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적인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안정성 없이 상업경제의 성장은 어려웠다. 상업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상업경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세습으로 권력을 갖게 된 왕이나 지배 엘리트 계층은 상업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렇지만 대외적으로 교역할 기회가 많아 교역의 중요성이 매우 큰 도시국가의 지도자들은 상업과 무역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러한 도시국가들에서는 상업경제가 발달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고대 도시국가가 페니키아와 그리스였다. - 36쪽
특권 지주와 정치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견고한 위치가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자신들의 권력을 사용하여 기득권을 보호하고, 현상 유지를 하며 경제 혁신을 금지하려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 시기에 무역과 상업은 수많은 제약을 받았다. 의복, 유리, 식기류, 종이 등과 같은 국내 ‘유치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해 수입을 제한하는 중상주의 입법이 제정되었다. 영국에서는 국내 수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강제로 생선을 먹는 특정일을 정하기도 했다. 국내 장인과 상인들이 생산한 재화를 수출하는 데는 세금을 사용하여 보조하였으며 노동자의 자유 이동이 제한되었다. -74쪽
19세기 초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이 지불되자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상류 계층도 자신들의 농장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올려줘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들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형편없이 낮다고 비난하면서 제조업을 공격하고 자본주의가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는 대중들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귀족들, 즉 영국과 유럽 대륙의 상류 계층 사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122쪽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팽창했던 원인은 자본주의가 아닌 적대적 민족주의의 팽배와 그와 결합된 극단적인 정치적 기회주의에 있다. 당시 식민지를 얻으려 했던 거의 모든 정부는 값싼 영광과 통치의 이익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구실을 내세워 기업과 자본의 이익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외국을 점령하였다. -175쪽
대공황은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적인 오류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일어났다. 과다한 확대 통화정책과 반자본주의 정책이 복합되어 1930년대 대공황이 유발되었다. 과다한 통화정책으로 생긴 거품이 터지면서 경기후퇴가 시작되었고,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취해진 반자본주의 정책으로 경제가 12년 동안이나 장기 침체에 빠졌다. 따라서 그 책임은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의회, 후버 대통령과 루스벨트 대통령에 있었다. -181쪽
중국의 부상을 두고도 중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움직이는 것을 정지된 화면으로 볼 때 나타나는 ‘스냅샷 오류’다. 이는 사실을 무시하고 경제의 흐름을 보지 않고 현재의 정태적인 장면만 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의 상태만 보면 중국은 사회주의임이 맞지만, 동태적으로 보면 중국은 과거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거기에 시장경제를 도입한 국가다. -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