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상상의 이야기와 현실과의 괴리감으로부터오는 부정적이고 합당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되도록 표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대로 표출하게 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올라오는 이 부정적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저항, 부정, 억압, 다른사람의탓으로
전가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고통은 혼이 그러한 감정과 생각을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진것이고 더우기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부정적 에너지 장은 24시간 365일 내내
우리마음에 인지작용을 왜곡시키고 동시에 신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부정적 에너지장으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으로 회복하기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혼이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종노릇하지말고 우리의 혼이 하나님 영안에 거함으로써
그리스도 의식으로 자신의 내면의 기억을새롭게 하고 형성된 고동체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부정적 생각과감정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저항,부정,억합했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이라는것이다. 생각과 감정은 뇌의 활동과 그에 따른 몸의 반응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그 생각과 감정이 내 진정한 존재( 내 혼이 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상태) 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본능적인 저항 대신에 있는 그대로를 허용하는 것이다. (언제는 선택하지
말라고 했다가 받아들이라고 했다가 좀 말이 어렵지만. 그대로 수용하여서 드러내지 않으면 그것에
묶여서 선택하는 것이고 그대로 수용해서 드러낸다면 그것에서 자유한다는 의미이겠다)
부정적 감정을 저항하고 부정할 수록 고통과 괴로움이 더생기고 스트레스 에너지는 더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감정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손뼉을 마주치는 것과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비슷한 힘으로 서로를 손바닥으로 밀었을때 그 힘에 의해 오히려 반대편으로 밀려나는것이다)
그러나 한쪽이 밀면 같이 밀지 않고 당기고 (즉 상처가 떠오를때 그 상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
다른 한쪽이 당기면 다른 한쪽이 민다고 생각해 보라 (즉 상처가 당기면 같이 당길려 하지 말고 오히려
미는. 즉 반대쪽으로 억누르려 하지 말라는 말이다. 유도의 법칙을 생각해 보라 ) 이럴때 어떤 에너지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용서의 법칙과도 비슷하다. 누군가 나를 밀때 같이 맞대응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혼이 그리스도의 의식을 가질때 가능하다.
감정과 부정적 스트레스 에너지는 내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며, 모든 것이 나의 직간접적인 죄뢰
인해 생긴것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 경험의 일부일 뿐이다. 양측성 자극을 주면서
그 생각과 감정을 부정하거나 저항하거나 억악하지 않고 오히려 내 의식 가운데 들어온 하나의
경험으로받아들이고 바라보며 성령님 내 안에 있는 부정적 스트레스 에너지를 제거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라. 그렇게 할 때 성령님게서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그에너
지의 묶임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을 느껴보라. 이것은 마치 빛이 어둠을 비추는 것과 같다.
이럴때 신체적으로는 모든 생리 시스템이 정신적으로 뉴런의 네트워킹이 감정적으로는 몸의 반응에
따른 느낌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된다.
만약 이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악한 영에 묶여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 감정 에너지를 묶고 있는 악한 영을 쫓아내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음과같이 선포하라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의 생명안에 하나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 평강, 기쁨의 에너지로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문제들을 직면한다. 그럴 때마다 "지금 당장 어떻게 될 것 같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 과거가 너무나 괴롭다. 지금 너무 불안하다.
미래가 두렵다. 라고 생각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들은 내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 기초해서 내가 만든 것뿐이다.
정말 당신이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가 현실이라면 당신은 이미 오래전에 집도 파산이 나고
가정도 깨지고 사업도 부도나고 친구도 잃고 암에 결러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되었는가?지금 당신이 마귀에게 속아서 거짓자아로 그일들을 만들고 있음을 아는가?당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감으로써 하나님께서 당신의 몸을 통하여 나타나지 못하고 있음을
아는가?아니 나타나시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그렇다고 현실에서 어떤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것은 아니다.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현실은 생각이전에 그대로인데 해석에 따라 자기
방식대로 현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평: 참으로 넘어가기 힘들었던 장이다. 주변에서 저자의 주장을 이야기 하면 상담적인 사고를
가진분들은 도통 이해하기 힘든 듯 했다. 현재의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데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거짓자아라 하니 말이 않된다. 등등..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감정이 왔을때 그 것을 수용할때 즉 작용 반작용 법칙에 의해서
풀어낼때 더 이상 거짓자아에 묶이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저자의 언어가 어렵고 또 어렵게 설명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
참으로 내 신앙생활에 획기적인 선을 그을 만큼의 신선함이었다. 특별히 계속 반복되는 현재의 내게오는
감정, 생각과, 경험은 나도 아니고 힘도 없고 진리도 아니여서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말들이 실제 성경에 있는 고후5:17 을 외쳤던 소시적의 나를 기억나게 해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런데 한가지 상처치유편을 읽다가 진짜로 과거의 내 그림자와 또 맞닥뜨리게 되었다.
직면도 쉬운것이 아니었고 나비손기도는 약간의 효과가 있었다. (여러사람과 하면 또 다를 것이다)
저자의 책의 내용도 들어오지않고 글자로 맴맴 맴돌았다. 아..실생활에서 살면서 나 같이 과거이 그림자에 (융의 주장)맞닥뜨리게
되면 이런 현상이 사람들에게 있겠구나..체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것은 사투였다. 저자의 주장대로
매뉴얼대로 하기가쉽지 않았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도우심이 있어야 했다. 아무리 나는 그리스도안에
있어 과거는 지금의내가 아니고 그 감정도 생각도 내가 아니야 해도...않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동역자와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데 그때의 말씀이 치유의 말씀이였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편 103: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도다(시편147:3)
내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거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4:2)
이런 말씀들을 그 동역자와(나와 크게 관련이 없는) 함께 읽으면서 마음에 상처(흔적)들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고름이 가득한 곳에 소독약을 부었을때 시원했던 느낌같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신앙경험에 비추어 보면 상처를 치유하는데 몇가지의 행동들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기간의 상처에 대한 방법이다)
첫째, 내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기도하며 용서하는 마음과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은 주님앞에 상처를 내보이는 행위이다. 상처준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지속적으로 그 지체를 주님께
산제사 드리듯 올려드린다. 나의 감정과 서운함도 올려드린다.
둘째, 수용적인 분위기의 기도모임에 참여하거나 혹은 그런 기도동역자와 기도를 하는데 이때 사람을
의지해서 고백하는 것 보다 하나님을 의식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셋째, 그 수용적인 분위기의 대상을 두고 말씀을 읽는 것이 좋다. 치유와 귀신쫓음의 말씀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 말씀을 읽을때 성령이 친히 지도해 주시고 원수마귀의 흔적을 물리쳐 주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수용적인 분위기에서 말씀 읽기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했던 것이다. 저자의 주장이 다 틀린것이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전 인생은 이 저자의 주장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이끄신다는 사실
그래서 내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정로를 걸어갈 수 있게 해주셨다는 사실에 감사드린다.
저자의 내용들은 큰 환란이 없을때는 그것을 훈련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나
깊은 트라우마를 가진경우나 갑자기 어떤 난감한 일들이 왔을때 적용하기는 일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음을 인정하며 나의 가장 상태를 잘 아시는 성령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만을 따라갈 것을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