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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89년 6월 22일 화요공부방-
*** 휴휴암좌선문 첫번째 시간~!! 배성원 교우님께서 강연해 주셨습니당*^^*
◈ 휴휴암좌선문1-배성원 교우님 강연
"한의대를 다니던 대학교 시절, 다른 사람과는 달리 나는 왜 이렇게 못나고 초라한가 싶어서 괴로워하다가 지리산에 여행을 갔습니다. 혼자 11월에 지리산 피아골에서 길을 잃어, "얼어 죽겠구나"싶을 정도로 고생을 했습니다.
혼자 산을 걷는데, 산 중간에 물이 흐르는데, 바위 틈새로 흐르는 물이 거품이 있고 요란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올라가 보니, 거기에는 맑은 물이 고요하게 고여있는 거에요~!!
그것을 보니 마음이 확 밝아졌습니다.
내가
잘난 그 친구들 만나기 전에는 잘
살았는데, 친구들 만나서 그런 비교심이 생기고 괴로워졌구나.
내게는 원래 요란함이 없었는데 친구들을 만나 그 때 요란해진 것이다.
물도 이러한 상태이구나.
아주 맑은 물이 흐르는데 경사가 지어, 거품이 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것 뿐이구나.
그때부터 가슴에 얹힌 것이 탁 풀렸답니다."
◈ 질문과 답변
Q. 김도진 : 왜 굳이 좌는 무엇이고, 선은 무엇이다 하고 구분을 해 놓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배성원 : 좌선을 하다 보면 적적성성이 결합되어 있다.
Q. 김도진 : 진공=좌, 묘유=선, 공적=좌, 영지=선 이라고 보아도 무방한가요?
A. 배성원 : 그렇게 보아도 될 것.그러나 결국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Q. 윤효근 :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으라 "하셨는데 , 체를 삼는 것과 용을 삼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궁금
A. 배성원 : 예를 들어 누가 나를 괴롭힌다면--;; 회광반조 - 먼저 자성자리를 반조해서 그것으로 체로 삼으라.
그리고 "내가 못생기니까 못생겼다 그러겠지"하고 돌려 생각하는 것이 용을 삼는 것.
내 생각에는 실제 일을 겪을 때에는 자성반조, 회광반조가 유익하지 않겠는가 싶다.
◈ 교무님 설법
휴휴암(休休庵)이란, "쉬고 쉬는 암자"란 뜻입니다.
좋겠지요?
*^^*
휴휴암(休休庵)이 중국의 평강이라는 곳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몽산덕이선사가 실제로 휴휴암에서, 이 좌선문대로 선풍을 크게 떨쳤다고 하며, 고려 말 나옹선사가 휴휴암에 3개월동안
사셨다고 합니다. 그 때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왜 이것을 불조요경으로 채택하셨을까요?-대종사님이 생각하는 무시선법이 여기 들어있기 떄문입니다.
무시선법은--, 흔히 생각하는--, 앉아서 하는 선이 아니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있는 좌선을 이야기 합니다.
먼저 질문-
"나는 선을 매일 조금씩 하고 있다"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나머지 다 나가실까요?---*^^*
□ 사리불과 유마거사
*** 유마거사는?
세계 3대 거사 중 한분이라고 합니다. 세계 3대거사는,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 한국의 부설거사입니다.
부처님 당대의 유마거사가 아주 실력이 있어서, 유마거사에게 심부름을 보내면 당하고 오므로 항상 꺼렸다 합니다.
그런데 이 유마거사가 돌아다니다가
지혜제일이라는 "사리자"를 만났습니다.
사리자는 그 때 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마거사는 사리불에게 "당신은 선을 유심으로 합니까? 무심으로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사리불이 대답하지 못하니까.
유마거사는, "만약 당신이 무심으로 한다면 천지가 다 무심으로 함께 선하고,
유심으로 한다면 준동함령이 개유불성이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유심으로 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리불이 아무런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 왜 영육쌍전을 해야 하나? 동정일여를? 좌와 선을 해야 하나요?
Q. 교무님 :우리는 왜 영육을 쌍전해야 합니까?
A. 김도진 법우님 : 영과 육이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에/---;; 맞지요.
동정일여-동정이 하나이면서 동(動), 정(靜)이기 때문에 동정일여를 합니다.
왜 좌와 선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나가봅시다.
□ 시작하기 전 당부말씀.
시작하기 전에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좌선이란--??
첫째, 이론이 아니다.
둘째, 문자가 아니다.
셋째,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네번째,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다섯번째, 업장과 무관하다.
여섯번째, 언어가 아니다.
일곱번째, 사려로 들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관조로써 깨쳐 얻는 것이다.
여덟번째, 혜량(많이 듣고 )으로 안된다.
아홉번째, 명상으로 따지지 말아라.
열번째, 대신 시킬 일이 아니다.
이것을 먼저 전제로 두고 이야기합니다.
□ 성품과 정신과 마음.
① 성품은- 회복한다 단련한다 ; 復性(복성)
② 정신은- 수양한다
③ 마음은- 공부한다 닦는다 ; 修心(수심) (수심결)
정신은 수양하는 것, 마음은 닦는 것.
만약 마음을 수양해버리면, 어떤 때는 참 좋은데, 어떤 때는 버려버립니다. 왜냐 마음에는 좋은 마음도 있는 반면에,
분별성과 악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수양해 버리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냥 "마음"이라는 단어를 쓰면,
분리된 것 중의 하나인 뜻으로 쓸 때도 있고, 세 가지가 섞여진 마음을 쓸 때도 있습니다.
정산종사님 "마음공부 잘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되자"고 하신 것은--:: 정신과 성품을 다 합해버린 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지선(至善)이란-, 극락(極樂)이란-,
* 지선(至善)이란-악을 상대한 선이 아니다.
'착하게 살면 되지 않느냐' 하는 말은 지선이 아니다.
저 일원상 자리는 선도 악도 없다, 그 자리가 바로 지선이다 하겠다.
보통 사람은 상생 상극이 항상 짝한다. 그리하여 보통 선에 집착한 사람들을 보면 악을 미워한다.
원래 없는 그 자리에 나타난 선함이어야 한다.
* 극락(極樂)이란-,고와 낙을 초월한 자리를 말한다. 보통 지선과 같이 쓰인다.
보통 사람들은 열심히 낙을 쫓아간다. 그런데 그것은 극락에 바탕한 낙이 아니라 고통을 피하기 위한 낙을 찾아간다.
지선은 체가 된다. 그리고 선의 용은 성성(惺惺)이다. 마땅히 스스로 총총하다.
지선(至善)-체
성성(惺惺)-용
* 지법(至法)이란-. 법이라는 것에 집착해 버리면 법이 아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 "법법무법법"이라 하셨다.
나는 원불교인이라는 데 집착해 버리면 비원불교인이 "너나 잘 다녀라"한다.
지선의 자리는 법이라는 것도 텅 빈자리.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도 없다, 그름도 없다,
나는 원래 지혜롭다는 말도, 멍청하다는 말도, 선도, 악도, 거짓말이다. 나는 원래 나태하다. 부지런하다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 자리에는 선악도 미추도 없다.
우리는 "지선의 자리는 그런 자리다. 나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다"하는 것을 신심으로 받들어야 한다. 그리고 선을 할 때
지선의 자리에 합일하여야 한다.
□ 체와 용이 어떤 관계인가.
표리의 관계이다. 상즉관계이다. 지선과 성성은 하나인데, 굳이 설명을 하기 위해서 나누어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左(좌) |
禪(선) |
至善(지선),寂寂(적적) |
惺惺(성성) |
體(체) |
用(용) |
靜(정) |
慧(혜) |
眞空(진공) |
妙有(묘유) |
定時(정시) |
動時(동시) |
無(무) |
有(유) |
如來禪(여래선) |
祖師禪(조사선) |
안으로 |
밖으로 |
잡념제거 일심양성 |
불의제거 정의양성 |
심지는 원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건마는 |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정혜계를 세우자 |
세상 사람들은 動時(동시)만 체로 삼아
산다.
단생관을 가진 사람은 열심히 이 생에서만 산다.
영생관을 가진 사람은 영육이 하나이지만 영이 체이다. 하나이면서 둘이요 영이 체이다.
그리하여 교당에 오면 "그래, 육신이 참 나가 아니라 정신이 참 나지" 하고 안다.
정에 바탕한 학문과 기술, 재주이어야 한다. 그리고 참 진공은 공이불공(空而不空)이라, 공은 공인데 불공이어야 한다.
진공이 아닌 공만 있는 사람은 無記(무기, 기록이 없다)나, 혼침(졸다)에 떨어지기 쉽다.
선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으면 번뇌, 망상에 빠지기도 쉽다.
□ 선을 위한 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선에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일상성. 習禪(습선)
- 선을 위한 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 일상수행의 요법을 잘하기 위한 선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은, 단전주: "지선의 자리에 합일해서 지선의 자리에 합해 쓰자" 하는 것이 된다.
좌선의 대지에 적적성성(寂寂惺惺)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는 표현이 있는 까닭은--;;
이쪽과 저쪽이 같이 되어야 한다. 그 때 동정간 불리선이요, 평상심이 되는 것이다.
# 절단사상(截斷思想)호대 불락혼침(不落昏沈)을 위지자(謂之坐)요,
밖으로 끊고 안으로 잘라내다.
사상(思想)-분별망상. 산란한 생각들을 말한다.
사(思,안으로 사유) 상(想,밖으로 추측) 이것이 다 망상.
그리고.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좌라 한다.
# 재욕무욕(在欲無欲)하고 거진출진(居塵出塵)을 위지선(謂之禪)이며
욕심 사이에 있으나, 그 욕심에 끌려가지 않고, 생활은 재가로 살지만 내 마음은 청정한 자성 자리에 묻혀 있는 것을 선이라 한다.
거진출진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것은 연꽃, 진흙 속에 살지만, 그 먼지를 벗어나서 깨끗하게 꽃을 피운다.
흔히 "화이불류(和以不流)"라고도 한다. 화합하나, 거기에 흐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술 먹는 사람들, 직업상 몇 잔 따르고 마실 수는 있지만, 거기에 흘러서는 안된다.
한잔씩 마시다가 니가 나 먹냐, 내가 너 먹냐 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전농청년회에 송정진이라는 청년이 있다.
얼마 전에, 간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왔는데, 점심을 누구와 함께 먹을까 하다가, 송정진이라는 청년이
근처에 왔다고 하여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예전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보니
"당구를 한게임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송정진 법우님과 시립대에서 당구를 쳤는데,
오늘 교당에 나왔으면, 그 취사가 자비방편이요, 안 나왔으면 자비방편이 아니었겠지요*^^*
오늘 안 나온 것을 보니 자비방편이 아니었나 보다--;;
거진출진(居塵出塵)으로 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송정진 법우님은 그날만 무슨 특별한 일이 있으셔서....."
법당에서는 "그래, 나도 제대로 살아야겠다"하지만, 당장 밖에 나가서 버스기사가 잘못하면 금방 화내지 않는가.
거진거진(居震居震)은 비종교인. 우리가 종교인이라면 거진출진(居塵出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서 재가출가 구분 없다고 해야지, 자신들은 놀 것 다놀고, 쉴것 다쉬고 재가출가 구분없다고 하면 되겠는가.
Q. 서혜원 : 휴휴암좌선문은 무시선법에 가깝지 않겠는가.
하루에서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는 시간들이 있는데 그것을 무기라 할 수 있겠는가.
A. 교무님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이러한 것을 낭비라 하고, 돈낭비, 시간낭비를 기재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눈을 감아보세요.
눈을 감으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지요? 그것이 바로 좌(坐).
눈을 떠보세요.
보이지요? 이것이 선(禪).
눈을 다시 감아보십시오.
제 목소리 들리시지요? 이 목소리를 들리는 것이 성성(惺惺)합니다. 그런데 이 목소리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이 듣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귀를 통해서, 목소리를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이 아는 실체를 찾아가봅시다. 어디에 가 있느냐.
□ 묵조선과 간화선
좌선의 방법에 두가지.
① 하나는 묵조선. 묵묵히 관조한다.
② 다른 하나는 간화선.
아까 내가 말한 것이 간화선. 무엇이 듣고 있느냐를 생각하는 것.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대개 이것을 합니다.
그런데 대종사님은 먼저 간화선을 하지 말라. 먼저 묵묵히 관조하는 묵조선을 하라,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은 묵조선을 먼저 하고, 마지막 의두연마 시간에 간화선을 하라.
왜냐,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갑갑할 노릇이기 때문에.
묵조선을 하여, 수승화강을 시킨다. 수승화강이 되면, 물결이 자면 훤히 내려다보이듯이, 내려다보일 것이다.
물에 빠진 물건을 찾을 때 막 헤칠 것이 아니라 가만히 놔두면 곧 보이는 것처럼.
때로는 놔둬버리고 찾지도 않아버린다. 그러면 스스로 망념이 쉬고, 나타나버린다.
처음에는 어디에다가 두고 한다요?
나중에는 단전주 선법.
나중에는 단전관. 지선의 자리를 단전이라 한다.
오늘 내가 강의를 잘 했다면, 여러분이 "좌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주에는 마음자리의 실상, 마음의 진체자리를 설명한 부분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질문과 답변
Q. 김성식 : 좌선법에 보면, 눈을 뜨고 하는 것이 맞습니까?
A. 교무님 : 눈을 뜨면 번뇌망상, 감으면 수마.
그래서 정전 좌선법에 보면, 반개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반개하고 보는 것은, 시지불견(示之不見), 청지불문(廳之不聞),
봄이 없되 보고, 들음이 없이 들으라 하는 것입니다.
수마의 위험이 없을 때, 잠깐 입정할 때는 눈을 감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한 시간 정도 선을 할 사람이라면 눈을 반개하고 해야 하겠습니다. 아니면 수마~!!
Q. 이혜란 교우님 : 유무념대조만 잘되어도 무시선법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교무님 : 유무념 대조는 무시선법의 실천방법이다. 마음만 챙기면 되느냐. 아니다.
고통을 싫어하면서 낙을 취하겠다는 마음으로 유무념대조를 하는 사람은,
결국은 짝하는 세계에 떨어져서 고통의 세계로 가게 되어 있다.
Q. 정말 마음을 챙기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A. 교무님 : 법강항마위 들어가신 분들은 거의 다 하신다. 우리 청년들도 많이 합니다.
원불교가 생활종교라고 하면서, 오히려 신앙부분도 수행부분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문제점이 있다.
정말 생활종교라면, 생활 속에서 신앙과 수행을 철저히 해야 할 것.
첫댓글 와~~ 이리도 공부방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릴수 있다니~~ 순명 넌 아마 천재일꺼야!! ^^
맞아맞아-ㅂ-ㅋ 순명언니는 천재일꺼야-ㅂ-훗
아주 좋아요! 성원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늘 휴휴암 좌선문 때 친구 데리고 가는데, 어려울 꺼 같아서 걱정되용;;;
맞아요. 성원부처님 감각감상 듣고 참 좋았어요. 참 깨달음이란, 그럴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닐런지. 새록새록... 한때는 감각감상을 갖다붙이는 것이라 생각했지마는.. 사은님이 항상 주시는 깨달음의 메시지. 내가 주파수를 맞추면 되는데, 산만하고 게을러서 캐치를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요. 마음이 열려있으면 보이고 듣는 것이 모두다 감각감상이 될수 있겠지요. 순명교우님의 공덕이 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