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극단의 하나로 알려진 극단 ‘와라비자(わらび座)’의 뮤지컬 <제비>(つばめ; 츠바메)가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53년 역사를 지닌 극단 ‘와라비자’(대표 코지마 가츠아키)는 일본 민요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북서부 아키타 현에 자리를 잡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순수 민간 집단 예술촌인 ‘타자와코 예술촌’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연극 단체. 극단 이름인 ‘와라비(わらび)’가 ‘고사리’를 나타내듯 산골지방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면서 어렵게 시작된 이들의 문화운동 정신이 오늘까지 이어져 와라비자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뮤지컬 <제비>(つばめ; 츠바메)는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주최와 한일국민교류의 해를 기념해 8월 25일 일본에서 처음으로 막을 올린 이후 350여 회에 달하는 공연을 통해 일본 젊은이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한일 양국의 비전을 제시해온 뮤지컬이다. 이를 바탕으로 원작자인 제임스 미키가 뮤지컬이라는 제한된 형식 속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역사적 사실들을 추가해 드디어 소설 <제비>를 완성했다.
소설 <제비>는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 40년에 파견된 ‘쇄환사’ 일행을 모델로 한다. 일본으로 간 조선인 당상역관 이경식이 우연한 자리에서 십년 전 실종된 아내 춘연(오엔)을 만나게 되나, 아내는 이미 일본인 무사 미즈시마 젠조와의 사이에 이치타로라는 아이까지 있는 몸이다. 이경식과 젠조,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 하는 연의 고통이 바로 ‘제비’에 비유된다. 작가 제임스 미키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시대의 아픔을 재조명하고 있다.
일본인의 눈으로 본 4백 년 전의 전쟁과 그것이 불러온 참극이 일본인들 스스로의 정화 과정을 거쳐 한국에 소개된다는 점, 또 왜란 당시 납치된 백성들은 동남아와 유럽 등지로 팔려가거나 노예로 전락했고 일부는 일본인들의 아내나 첩이 되어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뼈를 묻어야 했다는 점 등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과거의 비극을 상기시키고 그 사실(史實)들을 알려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소설 <제비>의 미덕은 저자의 국적에 관계없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서술과 역사에 대한 균형감각에 있다. 역사소설답게 곳곳에 당시 일본의 풍속과 사회상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유성룡의 <징비록>을 근거로 한 두 번의 왜란과 세키가하라 전투가 요약돼 있어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도공(陶工)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막부에 이르러 두 나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조선에서는 대규모 문화외교사절단인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使)’를 일본에 보냈는데, 이들의 처음 목적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불법 납치된 조선인을 조사하고 송환한다는 ‘쇄환사(刷還使’)로서의 역할이 컸다. 이후 조선통신사는 200여 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파견되었으며, 일본에게 문물 전수의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소설 <제비>는 일본인이 썼지만, 한국인이 쓴 작품이라 해도 믿어질 만큼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재연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한 조선국은 히데요시 사후에 천하를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국교 회복 요청에 응하여 오백여 명의 문화사절단인 ‘조선통신사’를 일본국에 파견했다. ‘文’으로 ‘武’를 되갚았다. 나는 <제비>를 통하여 시대의 바람에 운명을 농락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조선통신사 당상역관 이경식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 ‘文’으로 ‘武’를 극복하고 싶다” - ‘제임스 미키(三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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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미키 : 본명은 야마시타 기요모토(山下淸泉)로 1935년 구 만주 봉천시(심양)에서 태어났다. 오사카 이치오카 고등학교를 거쳐 극단 하이유자 양성소에 입소했고, 1955년 데이치쿠 신인 콩쿠르에 합격해 가수로 활동했다. 1967년 「월간 시나리오」 공모에 입선한 뒤 TV드라마 「수로표지」로 7회 일본 문예대상 각본상, 「아버지의 사과편지」로 라하 국제 TV축제 그랑프리, 「8대 쇼군 요시무네」로 제16회 일본 문예대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 「안녕, 여름의 빛이여」「착한 사람의 조건」, 연극 「날개를 주세요」「진주목걸이」 등을 연출했고, 소설「8대 쇼군 요시무네」「존재의 깊은 잠」「헌법은 아직?」, 희곡집 「결혼이란 모험」, 에세이집 「위험천만 이야기」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