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사대부와 이성계
고려는 요동지방을 공격하여
명나라의 기세를 꺾으려 하였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이었다.
사대부는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른 관리들인데
공부하는 학자(성리학)들 출신이다.
이성계를 지지하는 믿을만한 세력이 있어 위화도회군은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신진사대부들이다.
신진사대부들은 개혁을 바라면서 고려의 귀족문벌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인물로서 이색, 정몽주, 정도전, 권근 등이다.
사대부들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공민왕 때였다.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
「반원 자주화」의 개혁 정치를시하였다.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들을 과거를 통해 뽑아 썼는데
이들이 신진 사대부들이다.
신진 사대부들이 이성계와 결속하여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신진 사대부들의 공통된 특징은
1. 성리학을 공부하고 익히며 자신의 사상과 신념으로 삼았다.
2. 문벌 귀족처럼 벼슬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자력으로 과거에 합격하 여 벼슬길에 오른 사람들이다.
3. 반원친명(反元親明) 원측을 주장하였다.
고려의 문벌 귀족은
사대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땅과 노비를 가진 부자였고,
집안의 배경으로 관리의 길을 걸었으며 원나라와 가까운 친원파였다.
신진 사대부들은 고려의 귀족들이 소유한 땅을 회수하여
토지분배 개혁과 친명 정책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귀족문벌과 신진 사대부 외에도 홍건적과 왜구의 토벌에
공을 세운 유명한 장수들이 한 세력을 형성하였는데
이성계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성계는 신진 사대부들과 손을 잡고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사대부도 온건파와 급진파로 갈라진다.
온건파의 대표적 인물로 정몽주를 들 수 있으며 개혁에는 찬성하지만
역성혁명에 반대하다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방원에게 죽고 만다.
급진파의 대표 인물로 정도전, 조준 등이 있는데
역성혁명으로 왕씨 왕조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는데 앞장섰다.
광산김씨약사. 광산김씨사
2023년 5월 편집 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