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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장(法藏)은 자신 일인(一人)의 일기문서(日記文書)로다. 이 팔만법장을 나의 심중(心中)에 내포(內包)하여 갖고, 품어 가졌노라, 나의 신중(身中)의 마음을 가지고, 부처와 법(法)과 정토(淨土)를 내 몸 밖에서 생각하고 원(願)하며 구(求)함을 미혹(迷惑)이라 하고 이 마음이 선악(善惡)의 연(緣)을 만나 선악(善惡)의 법(法)을 만들어 내느니라.”(어서 563쪽) . |
마이클님께서 몇번이나 어서를 질문하셨는데, 한국의 주위 분들에게 문의하여 공부하시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카페는 5.15지도의 실천을 위한 카페인데, 교학과 뒤섞이면
5.15지도에 대한 대화가 약화될까 염려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같이 하며 부족하지만 위의 어서를 같이 공부하겠습니다.
●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장(法藏)은 자신 일인(一人)의 일기문서(日記文書)로다. 이 팔만법장을 나의 심중(心中)에 내포(內包)하여 갖고, 품어 가졌노라, ”
팔만사천의 법장은, 석존일대성교의 일체의 법문을 말합니다. 이는 석가 자신의 일기문서이며, 이 팔만법장을 심중에 품어 가지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체중생의 생명은 성주괴공을 거듭하며 삼세 영원하다 것,
(2) 일체중생은 모두 일념삼천, 십계호구의 생명이며 불성을 갖고 있다는 것,
(3) 천변만화하는 모든 생명이 모두 묘호렌게쿄의 모습이라는 것.
이는 석존이 보리수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의 내용입니다.
석존은 이러한 자신의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말씀하셨는데, 이를 팔만사천의 법장이라고 합니다.
● 일체중생의 생명은 성주괴공을 거듭하며 삼세 영원하다 것,
인간혁명 3권, 174-180쪽의 내용입니다.
<그의 사념(思念)은 자신의 과거를 비추어 갔다. 지금까지 인생을 상기했을 때, 잇따라 전생이 떠올랐다. 둘, 셋, 넷 계속해서 과거의 생애가 되살아나 그것은 몇백, 몇천…의 생애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그때의 자신의 과거 모습이 선명하게 그의 뇌리에 그려져 갔다.
그리고 그의 사념은 다시 수많은 우주의 성립과 파괴에까지 다다랐다.(성주괴공)
석존은, 지금 보리수 밑에서 명상하고 있는 자신이 구원의 옛날부터 생겼다가 멸하고, 멸했다가 또 태어난다는 그 연속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삼세에 걸친 생명의 영원함을 깨달은 것이다.>
● “나의 신중(身中)의 마음을 가지고, 부처와 법(法)과 정토(淨土)를 내 몸 밖에서 생각하고 원(願)하며 구(求)함을 미혹(迷惑)이라 하고,
이 마음이 선악(善惡)의 연(緣)을 만나 선악(善惡)의 법(法)을 만들어 내느니라.”
나의 신중에 일념삼천의 법을 갖고 있으면서, 밖에서 법을 구함을 미혹이라 하고, 마음이 정법인 선연을 만나면 행복하게 되고, 악연을 만나게 되면 불행해 진다는 말씀입니다.
<석존의 갈고 닦은 사념은 나아가 일체중생의 숙명으로 향해갔다.
그의 흉중에 모든 중생이 살다가 죽고 또다시 태어나는 모습이 역력하게 비치었다. 어떤 사람은 불행한 모습이었고, 어떤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념을 응축시켜 그 원인을 더듬었다.
불행한 숙명을 짊어진 사람들은 전세에 자신들의 행동으로, 말로, 혹은 마음으로(身口意 三業) 악행을 저지르고 정법의 사람을 비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그에 따른 그릇된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후에 불행한 숙명을 짊어지고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것에 비해 행동, 말, 마음으로 선행(善行)을 하고 정법의 사람을 비방하는 일도 없이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올바른 행위를 한 사람은 행복하게 되었다.
현세는 과거세의 숙업으로 결정되고 미래세도 또한 현세의 행위로 결정된다. 지금 석존은 그것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변전(變轉)하는 중생의 생사(生死) 속에서 엄한 생멸의 인과이법을 명확히 깨달았다.>
● 각자가 서로 因이 되고 果가 되고 緣이 되며 그것들을 관철해 가는 생명의 법
<대우주도 시시각각으로 변화와 생성의 리듬을 새기고 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 아이도 언젠가는 늙고, 마침내 죽고 또 태어난다. 아니, 사회와 자연 어떠한 것도 정지하고 있는 것이 없다.
그 유전해 가는 만물과 만상은 반드시 무언가를 연(緣)으로 하여 생기고 멸해 간다.
무엇하나 단독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든 것은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서로 연관을 가지고 ‘연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서로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되고 연(緣)이 되며 더구나 그것들을 관철해 가는 ‘생명의 법’이 있다.
석존은 그 불가사의한 생명의 실체를 터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금 체득한 법으로 무한한 인생을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박해도, 곤란도, 역경도 이미 바람 앞의 먼지에 불과했다.
그는 생각했다. 사람은 이 절대적인 진리를 모르고 자신이 단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 착각이 결국은 인간을 욕망의 포로로 만들어 영원불변한 진리인 ‘생명의 법’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무명의 어둠을 방황하며 고뇌와 불행에 빠진다.
그러나 그 무명이란 자기 생명의 미혹이다. 실로 그 생명의 무명이 모든 악의 근원이며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고뇌를 가져오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 미혹, 무명이라는 기심의 악과 대결하는 데에서부터 인륜의 길, 무너지지 않는 행복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 제법실상으로 본 생명의 모습
“아래 지옥부터 위로 불계까지 십계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당체가 모두 일법도 빠짐없이 묘호렌게쿄의 모습이라는 경문이다.”(어서 1358쪽, 통해)
십여실상의 글이 나타내는 뜻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모든 생명(제법)이 모두 묘호렌게쿄의 모습(실상)이다.’입니다.
제법은 개개의 생명이며, 실상은 부처가 각지한 우주대의 생명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각각의 생명속에서도 우주 생명 그 자체를 볼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중생은, 부처가 깨달은 묘법의 당체이며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십계의 중생은 남김없이 제법실상의 부처.”(어서 830쪽) 지옥계라면 지옥계, 인계라면 인계, 그 몸 그대로 그 모습으로 실상, 즉 묘호렌게쿄의 당체로 빛날 수 있습니다.
어딘가 먼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특별한 자신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기쁘면 기쁜 모습 그대로 어본존을 믿고, 광선유포를 위해 행동하면 반드시 ‘제법실상의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니치칸 상인은 〈관심의 본존초 문단〉에서 “우리 일향(一向)으로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면 나의 몸 전체 즉 이는 본존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묘법을 자행화타에 걸쳐 수행함으로써 우리 생명 전체가 본존이 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묘법의 당체로 빛낼 수 있습니다.
본래 전 우주가 제법실상이며 어본존입니다.
본래 내 생명도 제법실상이고 어본존입니다. 그러므로 어본존을 배례할 때 우주와 내 생명이 다이나믹하게 교류하면서 자기 본래의 ‘실상’, 즉 남묘호렌게쿄 당체의 모습으로 빛납니다.
● 맺음 말
이상 인간혁명과 방편품, 수량품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팔만사천의 법문 중에 법화경은 석존의 깨달음의 법과 그 법을 근본으로 한 부처의 삶의 자세를 선명하게 설하여 새롭게 소생시킨 경전입니다.
법화경에는 현재의 석존이 설한 법화경 외에도 과거의 부처가 설한 법화경도 등장합니다. 서품 제1에는 일월등명불, 화성유품 제7에는 대통지승불, 상불경보살품 제20에는 위음왕불이 각각 과거의 부처로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합니다.
이들 부처가 설한 법화경은 형태나 길이가 각각 다르지만, 보편적인 법을 설하여 그것을 체현한 부처의 삶의 자세를 만인에게 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법화경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편적 법화경이라고 합니다.
대성인은 석존의 28품 법화경과 천태의 마하지관, 당시의 남묘호렌게쿄를 어느 것이나 일념삼천이라는 보편적인 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도다 제2대 회장은 이 세가지를 각각 정법시대의 법화경, 상법시대의 법화경, 말법시대의 법화경이라고 하셨습니니다.
과거원원겁 이래 모든 부처가 깨달았으며, 또 미래에 출현할 모든 부처가 깨달을 영원의 진리(묘법)와 그것을 현실의 자신에게 체현하여 살아가는 삶의 자세(연화)를 설하는 것이 법화경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