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속적인 부를 가르쳐 주신 적이 없다. 주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제자들과 함께 거처할 집 한 채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사셨다. 그가 먹는 음식은 기름진
음식이 아니었고, 그가 입은 옷은 당시 궁중이나 제사장들이 입는 화려한 옷도 아니었다. 주님은 소박하고 간단하며 소탈하고 어쩌면 가난하게 사셨다. 주님은
가난하셨지만, 그렇다고 없이 살진 않으셨다. 물론 부하게
사신 적도 없다. 주님의 삶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단순하게
사신 심플 라이프였다. 이 주님의 삶은 부와 풍요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 가지 생각해 보자. 한국 교회는 굉장히 가난했다. 하지만 1970년부터 1990년까지
교회는 급속한 부흥을 맛보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대형화 되고 재정이 축적되었고, 성도들도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교회에
대해서 말할 때 이렇게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헌신했더니 이런 큰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라. 그렇게 크게 성장한 한국교회가 풍요하게
되었지만, 진정 하나님과 가깝게 되었나?를 생각해 보면 아니다. 교회는 거대화 되고 커졌지만 그 교회 안에 영성을 낮아지고, 세속화되고, 더욱 기복화 되었다. 정치적 경제적 큰 스캔들이 나면 그 안에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형교회의 장로, 목사, 권사, 집사들이다. 소위 하나님께 복 받는 자들이었지만, 사실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만드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우리의 복에 대한 개념이 기초부터 잘못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 믿고 개인적인 부,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이삭이 누린 부를 주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믿고 이런 복을 받길
원하다면, 지금부터 생각을 바꿔라.
만약 그렇다면 예수 잘 믿는 장로, 권사, 집사가 다 사장, 회장, 국회위원, 대통령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자들은 일부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그렇게 복 받은 자들이 예수를 잘 믿는다고 판단할 근거도 없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보면 주님께서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마다 찾아낼 것이요….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하신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에서는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라고
다르게 표현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기 가장 주시고 싶어하는 것,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이
아니다.
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는 것은 성령이다. 문제는 세상에 집착한 우리의 죄성이 여전히 그게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림절 첫주 설교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