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지난 주 다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말씀을 전해 주신 den Butter 목사님과 사모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사모님께서 특히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하셨다.
예를 들면.
식사를 하면서 식비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 야채 가격이 얼마냐,,,,
네덜란드에 비해 비싸다, 야채, 우유, 고기 등 식재료는 한국이 더 비싸다고 설명해 드렸더니
왜 그러냐고 물으신다.
우유와 고기가 비싼 것은 그렇다치고,, 수입하는 식재료는 세계 어디든 비슷할 텐데.
한국에서 생산되는 사과나, 감자, 배추가 왜 비싸냐고 물으신다.
음~~ 왜 그런지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우리가 자주 먹고 한국에서 재배하는 오이가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오이보다 왜 더 비쌀까?
생활 수준에 비해 야채 가격이 더 비싼 것은 왜 그럴까?
농약이나 기타 안정성에 있어서는 네덜란드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닌데....
햇볕도 더 좋은 우리나라가 왜 오이, 사과 가격이 더 비쌀까?
글쎄요...
그리고 그날 우리 집 거실 한 켠에 옷이며 기타 여러 가지 살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살림을 정리하다가 고려신학대학원 ‘다비다의 집’에 전달할 물건을 모아 두었다.
손님을 맞기 전 그런 물건들은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치웠어야 했는데
금, 토요일 3군데 이사 업체의 견적을 받고 긴장이 풀려서
주일 식사 준비만 하고 집안 정리는 마무리를 못한 채 손님을 맞은 것이다.
변명을 해야겠기에 우리가 곧 이사를 간다, 그래서 집안 정리 중이라 집이 어수선하다 고 했더니
왜 이사를 가냐고 물으신다.
보통 2년 계약으로 집을 빌리는데 집값이 자꾸 오르고. 집을 빌리는 비용이 많이 올랐다.
그래서 2년 마다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주거비용이 큰 부담이다. 라고 했더니
주택 가격이 왜 오르느냐? 집을 빌리는 비용이 왜 더 많이 오르느냐고 물으신다.
네덜란드와 다른 우리나라의 주택 상황을 어찌 설명할까?
경제 상황과 관련된 주택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뭐 경제나 주택 관련 전문가도 아니고...
몇 가지 드러나는 상황을 이야기 했지만 결국에는
아주 복잡하다. 여러 원인이 있다. 한국 고유한 상황이 있다 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네덜란드와 우리나라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지만
특히 주택 문제는 참 다르다.
작년엔가 EBS에서 ‘집’을 주제로 다큐를 방영했는데 그때 네덜란드 주택 정책이 소개된 적이 있다.
주거 안정,,,,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을 넘어서는 정책이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우리는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고 왔다.
남편이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던 동안 우리는 7년 넘게 한 집에서 살았다.
처음 얻은 집에서 계속 살다가, 한국 돌아올 때 이사 나왔다.
우리가 네덜란드 깜뻔에 도착했을 당시는 그곳도 주택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사를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래 기다려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있는 집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네덜란드는 개인 주택도 있지만, 대부분 민간주택조합 체제이다.
이사를 원하면 주택조합에 신청을 하고 그 가족 상황과 기다린 시간에 비례에 점수를 받는다.
그 점수에 따라 순서대로 집을 얻을 수 있다.
94년 당시에 깜뻔으로 이사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보통 1년 이상 기다렸다가 이사를 온다고 들었다.
실제로 우리와 가까이 지낸 네덜란드 친구는 남편의 직장이 깜뻔이어서 이사를 원했는데
주택을 신청하고 1년 반을 기다린 후에 집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네덜란드에 도착한 후 집을 신청했는데
당시 신학교 외국인 담당자와 연락이 원활하지 못해
(메일도 없고 1주일 이상 걸리는 국제우편으로 의사소통하던 시절이라)
집을 미리 신청해 놓지 않았고, 첫 만남에서 서로 몹시 당황하였다.
우리 이제 집도 없이 어떡해요?
그런데 집을 신청하고 2달 만에 우리가 살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초특급으로 집이 배정되었는데 그것은 뱃속에 있는 예림이 덕분이었다.
동양에서 공부하러 온 유학생 부부가 있는데. 몇 달 후 아기가 태어나니 집이 급하다.
는 긴급 상황을 고려해 준 결정이었다.
세금도 안 내는 가난한 동양인 학생 부부에게
자국민보다 우선하여 집을 배정할 수 있었던 근거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집이 준비되어야 한다.’ 였다.
우리 정서로는 참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지만
네덜란드 국민들은 이런 결정을 당연하게 여겼다.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 때문에 자국민의 순번이 밀렸는데도 뭐라 토 다는 사람이 없었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이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그렇게 이사한 집에서 귀국할 때까지 살았다.
우리가 살았던 집은 3층 주택이었고 같은 크기의 집이 6채 나란히 붙어 있었다.
결코 작지 않은 보통 네덜란드 가정이 사는 집이었다.
자녀가 8명인 교인도 우리와 같은 크기의 집에서 살았다.
지혜롭게 1층부터 3층까지 꽉 채워 살았다.
그에 비해 우리는 식구 2명에서 3명, 4명이 되도록 헐렁헐렁하게, 그래서 겨울에는 썰렁하고 춥게 지냈다. ㅋ
평생 이렇게 큰 집에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감사했다.
더구나 앞마당 뒷마당에 창고까지 있어서 우리로서는 저택 수준이었다. 많이 감사했다.
더 감사한 것은 그 집에 대해 주택 보조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집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비싼 집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수입이 적었기 때문에 임대료의 절반 이상을 정부에서 보조해 주었다.
집에 살 수 있도록 우리 수입에 임대료를 맞춰준 것이다.
해마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임대료도 조금씩 올랐는데 (4~5% 정도였다)
그때마다 정부 주택 보조금이 늘어나 우리가 내는 임대료는 똑같았다.
우리의 수입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임대료는 올랐지만 우리가 내는 금액은 바뀌지 않았다.
참으로 희한한 나라이고 가난한 우리에게는 고마운 나라였다.
임대료가 사는 사람의 수입을 고려해 책정되다니...
민간주택조합에서 그런 법을 실행하다니......
이것은 자본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
20세기에 네덜란드 기독 정치가 아브라함 카이퍼가 그냥 그런 존재가 아니었음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덕분에 우리는 7년간 이사하지 않고 아주 평안하고 안전하게 살았다.
앞집, 뒷집, 옆집 이웃과도 친구가 되었고. 동네 주민으로 안착했다.
네덜란드에서 이사 안 하고 살 수 있어 좋았는데 한국에서는 이사가 잦아서 힘들다고 했더니
어떤 분은 부동산 중개인도 먹고 살아야 하고, 이사 업체도 먹고 살아야 하니
이사를 자주 하는 것이 경제에 좋다고 하셨다.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때일수록 이사도 자주하고
그 참에 가구도 바꾸고 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단기적으로는 그 말이 맞다.
그러나 이사를 본인이 원할 때만 이사하는 네덜란드는
장기적으로는 모든 국민의 생활이 안정된다.
2년 마다 들어가는 이사비용과 부동산 복비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그보다 더 큰 것은 주거 안정으로 인한 정서적인 안정감이다.
그 생각을 하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한 집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진득이 사는 것이 이 땅 한국에서는 진정 꿈으로만 존재할까?
물가가 올라도 주택 임대료가 올라도
사는 사람의 수입이 오르지 않으면 지불하는 임대료는 그대로인
그런 법이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런 법은 공산주의식 법이라고 말하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약자 보호는 이런 장치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네 많은 공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네요
내것을 내것이라 하지 않고 우리것이라는 생각에 공감대가 넓어지지 않으며힘들것 같아요
이러부분의 사회저갈등은 겨속 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