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열전 내용 중에서 61세 기록에 영동~상주사이의 추풍령에 있는
도비천성(刀比川城)을 공격하여 승리했다고 기록한 내용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후대 김부식때 인위적으로 좀더 해석이 가공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당과 신라가 백제, 고구려를 멸하였으니,
백제 멸망 명분을 다른데서 찾아서 인위적으로 맞추려다 보니
열전에 이렇게 끼워 넣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김부식 수준으로는 어림없고 근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냄새가 역력하다.
왜 그러냐 하면 유신이 도비천성을 이기고 승리했다면서
그 다음 구절에 그당시 잘알지도 못하는 백제 의자왕 사정을 너무도 소상히
기록했다는 이유에서다.
그것도 마치 가까이에서 본듯이 정당성을 찾으려 의자왕을 나쁘게 평가해 놓고 있다.
그래서 정당성과 명분을 찾으려 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무왕 때부터 공격하여 차지한 곳이 추풍령이었고,
의자왕 642년에 상주 고령가야 지방 등 40성을 점령해 놓은 상태였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655년에 성산가야, 대가야 지방을 33성이나 복속해 놓은 상태였는데,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도비천성을 쳤다고 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김유신 열전 61세
永徽六年乙卯秋九月 庾信入百濟 攻刀比川城克之
是時百濟君臣 奢泰淫逸 不恤國事 民怨神怒 災怪屢見
당고종 영휘 6년 을묘년 가을 9월 유신이 백제로 들어가 도비천성을 이기고 승리하였다.
본래 이때 백제는 군신이 사치하고 음란 방탕하여 즐기며 일을 태만히 하였으며,
국사를 돌보지 않았다.
백성은 나라를 원망하며 신은 노하였고 재앙과 괴변은 자주 속출하였다.
이 내용을 보면 후대에 그것도 근현대기에 해석이 인공적으로 가공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백제가 그당시 의자왕이 등극한지 2년만에 상주 미후성 등 40성을 공취하고
성산가야를지나 거창 대가야를 지나 고령가야로 들어가 합천의 대야성까지 공취하여
김춘추 딸 고타소와 품석의 목숨을 윤충 장군이 거두었다.
그리고 655년에 고구려,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33성을 함락시켰다.
백제 기록 655년조 기록은 이렇다.
<15년(655) 봄 2월에 태자궁(太子宮)을 극히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수리하였다.
왕궁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
여름 5월에 붉은 색의 말[騂馬]이 북악(北岳)의 오함사(烏含寺)에 들어가 울면서
법당[佛宇]을 돌다가 며칠만에 죽었다.
가을 7월에 마천성(馬川城)을 고치고 수리하였다.
8월에 왕은 고구려와 말갈과 더불어 신라의 30여 성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신라 왕 김춘추(金春秋)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표를 올려
『백제가 고구려와 말갈과 함께 우리의 북쪽 경계를 쳐들어 와서 30여 성을 함락시켰다.
고 하였다.>
十五年 春二月 修太子宮極侈麗 立望海亭於王宮南 夏五月 騂馬入北岳烏含寺 鳴匝
佛宇 數日死 秋七月 重修馬川城 八月 王與高句麗·靺鞨攻破新羅三十餘城 新羅王金春秋遣使朝唐 表稱
『百濟與高句麗·靺鞨侵我北界 沒三十餘城』
보조해석.
태자궁을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수리하였다고 인위적으로 폄하하면서 해석해 놓았다.
極侈麗(극이려/극치려)는 15년 봄 2월 태자궁을 극히 널직하고 깨끗하게 수리하였다.
라고 해석해야 맞는 것이다.
侈(사치할치,거만할치,크고 넓을치, 많고 넉넉할치, 음란할치, 펼치/벌리고 늘릴치)이다.
侈다음에 麗(고울려, 화려할려, 아름다울려, 맑을려, 깨끗할려)가 나오기 때문에,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수리하였다고 해석하면 안되는 것이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렇게 해석했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대목이다.
뒤에 아름다울려가 나오기 때문에 앞 문장을 사치스럽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명명백백하게 의도적으로 해석했다는 반증이다.
이런 해석법은 거의 하지 않는다.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치스럽고 아름답게 수리했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넓직하고 깨끗하게 수리하였다."""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할 것이다.
"""크고 넓직하게 깨끗히 수리하였다"""라는 말을 마치 향략과 타락에 젖은 듯한 표현을 함으로써
의자왕을 미친놈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사치스럽고 방탕한 군주가 73성씩이나 차지하다니....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여름 5월에 붉은 색의 말[騂馬]이 북악(北岳)의 오함사(烏含寺)에 들어가 울면서
법당[佛宇]을 돌다가 며칠만에 죽었다.""
성마[騂馬]는 붉은색의 말을 뜻하는 말이지만, 소처럼 충성하는 성충을 뜻하는 말이다.
[騂 붉으스르한성, 붉은성, 붉은 소성]이라는 한자다.
성충이 적마를 타고 충남 보령시 성주산에있는 성주사지(오함사)에 들어가
나라가 망할 징조인데 의자왕이 642년에 40성 공취에 이어 655년 33성 공취에 도취되어
연회를 베풀고 과신하고 있으니, 간언하였다가 배척당하자 성주산 오함사 북악으로 들어가서
나라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말을 타고 법당을 돌면서 이듬해 3월에 죽었다는 표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사가가 그당시 바로 쓴 것이 아니라, 1년 정도 지나서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그해 기록을 가(假)기록 했다가 년말이나 1년 후에 기록한다.
가 기록했다가 1년후에 기록하는 것은 사가의 사초가 드러나 정치적 보복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성충은 이듬해 656년 3월 신라 33성 공취 후에 연회에서 당나라 침공에 대비하여
과신하지 말라는 간언하다가 의자왕으로부터 옥에 갇혀 죽었다고 나오지만,
성충은 너무 많은 신라성을 공취하게 되면 당나라가 개입할 것이라는
충언을 올린 뒤에 배척당하자, 나라가 망할 것을 예측하고 오함사에 들어가
말을 타고 법당을 돌면서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의자왕을 한탄하면서
풀에 지쳐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삼국사기 본기 마저 의심받는 것이다.
일제가 왜 이것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남기고 갔을까???
열전 기록은 더욱 의심받는다.
군사 전략가라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김유신이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61세의 몸으로 신라 단독군을 이끌고
적진 깊숙히 들어가서 추풍령이라는 요충지인 도비천성을 쳐서 회복했다는 말을
쉽게 납득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백제로서도 가장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에 많은 병력을 주둔시켰을 것이라 확신한다.
73성을 공취하였는데 도비천성을 내주면 상주 고령가야, 성산가야, 거창대가야 동부 지역을
모두 상실해 버리기 때문이다.
추풍령이 군사적 요충지인데 쉽게 내어줄 리가 없는 백제였다.
그러니 의자왕과 관료들이 사치와 방탕으로 일관했다고 후대에 기록해 놓고는
그 정당성을 찾으려 했던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풍령이라는 요충지를 잃어버리면
남은 곳은 남원 지리산 운봉 아막산성(아영산성)과 모산성 루트와
무주 라제통문이나 장수 장계면 육십령루트로 들어가서 가잠성 루트로 가야만 한다.
힘들게 점령해놓고 쉽게 내준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642년에 상주 미후성은 이미 백제성이다.
또한 김천의 감물성이 백제성이다.
의성의 동잠성이 백제성으로 들어갔다.
선산의 내리서성이 백제성으로 역시 들어갔으며, 내리서성을 증축하고,
선산의 일선군 일대를 백제가 휩쓸고 지나갔다.
거기다가 경북 성산가야 지방의 성주 독산성과 고령 우곡면의 성열성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함양, 산청일대로 들어가 모두 점령한 후 진주 고령가야 지방인 구례, 하동, 진주 등을
점령하게 되었던 것이다.
상주, 김천, 의성, 선산 일대에서 차단당했을 터인데 느닺없이 김유신 열전에서
추풍령의 도비천성을 점령하였다고 한다.
백제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차지하였다고 하는 상황이니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이 안되기 때문에 추풍령 도비천성 함락은 더욱 신뢰하기 힘들다.
함락했다고 치자.
어떻게 지킬 것인가???
고립된 성에서 어찌 버텨낼 것인가 말이다.
그냥 별동대를 보내서 한번 털고 갔다고 하면 모르겠다....
나이가 61세인데 별동대는 힘들었을텐데.....
치고 빠지기가.....
지키지도 못할 성을 왜 함락시키고 그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게 명장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군사전략이냐 이말이다.
그래서 함락하여 영토를 회복했다기 보다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별동대를 보내
동북 루트를 이용하여 백제의 지속적인 영토 확장을 막기 위해 상주 미후성을
일시 기습점령하고 돌아갔다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할 것이다.
[김춘추가 유신에게 신라를 구해달라고 자신의 부인이자, 김유신 동생의 딸을 신부로 주었기 때문에
백제의 영토확장을 저지시키기 위해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별동대를 보내
임시방편으로 더이상 깊숙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압박용으로 시간벌기.
그리고 당나라로 가서 외교적으로 지원 요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