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에는 몇 마리의 개구리가 남았을까요?”
햇살 뜨거운 한여름 어느 날 오후,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유유히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뭇잎이 강물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그중 한 마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이 단호하게 외쳤다. “너무 더워, 난 물속으로 뛰어들 테야” 다른 개구리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나뭇잎에는 몇 마리의 개구리가 남았을까요?
“두 마리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두 마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틀렸다. 나뭇잎 위에는 여전히 세 마리가 남아 있다.
어째서냐고요?
뛰어들겠다는 ‘결심’과 정말 뛰어드는 ‘실천’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뛰어들겠다는 결심만 했을 뿐이다. 녀석이 정말 물속으로 뛰어들지, 일어났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앉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도 늘 그렇다. 어쩌면 뛰어들겠노라고 큰소리만 치는 개구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하는가. 다이어트 계획을 빈틈없이 세웠지만, 석 달 뒤에도 체중계의 눈금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겠노라고 다짐한 지 어언 한 달, 여전히 넥타이도 매지 못한 채 허겁지겁 출근하기에 바쁘다. 올해는 새벽기도회에 꼭 가야지 하면서 8개월이 되었는데도 한 번도 새벽을 깨우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 문장에 단어 하나를 더 넣어 완벽하게 만들면 어떨까?. “알고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
그렇다 실천하지 않는 앎은 진정한 배움이 아니다. 세상에 아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생명력 없는 지식에 불과하다. 성경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26) 라 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를 베이컨식으로 표현하자면, “행함이 없는 지식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 말할 수 있다. 실천 없는 다짐은 무의미하다. “알고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 지식과 정보를, 믿음에 행함을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한 의의 열매가 하늘에 상급으로 쌓이게 될 것이다.
“알고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