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정치인들은 정부나 자치단체 혹은 여당의 책임 있는 자리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찌된 일인지 이전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언행을 목격하게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소신을 가지고 자신이 끊임없이 주창하던 것이 지지의 담보로 작용해서 현 자리가 설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 순간에 뒤집는 것이다.
그들은 그럴 때마다 늘 상황논리를 들이댄다.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라고 말이다. 마치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라고 하는 예측이 절로 들 정도가 되니 도대체 자리를 위한 자리인지 아니면 진실로 국민을 위한 자리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미국의 대통령들 가운데 아이젠하워는 군인 출신이고 레이건은 배우 출신이다. 그리고 지금의 부시는 중앙정보부 국장 출신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전의 직업들에서 자신들이 주창하던 이른바 소신을 자리와 상관없이 지켜냄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오랜 존경을 받았다. 물론 지금의 부시는 빼고.
그들은 자신들의 소신을 굳건하게 지켜냄으로써 결국 국민들의 신뢰가 유지되고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할 일이다. 그래서 미국은 군인출신이라고 해서 배우출신이라고 해서 중앙정보부 출신이라고 해서 배척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소신이 지지자들과 암묵적으로 결합이 되어 있어 국민들이 헷갈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을 보자. 많은 정치인들이 화장실을 나오고 나서 놀라운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운동권에서 큰 인사가 운동권의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이나, 어느 누구보다 극렬하게 노동운동을 하던 인사가 반 노동자적인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평소 눈만 뜨면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밥을 먹던 인사가 어느 날 입장을 완전히 바꿔 반 개혁에 앞장서는 일도 흔하다.
우리는 군인 출신, 배우 출신, 국정원 출신, 법률가 출신, 심지어는 학자 출신도 모두가 자리만 차지하고 나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신념 따위는 손바닥 뒤집듯 한다. 도대체가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지금 기업들이 수십 조 원의 현금을 보유하고도 설비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것도 결국 '불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큰 반성을 해야 한다.
공자는 국가가 제대로 서는데 세 가지 요소를 들었다. '경제'와 '국방' 그리고 '국민의 신뢰'가 그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신뢰'를 그 무엇보다도 중시했다. 어떤 정부도 국민의 신뢰에 바탕하지 않고서는 제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내 놓는다 한들 겉돌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신뢰'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은 한마디로 砂上樓閣(사상누각)에 불과함을 역설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화장실 가기 전의 소신을 분명히 확인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들이 최소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가장 가까운 곳부터 자신의 소신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늘 상황논리에 빠져 자신의 안위만을 살피는 것은 그저 노예근성으로 卒府(졸부)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한낮 도적놈의 행태와 별반 다름이 없는 것이다.
화장실 이용을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늘 악취가 진동하는 곳을 누가 즐기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를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좋던 싫던 살려면 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오늘만 화장실을 이용할 것 같이 하는 인사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는 꼭 중앙정부나 정치권만을 지목해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수원시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다.
특정인을 거론하진 않지만 유사한 정책과 집행에 있어서 노동조합의 신뢰는 말할 것도 없고 직원들의 신뢰를 더욱 도탑게 해야 한다. 항상 상황논리에 빠져 불신의 싹을 키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 집행부의 지도자들은 이 점을 보다 확실히 인식하여 끊임없는 신뢰의 기반을 적극적으로 쌓아가야 한다. 그것이 소신 있는 지도자요, 진실로 용기 있는 지도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