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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예비신자)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을 모아 기도로 청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비자 교리시간 때 봉사자나 임원들이 종종 눈을 감고 5분이든 10분이든 계속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간청하는지 갈구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얼굴에는 항시 미소가 있었고 기도하는 모습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까지 했었습니다. 그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손길만(예비신자) - 예수님께서는 칼을 쓴 자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은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하시면서 비폭력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노자>에 “무릇 무력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무력을 미워한다. 도를 지키는 사람은 무력을 쓰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기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것이기에 무기가 발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죽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 이 땅에 화해와 평화가 찾아오려니 기대해 보지만 긴장과 갈등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죄도 없는 북한의 형제들이 굶주림과 온갖 학대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남과 북은 여전히 군사력을 증강하려고 끝도 없는 무기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무기는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도구이기에 군비증강은 중단해야 하고 전쟁은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상 마음을 모아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과 북이 마음을 모아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노력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청을 들어주실 겁니다. 우리가 형제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좀 더 검소하게 살면서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멀리 있는 형제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헤아리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김윤오(베드로) - 주님! 오는 6월 29일 사제 서품식을 하게 되는 이들의 눈을 뜨이게 해 주시고 귀를 열어주시고, 입도 열어주시어 세상에 많은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알아보는 눈을 뜰 수 있도록, 마음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깨달음을 전하는 사제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사제가 되어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씨 뿌리는 사람이 되어 주님이 전해 주신 말씀의 씨앗이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싹을 돋아나게 할 수 있는 힘과 은총을 사제 서품식을 하는 이들에게 내려주소서. 아멘.
- 성경공부 시간에 마르코 복음 4,26~34 부분을 공부하며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하면 생각나는 모습이 십자가를 모셔두고 성경책을 읽고 계시거나 묵주기도를 드리던 모습입니다. 한글을 배우지 못해 자식들 이름조차도 쓰시지 못하던 분이 어느 날부터 성경책을 줄줄 읽어내시던 어머님. 성령의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주위 사람의 말에 빙그레 웃으시며 기뻐하시던 어머님. 마지막까지 성경책에 못난 자식 놈의 사진을 끼워두시고 그 못난 자식을 위해기도 드리다 하늘나라도 가신 어머님. 어머님이 그렇게 기도를 해 주시어 이 못난 자식이 지금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또 찾고 있습니다. 작은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듯이 어머님이 해주신 기도가 결실을 맺어 그 못난 자식이 하느님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못난 자식을 위해 기도드려 이렇게 결실을 맺었듯이 이 못난 자식도 정성을 다한 기도로 예수님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못난 자식의 약속이 헛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소서.
- 예수님께서는 악보다는 선을, 법보다는 사랑을 택해서 살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손해를 손해로 갚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지녀야합니다. 저와 원수 같았던 친구를 만나 지난일은 모두 잊자고 말했으나 마음속에선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을 깨우치지 못하고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깨우치고 실천하는 베드로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아멘.
김철관(요셉) -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 주님, 얼마 전에 함께 있는 동료가 저 자신을 너무나 무시하고 비참한 말을 하여 부족한 저에게 경제적으로 창피를 주었습니다. 저는 악한 행동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 너무나 엄청난 생각을 했습니다. 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동료에게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처럼 악으로 앙갚음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앙갚음도 할 수 없고 용서도 할 수 없어 그 동료와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함께 생활하기가 너무나 불편합니다. 먼저 다가 갈수도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그저 무관심하게 지냅니다. 저는 아무런 잘못이 없기에 평소에 생활하던 모습으로 생활합니다만 옆 동료는 언제나 행동이 부자유스럽습니다. 저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주님께서 꾸짖어주십시오. 저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무덤덤합니다. 동료가 행동과 말로 실수를 했다고 사과를 한다면 기꺼이 지난 일을 잊을 수 있는데, 단 한 번이라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동료의 마음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주님 저의 잘못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만 이렇게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고 웃으며 지낼 수 있는지 주님 지혜를 주십시오. 언제나 저희들에게 사랑이 몸에 익숙하도록 습관화하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신 시몬 신부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니 이렇듯 마음속으로는 부끄럽습니다.
송기성(스테파노) -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을 두지 않고 사랑하셨고 치유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사는 것이 힘들다는 핑계로 부드러운 말보다 쌀쌀하게 말하는 것이 태반이고 힘들다는 핑계로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 두 팔을 벌리시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함께 생활하는 모든 이를 사랑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이국진(욥) -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상 마음을 모아 청하면 하느님께서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과 북이 마음을 모아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노력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기영(프란치스코) - 사랑의 주님, 제가 지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을 이기고 더욱 주님의 손길로 굳세게 하여 주시고 제가 더욱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해 주시고 앞으로 가야할 저의 길을 주님과 닮아갈 수 있도록 은총 내려주소서.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손길하나만 의지하는 굳은 믿음과 저의 지난 허물과 잘못들을 용서하시고 다른 이들의 삶에서 이제는 더 이상 제가 용서를 구하는 일이 없도록 저를 바로 설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진병일(경환 프란치스코) - 남과 북이 분단된 것과 또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나의 잘못과 남의 잘못에 대해 얼마나 관대하게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타인이 관대하게 용서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타인이 자신에게 저지른 조그마한 실수를 결코 묵인하지 못하고 꼭 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고 따지고 그로인해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잘못을 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해야 합니까?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자신이 용서를 받고자하면 남들도 용서를 해야 마땅한 일인데 우리는 너무나 속이 좁고 옹졸하여 남들의 잘못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안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잘못을 용서받고자하는 사람은 남을 용서할 줄도 알아야 진정으로 용서받는 사람답게 사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묵상을 통하여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책임이 따르는 행동으로, 타인에게는 관대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깨닫습니다. 남과 북이 언제까지 분단된 채 살수는 없겠지만 지금 현실은 너무나 답답하게 자신들의 입장만 내세우고 있습니다. 죄 없는 북한 형제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굶주림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로 그 문제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반성하여 봅니다.
이동규(가브리엘) -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싫어할 때가 생깁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용서하는 미덕을 베풀기엔 우린 너무 보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그러신 것처럼 우리는 항상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게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정정원(미카엘) -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뜻을 모아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면 들어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극진히 사랑하신다. 제 자신 역시 이 복음 말씀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는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진정으로 사랑의 마음을 가지므로 해서 어떠한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좀 더 주위에 있는 형제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실 되게 대할 것이며 아픔을 함께 나누어 질 것을 다짐하며 참되고 진실 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겠습니다.
박병수(프란치스코) -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주님의 선구자로서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미리 준비하셨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모두 마치고 예수님께 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의 겸손과 충직한 모습을 본받을 것을 다짐하며 하느님께 세례자 요한의 말씀을 봉헌합니다.
마상태(안드레아) –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다. 앞으로 새 시대를 열어나가실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미리 닦아 놓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로 늙은 부모, 다시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를 통해 위대한 선지자를 낳게 하셨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사실을 보고 소문을 들은 모두가 놀라워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고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예비하시고 실행하시며 섭리하시는 것이다. 오늘 복음 이후 예수님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김동수(대건 안드레아) - 요한의 탄생은 수천 년 동안 약속되었던 하느님의 자비가 이 세상에 실현되었다는 징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가 하느님과 만남의 인연을 맺은 것도 수천 년 전부터 이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끊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살핌과 안배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하느님 없이는 이해와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김태경(예비신자) - 거룩한 주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되었음이 한없는 영광이며 죄 많고 벌레 같은 인생가운데 당신의 놀라운 영적 말씀을 깨닫게 하신 성령의 은총에 기뻐 감사드리옵나이다. 오직 위대하신 당신만 찬란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이 봉헌을 아름다우신 한 분, 주님의 제단 앞에 겸허히 엎드려 드리오니 기뻐 받아주시옵소서. 아멘. 주 아버지하느님, 당신의 높은 시온 산에 오르지도 못하고 하느님을 향해 크게 부르짖지도 못한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세상 속에서 오로지 두려움과 연약함에 젖어 있었던 날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저의 죄와 허물과 연약함을 용서하시고 저의 심령을 어루만지사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당신의 품에 안아주시니 당신의 크고 깊으신 자비와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올리옵나이다. 주 하느님, 저의 가는 길에 늘 강한자로 임하소서. 제가 하는 모든 일을 당신의 강한 팔로 다스리소서. 제게 상급을 주시고 보응을 제게 내려 주옵소서. 저의 연약함을 아시니 푸른 초장가운데 하느님의 따스한 품으로 평안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윤금철(베드로 다미아노) - 예수 성심 대축일이자 사제 성화의 날의 강론시간에 요한 바오로2세 권고에 따라 사제 성화의 날이 제정되었는데 오죽했으면 그날이 제정되었겠느냐 하셨습니다. 물론 저희들의 기도를 청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사제로서 살아가시는 삶은 축복 그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부님! 예수님의 마음을 더욱 더 본받으시고 간직하셔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에 가까이 다가가 모든 사람들께 존경받는 사제로 남으시기 바랍니다. 거룩하게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시는 신부님을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실 것입니다. 아니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었기에 모두들 냉대한 이곳 마태오 성당 형제들에게 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셔서 결국은 하느님께서 크게 쓰실 것이기에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다니엘처럼 거룩한 삶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느님께 쓰임을 받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제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거룩함의 고지를 점령할 이 시대의 다니엘을 찾고 계십니다. 그 다니엘의 역할을 시몬 신부님께서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삶도 시몬 신부님의 강론 말씀 속에서 힘을 얻어 살아갑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이되시길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과 병환까지도 치료하시는 하느님! 교정사목 후원회 부회장이시며 매주 제단에 꽃꽂이 봉사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유기선 젬마 자매님의 가정을 돌보소서. 가장 되시는 부군께서 큰 수술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회복 중에 있다고 하십니다. 성령님 함께하시어 하루빨리 예전건강을 회복하고 늘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권능을 내려주소서. 저희들은 부회장님을 통하여 넘치는 사랑을 받고 살지만 이렇게 기도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간절히 드리는 기도가 하늘나라 아버지께 전달되어 빠른 쾌유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오니 들어주소서. 한동안 제단 앞에는 이름다움 꽃꽂이 대신 화분으로 채워져 있고 봉사하셨던 부회장님께서 참석지 않아 많이 궁금하였는데 다행히 회복 중에 계셔 저희 마태오 성당을 찾아 제단 앞에 아름다운 꽃 장식을 하여 놓아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이렇게 꾸며진 제단 앞에서 세례를 받고 첫 해설자가 되어 전례를 진행할 수 있어 기쁨도 배가 됩니다. 모든 사람들께 제단을 바라보며 기쁨을 불어 넣어주시는 부회장님의 가정을 기억하셔서 빠른 회복 시켜주시옵소서. 은혜로우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윤오(베드로) - 나는 참된 신앙심으로 주님을 찾는 것인가. 내가 드리는 봉헌에 불경함은 없는 것인가. 타인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타인이 힘들인 대가를 탐하는 것은 아닌가. 기도를 드림에 있어 성심을 다하는 것인가. 나는 교회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주님! 성경을 읽으며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이 여섯 가지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라는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은 더 깊은 신앙심과 조금 더 경건함으로 타인을 위한 봉사하는 마음, 수고를 거들어주는 마음. 그리고 법을 지키는 마음이 더 깊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은총 내려주소서. ‘예’라는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정택무(베드로)
(없다)
거지에게 생일 없고 도둑에게 양심 없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밤과 낮이 없고
참되게 사는 사람에게 두려움이 없다.
실직자에게 봉급날 없듯
게으른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 없다.
(얼굴)
화내는 얼굴은 아는 얼굴이라도 낯설고
웃는 얼굴은 모르는 얼굴이라도 낯설지 않다.
찡그린 얼굴은 예쁜 얼굴이라도 보기 싫고
웃는 얼굴은 미운 얼굴이라도 예쁘다.
(옷과 욕심)
옷은 입을수록 몸이 따뜻하고
욕심은 벗을수록 마음이 따뜻하다
옷은 오래 입을수록 그 두께가 얇아지고
욕심은 오래 걸칠수록 그 두께가 두꺼워진다.
(외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설움은
가진 사람들의 외면에서 생기고
못난 사람들의 설움은
잘난 사람들의 외면에서 생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설움은
여럿이 사는 사람들의 외면에서 생기고
아픈 사람들의 설움은
건강한 사람들의 외면에서 생긴다.
이우근(스테파노) - 영원에서 영원까지 같은 한 분이시며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저의 어떤 강한 의지도 주님의 뜻과 섭리를 결코 넘지 못함을 제가 깨닫게 하여 주시고, 저희가 하는 모든 일들을 기꺼이 주님께 온전히 맡기오니 저희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순간순간 찾아오는 욕심과 유혹은 언제나 이 죄인을 힘겹게 흔듭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죄악을 벗 삼아 살았기에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죄 앞에서 작아지고 약해지는 저희 나약함을 살펴주시고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강한 믿음을 허락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왕건철(루카) - 찬미예수님! 매일 매일 비록 갇혀있는 이곳 생활이지만 그 속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동료와의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져 결국 징벌로 이곳에서의 ‘막장’같은 곳으로 끌려가는 사연들, 반대로 작은 선행으로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사연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이 같은 생활이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납니다. 저는 이번 일주일 얼마나 잘 살았는지 뒤돌아봅니다. 수용자로서의 생활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하루하루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 살았습니다. 남보다 조금 나은 기술로 다른 사람을 깔보는 행동과 언행. 종교인으로서의 올바른 행동이 아닌 그저 남의 눈에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행동들이 지난 일주일 저의 생활이었습니다. 뒤돌아보면 반성해야 할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요? 주 예수님! 매일매일 주님 안에서 겸손을 배우고 절제를 배우고 양보를 배우며 마음속 온갖 이기심의 뿌리를 모두 뽑아 버릴 수 있는 참 지혜를 주소서. 아멘.
정재덕(프란치스코) - 6월은 예수성심을 더욱 공경하는 달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성심을 공경하는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사랑하고 받들어 섬겨야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는 수많은 어려운 난관들이 생기고 지나가는 삶의 길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하며 살아가는 것이 쉬운듯하면서도 또한 어려운 것입니다. 그야말로 요지경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수많은 사람이 살다간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한 시대 한곳에서 만나 인생길 같이하며 살아가는 인연입니다. 그런 만남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라는 짧다면 짧은 인생길에서 자기의 생각과 다르고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귀하에 여기며 서로를 위해주지는 못해도 자신의 욕심과 교만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과 다른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서로가 지켜야할 선을 지키고 살아가지 못하고 온갖 욕심과 욕망으로 발버둥치는 그런 편협한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내 탓이오.’란 말로 자신을 성찰하면서 살 때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자신의 내적인 겸손이 생길 것입니다. 겸손은 어쩌면 다른 말로 자신을 낮춘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느님께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지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 새내기 신자로서 더 많은 것을 알고자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지만 주님의 역사는 금방 생각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제 한발 한발 욕심내지 않으며 다가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몸 바치신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우리는 하나도 사랑 둘도 사랑, 그 마음 그 크신 주님의 십자가의 뜻을 새깁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마음도 감안하시어 차츰차츰 많이 알게 안배하시리라 믿습니다. 더워지는 날씨 제한된 곳이지만 신부님이 말씀하신 ‘깝삐짜-깝치지 말고 삐지지 말며 짜증내지 말자.’ 좁은 공간 가장 어울리는 말씀 새기며 우리 모두 타인의 잘못을 눈 한번 찔끔 감아주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멘.
양재동(발렌티노) -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잣대는 왜 일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의 눈금이 커지고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같은 일을 가지고도 자신의 입장이면 관대해지고 융통성이 있으면서 상대의 입장이면 왜 그리 작아지는 눈금인지, 지금까지 용서받고 살았으니 이제는 용서하면서 사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철규(도비아) - 하느님 감사합니다. 새벽 먼동이 터오는 이시간이면 어김없이 하루 시작을 알리는 재잘거리듯 노래하는 참새들의 소리에 잠이 깨어 묵주기도와 감사기도를 드린 뒤 성경 한 구절을 펼쳐 읽고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이곳 담 안의 형제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로 이 죄인이 이곳 담 안에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날이 99일 남았습니다. 가니 안가니 해도 2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네요.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는 형제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땐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내 자신의 잘못보다는 남을 더 원망하고 툭하면 짜증을 내고 하였는데 참으로 많은 것을 얻고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그중에 제일은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그분의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전엔 왜 이런 마음의 평화와 여유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등바등 살기에 바빴고 내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삶이였으니까요. 이제라도 내 자신을 알 수 있게 된 게 다 하느님의 가르침 속에서 얻게 된 믿음 때문이지요. 알렐루야! 이제는 알 수 있어요. 사랑이 무엇인가를. 내가 받고자 하는 것보다 베풀고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지 그동안은 너무도 몰랐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종에게 변함없이 사랑과 은총을 주셨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투정만 부리고 있었으니. 알렐루야! 이번 미사는 남북통일 기원미사를 드린답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도 6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산의 아픔 속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통일된 조국에서 따뜻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꿈과 새터민들의 어쩔 수 없이 등진 북녘의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남쪽의 따스한 품으로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미사를 바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알렐루야!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이번 미사에도 변함없이 이곳 마태오 성당의 형제들을 찾아 하느님의 가르침을 말씀으로 전해주시면서 항상 이곳 형제들을 아끼시며 깝삐짜를 외치시는 시몬 신부님의 건강 지켜 주시고 많은 성령의 은총을 주시어 더 많은 형제들을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이끌어 주실 수 있게 하여주시고, 우리 수녀님 항상 온화한 미소 잃지 않게 성모님의 은총과 성령이 함께 할 수 있게 하여 주시며 마리아 회장님과 회원 봉사자분들께 또한 그분들의 가족 여러분들께 평화와 은총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 주 그리스도님께 기원 드리며 비옵니다. 아멘.
김승주(예레미야) - 사랑의 주님!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미혼모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쉼터’등의 여러 도움의 손길과 시설을 접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고 고난의 시간을 보냈을지 마음이 아픕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믿음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또한 아직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슬픔과 아픔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기에 성모마리아 즉 ‘어머니의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평화의 주님! 부디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전쟁의 고통 속에서 참 평화의 기쁨과 평온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자비와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길 바라오며 따뜻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모든 이들이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노형식(안드레아) – 감사하는 마음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마지막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서로간의 이해득실을 위해 헐뜯거나 다투는 일이 없을진대 아직도 주님의 말씀 중에 감사함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의 어리석음을 탓하시옵소서. 모든 일에 정성과 최선을 하다여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저에게는 너무나 부족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마음의 고초를 짊어지고 주님께 저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나눌 수 있는 마음으로 다가서려고 했고, 먼저 화해도 청해보고,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마음의 무게만 저의 양심을 누르는듯하여 안타까움에 괴롭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만 쌓여갑니다. 세상의 이해득실에 흔들림 없이 오직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지탱하는 삶이 참으로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그러나 확신을 갖고 진실은, 진심은 이긴다고 몇 번씩 되 뇌이고 있지만 이곳의 현실은 저를 외면하는듯하여 씁쓸하고 서글퍼집니다. 당신을 몰랐다면? 이렇게 힘들거나 외롭고 괴롭지도 않았을 텐데, 당신을 몰랐었다면 저의 육신이 좀 더 편했을지도. 하지만 주님의 사랑이 내안에 내재되어 있기에 한번쯤 휘청거리는 저의 마음과 병들고 시들어버린 나약해진 제 몸과 마음을 바치면서 지금까지 당신의 거룩한 사랑을 갖고 싶어 하는 저를 헤아려보소서. 오직 사랑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어 당신의 뜻을 감사히 여기며 나눌 수 있는 은총의 힘을 가득히 채워주시고 당신의 말씀대로 이끌어주소서. 어린아이처럼 부드럽고 솔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참을성 있게 주님의 사랑을 청하옵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을 저의 안에 소복이 담아주실 때까지 당신의 이름을 기리며 따르겠나이다. 용서로써 잃어버린 마음의 평화를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용서로써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선행을 되살려 저의 굳게 닫혀버린 마음의 벽을 허물어주십시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자. 거짓을 벗어버리고 저마다 이웃과 형제들에게 진실을 말할 때는 우리에게 내재되어있는 착한 본성이 드러나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서려는 마음가짐이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평화의 삶이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거짓이 내 양심을 버리고 거짓이 악언과 악행으로 내육신마저도 썩게 하니 진실과 진심으로 저에게 참다운 생명의 말씀으로, 어리석음에 헤매고 방황하는 저를 올바른 곳에 초점을 두고 그곳만 바라보면서 당신 사랑 안에서 당신 가르침대로 당신께서 인도해주신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저에게 마음의 안식과 양심으로 평화의 기쁨과 여유로 의롭게 살아가게 하소서. 욕심을 버리고 올곧게 살도록 믿음의 평화를 주소서. 욕망은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죽음을 맞이하는 바보가 되지 않게 사랑의 평화를 주소서. 저의 입과 눈과 마음이 오직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쫓는 온화한 눈빛으로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시어 풍요로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저로 여물게 하소서. 저의 부족한 사랑 채워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신다면 제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우람(마태오) - 시청각통신교육원의 1학기 과제에서 참된 진리의 한 자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사람인지를 근본에서부터 생각하며 주님의 진실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때때로 무심결에 깬 새벽의 찰라에도 자문하고 묵상하다보니 아주 조금씩 주님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학문과 지식이 아무리 높고 넓다고 해도 하늘과 땅 사이를 떠도는 먼지에 비유조차 될까 싶습니다. 지구 반대편과 대화를 하고 하늘을 날며 우주로 나아가고 멈춰진 심장이 기계로 대신하는 것에 교만하기에 앞서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시작되었는지를 심도 있게 생각해보면 태초에 주님이 조율하심의 진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자신들에 합리화된 주님을 각기 다른 전례와 계약으로 왜곡함에 어찌 교회가 진실한 진리를 나누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밤하늘별과 같은 성인들의 발자취와 그 뒤를 따르는 한분 한분의 숭고하신 사제와 수도자들의 모습을 통해 햇살을 맞이하는 해바라기처럼 그 있는 그 모습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 교회와 성직자들 중 거짓된 찬양으로 자신만을 위하여 배덕한 루시퍼의 후예들이 있기도 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 얼룩으로 위증하고는 있지만 주님은 더욱 진실한 신앙의 믿음을 올곧은 사제와 수도자를 통해 진리의 향방을 일러주십니다. 현세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진실한 성직자들의 성령의 축복 속에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소서. 성 마태오 형제들이 자신을 합리화하여 거만하지 않게 하시고 신부님과 수녀님의 진리의 전달을 온전히 이해하여 받아들여 오늘의 삶이 되게 이끌어주소서. 봉사의 만족이 아닌 사랑과 용서의 나눔을 살아 있는 선례로 보여주시는 실천하는 진리의 후원회 은인님들의 축복을 평화로이 하소서. 혜택과 완장의 꾸며짐이 아닌 희생자 보속을 즐거워하는 봉사자 형제들의 현실이 늘 미소 짓게 하소서. 주님 안에 살고 주님 안에 생각하며 주님 안에 울게 하고 주님 안에 웃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함께 나누게 하소서. 저의 오늘 신앙의 삶이 제가 아프게 한 모든 이들의 삶으로 이어져 그들 역시 용서와 평화로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부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아멘.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시니.
형제님들 각자 한 분 한 분 가지신 고통이 그분 안에서 그분 크신 사랑으로 승화되고 있음이
눈에 보이는 꽃인양 향기롭게 피어 오르는 듯합니다.
저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