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람](2010년 겨울호)이은림 시-'유리꽃병' 외1편
유리꽃병
이 은 림
강물은 아무도 몰래 흘러서
이곳까지 왔다 가는 모양입니다
꽃병속에 숨어든 물빛 좀 보십시오
물빛이 어루만지는
꽃들의 표정은 또 어떻습니까
사흘째 잠겨있는 지친 발목
핥으며 내려오는 향기로운 말들
어두워지면 달을 매단 달빛 끌고와
한가닥씩 나눠주는 강물의 손길이
쉴새없이 부풀리는 꽃들의 모습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강물은 제 갈길 가다말고
창밖만 내다보며 쪼그려 앉은
저 유리꽃병에게 살며시 왔다가
싱싱한 피 한모금 떼여주고
가버리는 모양입니다
병뚜껑에 대하여
이 은 림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발끝에 부딪힌 사이다병 뚜껑의
날카로운 울음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린다
아마도 저것은 잊어버린 몸 찾아
어디론가 떠나는 길이었나 보다
외딴 변두리 쓰레기통에나 쳐박혀 있을
빈병 하나, 그도 어쩌면
낮선 언덕을 굴러오고 있을지 모른다
가만히 멈춰서서 귀 기울여보라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해매다니는 반쪽들의 합성
사방에서 우우 몰려오고
찬밥처럼 오도도 떨면서
뱉어낸 가쁜 숨소리 구석구석 널브러지는데
이젠 모두들
익명의 얼굴처럼 돌아서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언인가
도대채 무엇을 찾기 위해
이 세상 골목을
굴러다니고 있었던 걸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135665374CA8D3D21B)
<약력>
▲1973년 경남 양산 출생. 본명 이은영.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여성신문사 주최 제7회 ‘여성문학상’ 시 당선.
▲1997년 제6회 영남일보 신춘문예 영일문학상 시 당선.
▲2001년『작가세계』 신인상 시 당선.
▲2006년 첫시집, 『태양중독자(문예중앙 시선)』발간.
▲현재, 대구시인학교 <사림시>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