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억함
아들 성경퀴즈 준비 때문에 느헤미야서를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그 덕에 이전에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느헤미야서 8장에는 학사 에스라가 등장하여 모든 백성에게 율법책을 읽어준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 아주 긴 시간.
*에스라가 책을 펴니 모든 백성이 일어나 말씀을 듣는다.
=>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었을까?
설교를 일어나서 들을 수 있구나.....
*제사장들이 율법의 말씀을 해석하여 말씀을 깨닫게 해주자 백성은 다 운다.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말해 준다.
*이에 모든 백성은 정숙하게 하나님의 성일을 조용히 근심하지 않고 지낸다.
먹고 마시고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한다. (느 8:11~12)
=> 정숙하고 조용하지만 크게 즐거워한다는 상반돼 보이는 이 표현. 어떻게 했을까?
*이튿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
말씀을 보다가 초막절을 지키기로 한다. => 말씀을 배우자 즉각적인 순종, 실천이 따른다.
*에스라는 7일 동안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했다.
=> 에스라 주도가 아니라 백성이 원했던 것 같다.
말씀에 대한 진지함이다. 아마 이때도 새벽부터 정오까지 일어서서 말씀을 듣지 않았을까?
8장은 7째달 첫째 날 일어난 일부터 설명하고
9장에는 7째달 24일에 일어난 일로 이어진다.
*백성은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한다.
낮 1/4은 제자리에 서서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이 낭독되는 것을 듣고
또 낮 1/4은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한다.
=> 말씀에 집중한 시간이 4주에 다다르자 백성은 회개한다.
말씀을 깨닫는 것에 이어지는 회개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인 듯 하다
*그리고 9장 5절부터는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 이 부분을 기도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죽 나열한다.
창조부터 아브라함과의 언약,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과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술된다.
이것이 기도란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죽 나열하는 것.
=> 예전에 설교에서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복창이어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바라는 바를 간절히 고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바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구구절절이 말하는 것이
기도다.
문득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공회 앞에서 천사의 얼굴로 했던 설교가 떠올랐다.
비슷한 내용이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죽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끌어오신 과정을 서술한다.
기도나 설교나 비슷하다.
히브리서 11장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조상들을 어떻게 이끌어 가셨는지 서술한다.
이 본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역사를 기술하는 관점이다. 그 표현들이 기가 막힌다.
세상의 주인이요,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표현들이다.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주께서 그들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 역사를 회고한 스데반은 현재를 해석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광대하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인자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분의 백성 인간을 인도하시는 과정이요,
자신의 백성답게 살도록 훈련하시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보며 현재를 인내하고 미래를 소망할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이 구속사 설교의 원리이기도 하다.
기도와 설교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정확한 기도와 설교가 된다.
이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기도요. 잘못된 설교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말씀을 읽고 배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운다.
1차 귀환 때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4만하고도 몇 명인지 외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래 전 이스라엘에 있었던 일이 지금 나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