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가 힘든 건 알겠는데 위로해 주기 싫어요."
내면아이 치유를 하다 보면 누구나 이 난관을 만날 때가 있을 듯 싶다.
나도 이 상태에서 한참동안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헤매었었다. 급기야는 내면아이가 내면부모를 위로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양상은 다양한데 핵심은 같다. 내면부모가 본인이 더 힘들어 아이를 케어할 에너지도 의지도 생기지
않는것. 그러니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헤아릴 여유가 전혀 없다.
이 난관을 돌파했던 나의 방법을 소개해 본다. 각 자마다 특이성이 있겠지만 전반적인 틀에서는
대동소이할 것이다.
1. 우선 내면아이를 돌보기보다 내면부모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알아주는 것에 촛점을 맞춘다.
성인으로서의 삶에서 상처받고 고통받은 것을 받아 주고 케어 하는 것이다.
2. 성인자아의 고통을 케어하다 보면 편안해지면서 내면아이에게 미안함도 생기고 일정정도 돌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느 지점부터는 성인자아가 계속 고통스럽다고 물귀신처럼 매달리며
더 이상 진전이 되지 않는 한계를 만나게 된다. 내면아이를 돌보는 일이 다시 힘들고 어려워진다.
이유는 성인자아의 고통이 성인으로서의 삶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는 성장기의 고통을 찿아야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20대 이후의 삶은 성장기에 형성된 삶
의 패턴과 생존방식을 삶의 구간마다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터 실타래가 풀렸다.
존 브레드쇼의 "수치심의 치유",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치유", 앨리스 밀러의 "사랑의 매는 없다", "천
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드라마"등의 책이 도움이 되었다. 이 책들은 성장기 부모자녀들간
의 역동이 성인기의 삶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력을 깊이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 기반위에서 거
부감없이 성장기를 있는 그대로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3. 다음 스텝은 지금 현실에서 성장기의 역동이 재현되는 관계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성장기 고통을 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요구되는 단계다. 투사는 남편, 자녀,
지인, 하물며 직장상사나 동료, 멘토, 치유가, 영적 스승 등,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이다.
대상불문하고 성장기결핍을 채우려는 에너지 뱀파이어가 되어 있는데, 그러면서도 버려질까봐 두려워
상대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며 위험수위를 절대 건드리지 않는 조심성까지 발휘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눈치게임, 파워게임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건데도 의식적으로 인지된게 아니기 때문
에, 의식적인 자각이 일어날 때마다 아연해 진다.
치유과정에서는 이 모든 스텝들, 순간들을 민감하게 케치하고 미세한 감정의 변화, 생각의 흐름, 행동양
식의 패턴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을 지속해야 한다.
4. 3의 과정까지 오고 나면 왜 내면아이를 돌보기 싫었는지 인식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돌볼수 있는
힘도 생기기 시작한다. 내면아이나 내면부모나 모두 성장기고통의 시간차였을 뿐임을 알게 되고, 한
발 물러선 새로운 자아의 관점으로 전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5. 성장기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고 치유가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야 말로 내면아이 치유가 그나마 가능해 진다. 내면부모라고 불러낸 존재가 사실은 상처입은 내
면아이의 성인버전임을 알게 되었기에, 둘을 동시에 돌볼 수 있는 내면부모가 드러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새롭게 일깨워진 내면부모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이의 매 성장단계에 대한 공부, 성장단계에 따른 적절한 훈육방식과 태도를 치유적, 영적 관점에서
새롭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내면아이가 아프다는 것은 건강한 부모의 모델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내 안에 건강한 부모의
모델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치유하려면 부모의 역할도 치유적으로 새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위에 소개한 "존 브레드쇼"와 "앨리스 밀러"의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6. 내면부모의 성장기와 내면아이의 치유기가 길게 이어진다.
내면부모가 새로운 양육방식을 체득하는 것은 금방 되지 않는다. 때때로 잘 케어하다가도 어느 순간
성인아이(성장기 아이의 성인버전)로 뚝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힘들다, 케어하기 싫다고 나가떨어지
는 때도 많다. 새로 일깨운 내면부모도 내 치유의 정도만큼만 힘과 지혜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때마다 내면부모와 내면아이를 번갈아 가며 돌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치유적 관계, 치유적
독서, 치유프로그램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된다.
나는 이런 순간들을 공동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상담힐러와의 세션, 헤일로님의 지지와 정신 번쩍
들게 하는 냉철한 에고해체 작업으로 비교적 쉽게 넘어 왔다. 내면아이 치유그룹에서는 시작할 때는
반드시 자기치유를 한 전문가나 치유그룹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던데, 그 이유를 충분히 알것 같다.
7. 일상에서 성장기 고통의 투사를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고 치유한다.
성장기 고통을 투사하는 습관은 계속 되는데 주변 관계에서 구체적인 사건으로 드러날 것이다.
사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감정의 결을 따라 성장기 고통으로 침잠하여 그 고통을 들어주고, 알아주
고, 그 아픔에 깊이 공감해 주는 것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그러면 현재의 삶에서 반복되는 고통
이 성장기의 어느 때였는지 선명해지면서, 이론으로 이해했던 것을 가슴으로 이해하며 체득하게 된다.
8. 치유를 멈추지 않는 한 위의 과정은 각 각의 혼란, 이슈들을 따라 계속 진행된다.
이슈들이 풀려갈 때 마다 가벼워졌다가 다른 이슈로 옮겨가면 성장기고통을 다시 만나고 풀려나가고
가벼워진다.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전체가 통합되었다가, 다시 개별작업으로 혼란스럽
다가 통합된다.
치유가 깊어지고 확장되는 만큼 내면부모의 힘도 커져서 이해력, 공감력, 수용성이 넓어진다. 이것을 바
탕으로 내면아이의 아픔을 깊이 안아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이 생기게 된다.
뒷 과정들이 더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내면아이를 돌보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까지는 어느 정도
충분할 것 같다.
수업하면서 이 부분에서 넘어지는 참여자들이 많아, 가이드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정리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