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 시절이었다.
시할머니까지 모시는 층층시하였는데,
밥도 안 해 보고 시집 간 풋내기라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이곳저곳 어정쩡하게 기웃거리기만 했을 때였다.
가까이 사시는 시외숙모님께서 찹쌀모찌를 가져와 권하시곤 했다.
“힘들제? 이것 먹고 골 메워라.”
나는 당시 내가 힘드는 상황에 있는지도 인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골 메우는’ 일이 무언지조차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찹쌀모찌가 왜 골을 메워주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신기한 것은 찹쌀모찌를 먹고 나면 왠지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는 했다.
나는 찹쌀모찌를 먹으면 골이 메워지고,
골을 메우면 기분이 좋아지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심한 독감에 걸렸다.
으슬으슬 한기가 들고 기침이 멎지 않았다.
친구가 밥을 사 준다기에 나갔더니 찹쌀 수제비집으로 데리고 갔다.
“감기에는 뜨끈뜨끈한 찹쌀 수제비가 최고야!”
수제비는 고소한 참기름에 미역과 북어를 넉넉히 찢어 넣어 구수하게 끓였다.
간도 잘 맞았다.
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돌아가신 외숙모님이 생각났다.
“골 메워라.”
그때의 외숙모님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어린 나이에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하는 내가 외숙모님 보시기에 안쓰러웠으리라.
나의 골이 하루하루 비어감을 눈치챘던 것이 아닐까.
바람이 숭숭 지나가고 있었음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떤가?
골 뿐 아니라 가슴까지도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다.
산신령 같던 어른들이 떠나간 자리에 홀로 남아
철부지 새댁을 보듬었던 손길들을 그리워한다.
어차피 삶이란 마디마디 굴곡이 있기 마련이 아니던가.
“골 메워라.”
바람 탓인지 뜨거운 국물 탓인지 나는 코를 훌쩍이며 묵묵히 국물을 들이켰다.
첫댓글 저는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수업하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때 친정엄마가 콩이 잔뜩 박힌 찹쌀떡을 주셔서 간식처럼 먹었지요. 찹쌀이라 속이 든든한줄 알았더니 엄마의 사랑이라 힘이 된줄 이제야 깨닫습니다. 어제는 구십된 엄마와 시어머니 모시고 죽도시장 갔다왔어요.
보기 좋아요.
저는 산신령 같던 어른들이 떠나간 자리에 홀로 남아
철부지 새댁을 보듬었던 손길들을 그리워한답니다.
그랬었군요. 여인들은 한 자락의 서럽고 도저히 잊지 못할 일이 있나 봅니다.
그렇지요.
누구에게나 골 속으로 바람이 숭숭 지나가던 시절이 있었을걸요? ㅎ
교촌 최부잣집 따님이 저희 집안에 시집을 오셨습니다.
아들은 서울에 있었으나 답답하다시며 시골 우리집에 자주 내려와 계셨어요. 제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의 시댁 집안 어른이기도 하면서 할머니의 친정외사촌 오빠였기도 했거든요. 저는 교촌할머니라 불렀지요.
기나긴 겨울 저녁 심심해서 간식을 찾으면 미역국에 찹쌀수제비를 뜨끈하게 끓여주시며 골메워라 하셨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찹쌀 새알은 좋아하지 않아서 다 골라내고 미역국만 먹었지만요.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는 찹쌀수제비로 골을 메우고 싶은 겨울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