에 취하지 않은 시간을 멤버들과 밴드 활동을 했다고 앞에서 말했다.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쿼리맨은 정말 오합지졸인 밴드였다. 악보를 볼 수도 없고, 악기를 훌륭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멤버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배우다 보니 정말 대단한 밴드가 만들어진다. 특히 폴 매카트니의 영향이 크다. 존과 음악적 영향을 주고받으며 엄청난 명곡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 그리고 쿼리맨에서 비틀스(Beatles) 라고 밴드 이름을 바꾸는 역사적인 일이 생긴다. 세계투어도 하고 올리는 곡마다 다 빌보드 1위를 하니 정말 세계를 삼킨거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계적인 밴드가 돼서 도 비틀스는 술과 마약에 시달린다. 그리고 한 전시회에서 오노 요코를 만나고 원래 아내가 있지만 요코와 결혼했다. 존은 신시아에게서 느끼지 못한 예술적인 면모와 존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들까지 있는 가정을 버렸기에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둘은 무시했다. 둘은 다양한 예술 행위를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베드 인’이라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사람들을 이런 기발한 퍼포먼스에 찬사를 보냈다. 이렇게 됨으로써 존은 음악가이기도 하고 또 뛰어난 사회 운동가가 됐다. 1980년 12월 8일 롤링 스톤과의 사진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데 마크 데이비는 채프먼이라는 청년이 존을 총으로 다섯 발 쐈다. 존은 병원으로 이송 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존 레넌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스타였지만 결국 죽어버렸다. 난 존 레넌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이자 사회 운동가.”
이 말을 부정할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알려준 위대한 인물이다. 만약 사람들이 모두 나를 안다면 나도 존 레넌처럼 사랑과 평화를 알려주고 싶다. 나는 표현할 수 없이 존 레넌을 존경한다. 그리고 존 레넌을 보고 본받을 점이라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과 평화를 끊임없이 알려준 점을 본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