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100년사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다고 평가 받은 영화.
출연: 이브 몽땅, 다니엘 오떼유, 제라르 드 빠르디유, 엘리자베스 드빠르디유
2부에는 성장한 주인공 마농역으로 톱스타 엠마누엘 베아르까지 배역진이 초호화판이다.
이 영화는 전미 영화 비평가협회 작품상 및 시네마 아카데미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가 흔히 그렇듯 예술성이 뛰어나긴 한데 오랜 경험으로
끝까지 보려면 느릿느릿 전개되는 지루함을 참을 인내심과
경우에 따라서는 밑도 끝도 없이 난해한 스토리를 잘 꿰어맞출 이해력이
필요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던지라 잠시 망설였지만
그 모든 고행(ㅋㅋ)을 한번에 보상 받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풍경과 여주인공의 매력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학창시절, 제 2외국어로 불어를 공부하면서 불어를 너무 좋아하게 된 나머지
불문과를 지망했었지만 대입시험을 망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대신 뻔질나게 프랑스 문화원을 쫓아다니며
그 아쉬움과 미련을 달래곤 했는데
그 때 프랑스 문화원에서 봤었던 프랑스 영화들은 결론이 한결같았다.
'지루함'
딱 그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졸음이 오는 눈을 비비고 간신히 버티면서 그나마 끝까지 보기라도 한 건
정체도 불분명하게 막연했던 '불어 로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못 할...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영화는 몰입도가 높았다.
전개도 빠를 뿐더러 귀농가족의 눈물겨운 고행과 실패를 둘러싼
인간 내면의 깊은 심리묘사,
통렬한 복수와 권선징악 뿐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힘까지!
웬만한 스릴러 영화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긴장감이 있는 영화였다.
게다가 마치 천상의 엔젤이 지상에 하강한 것인가 할 정도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마농 역의 엠마뉴엘 베아르의 청순미와 야성미를
감상하는 것은 또 하나의 보너스라 할만 했다.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프랑스 프로방스의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평화로운 풍경만큼 인간들의 삶도 그러하다면 누군가 불행을 겪는 일은 없겠지.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는 추악한 동굴이 도사리고 있고 그로 인해 인간의 삶과 역사에는
숱한 비극과 아픔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있다.
그래서 주옥같은 소설이나 영화도 나오는 거겠지만 말이다.
병역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위골랭은 카네이션을 재배해 큰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가진다.
그는 삼촌 빠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조카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빠뻬도 적극적으로 돕기로 한다.
농사에는 많은 물이 필요하기에 샘이 있는 이웃의 땅을 사려고 하지만
의외로 땅을 쉽게 팔 것이라 생각했던 이웃은 완강히 거절하고
그를 설득려다가 그만 실수로 죽이게 된다.
두 사람은 당황했지만 이내 이 사실을 은폐하기로 하는데.
땅 주인이 사망했으니 오히려 땅을 헐값에 사들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당치않은 초긍정 마인드인지...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땅은 그의 누이, 플로레뜨의 아들인 장에게 상속된다.
그리고 장이 가족들과 함께 마을로 귀농하면서 물의 근원인 샘을 둘러싸고
인간의 탐욕이 서로 얽히고 그로 인해 생사가 엇갈리는 비극이 벌어지며
3대에 걸쳐 이어질 사랑과 숙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낙담한 빠뻬와 위골랭은 어떻게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계략을 짜는데
샘을 시멘트로 막아버린 것이다.
'샘이 막혀 물이 없으면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가.'
'그러면 별 수 없이 이곳을 떠나겠지.'
'결국 땅은 우리 차지야.'
'머지않아 장을 쫓아버리고 그 땅에 카네이션 농사를 해서 부자가 될 수 있어.'
이것이 그 둘의 생각이었다.
이런 내막을 알 길 없는 장과 그 가족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행복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마을 구성원인 된, 장의 가족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적대시하는 분위기까지 보인다
더군다나...
농사에 있어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물.
그 물이 나오지 않아 매일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며
장의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는 물줄기를 찾아 매일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땅을 판다.
포기할 줄 모르고 물을 퍼올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던 장은
안타깝게도 그만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배후에는 빠뻬와 위골랭의 모략이 있었음을 알게되는 마농.
장이 죽자 빠뻬와 위골랭은 막았던 샘을 뚫고 그들의 승리를 축하한다.
그들의 모습을 어린 마농이 모두 지켜보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아버지 장의 죽음이 누구때문인지 알고 있는 마농은
성장해서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산에서 홀로 염소를 키우며 살고 있다.
장을 따돌리던 마을 사람들 역시 두 사람이 샘을 막았음을 공공연한 비밀로 알고 있었다.
결국 장을 죽인 건 빠뻬와 위골랭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무언의 협조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늘을 지붕 삼아, 염소를 친구 삼아 생활하면서
산길을 능숙하게 다니고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마농의 가슴 깊은 곳에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위선적인 마을사람들을 향한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운명이 대신 복수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어느새 위골랭의 가슴엔
아름답게 자란 마농을 향해 큐피트의 화살이 박힌다.
그러나 그 화살은 애초에 부러진 화살이었다.
마농의 철저한 외면과 위골랭의 덧없는 기다림.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는 평행선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느날, 우연히 샘의 원천을 발견한 마농.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
그 옛날, 빠뻬와 위골랭이 그랬듯이 샘을 막아버린다.
마을 전체는 극심한 물부족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성당에 모여 비를 내려달라는 기도를 하는데
죄 지은 것이 있으면 다 얘기를 해야 한다는 신부의 말에
그제서야 사람들은 빠뻬와 위골랭이
예전에 한 일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새로 부임한 마을의 교사는 마농에게 한 눈에 반하고 그녀의 사연을 알게되어
마농을 도와준다.
악행이 드러나고 그에 따른 댓가를 치르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마농은 어여쁜 신부가 되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보면서
나 또한 관찰자가 아닌 그러한 당사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날이 무덥다.
어디에선가 애타게 물을 찾는 이가 있다면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그들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생명과도 물이
풍성하게 행복하게 쏟아지기를 소망한다.
첫댓글 예전에
보았지만
가물 가물 했는데
다시 한번 영화를 재조명해 봅니다.
다시 봐도 재미있을 거예요^^
마농의 샘
저도 감명 깊게 본 영화네요.
오늘은
너무 잘 설명을 해주셔서 영화보다는
학창시절과 프랑스 영화에 대해 라일락님과 대화해 보려 합니다.
일단 너무 좋네요.
비록 인터넷상이지만 영화 담론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글고
저보다 한 20살은 어리게 보였는데 프랑스 문화원 학창생활 모습을 보니 저랑 동시대 분이시군요 ㅎㅎㅎ
저 지금은 아랫동네 살지만 중 고 대 모두 서울에서 보냈답니다.
불어과 아니고 무슨 과를 나오셨을지 몹시 궁금합니다.
불란서 영화, 우리때는 프랑스영화를 그렇게 표현했지요.
예술성 그리고 지루함이라는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특히 칸 영화제 상을 받았던 모델이라는 영화는 모델을 놓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붓의 소리만으로 거의 1시간을 보내
거의 미칠 지경이었답니다. 물론 사각사각 하는 붓의 소리는 아직도 들리는 듯 하고요.
그래도 프랑스 영화라면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신조어를 내놓은 아랑들롱과 마리라포레의 태양은 가득히의 감동
뤽 벡송의 니키타 레옹
글고
지독히 야하면서 지독히도 서글펐던 베티블루
모니카 벨루치의 라빠르망
명작도 많네요.
감사해요. 600자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보셨군요.~
매니아적 인 영화평 인상 깊네요.
마농의샘 을 본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
이공간을 자주 빛내 주시길 기대합니다. 라일락님 ~
감사합니다.^^
마농의 샘
지금이라도 한번 보고 싶네요 ~~
헌데 내용의 모습은 우리네 곁에서도
아직도 많습니다 ~~
무비님
마농의샘도 올리셨다길래 찾았어요
영화평론가신가요?
사진과 스토리가 적절해서
옛날생각하며 천천히 읽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이 다시 전해져 오네요..
좋은 하루 시작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