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7. 솟대문학
오는 4월 20일은 제34회 ‘장애인의 날’입니다.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이라는 명목의 날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니 다음과 같이 해설이 되어 있더군요.
…1972년부터 민간단체에서 개최해 오던 4월 20일 ‘재활의 날’을 이어, 1981년부터 나라에서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해 왔다.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전 재활의 날)로 정한 것은, 4월이 1년 중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며, 20일은 다수의 기념일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1981년 UN총회는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고 세계 모든 국가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장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장애인의 해’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81년 4월 20일 ‘제1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기념식은 장애인 인권선언문 낭독, 장애인 복지유공자 포상, 장애인 극복상 시상, 장애인 수기 발표, 축하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또한 이 날을 전후한 약 일주일간을 ‘장애인 주간’으로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벌인다.
당시 정부의 법정기념일 축소 방침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받지 못하다가, 1989년 12월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에 의거 1991년부터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엊그제 집으로 ‘솟대문학’이 배송되어 왔습니다. ‘솟대문학’은 장애인을 위한 순수문학지로 1991년 봄호를 제1호로 창간된 이후 2014년 봄호까지 결간 없이 통권 제93호가 발간된 계간지입니다. 아래는 두산백과에 소개된 솟대문학입니다.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학지로, 발행 형태는 계간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장애인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창간하였다. 장애인문인협회가 발행하며, 창간 이후 2014년 봄호까지 결간 없이 통권 제93호를 발간하였다.
그 동안 많은 장애인 문인들을 배출하였고, 장애인 문인들의 복지를 위해 원고료도 지급한다. 운문·산문·잡문·소설 등 전반적인 문학 장르를 다루며, 그림이 있는 시, 테마 특집, 명사 대담, 연재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단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형편이지만, 한국문학에 장애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등단은 3회 추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솟대문학상을 제정해 본상·신인상을 수여한다. 그 밖에 장애인뿐 아니라 일반인의 문단 등단을 도와주고, 장애인과 일반인의 문학 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93호는 ‘솟대’ 특집이었습니다. 솟대를 주제로 한 여러 가지 글이 실려 있었는데, 그 중 솟대를 가장 잘 해설한 시가 있기로 옮겨 봅니다.
솟대 / 한인숙(독자)
내 고향 입구
허공 어귀엔 길잡이가 있었다
하늘과 땅의 소식을 연결해 주던 기다란 나무 위 세 개의 오리
대부분의 소문이 솟대를 통과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을 안쪽의 소원과 크고 작은 길흉을 잘도 알아차렸다
누군가는 헐렁해진 자신의 운명과 몇 개의 근심을 그곳에 맡기었지만
숲과 숲 사이 비좁은 하루의 해는 가볍게 떠나갔고
그러나 대부분의 날들은 쉽사리 미신을 털어내지 못했다
지상의 슬픔을 모르는 굴뚝 연기만이 솟대 근처 노을 너머로
저녁의 길을 풀어 놓으며, 잊힘의 아스라한 끝까지 내달리곤 했다
내 고향 가난한 하늘의 입구엔 솟대 하나 외로이 서 있곤 했다
어느 해엔 공중 어디에도 새 한 마리 어른거리지 않았고
솟대, 그 지루한 기원의 상징만이 뉘 집인지도 모를
희미한 안쪽을 향해 목마른 점지를 건네주곤 하던
이듬해가 더디어
겨울 한때의 그리움으로 하늘의 소식을 저울질하는 마음
그곳 어딘가엔 하늘의 중심을 애써 찾으려는 듯 목조 하나 박혀 있곤 했다
위의 시는 작가가 겸양의 미덕으로 ‘독자’를 자처하여 그렇게 소개되었지만 현역 문인의 찬조 시입니다. 따로 솟대를 소개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잘 풀어 놓아서 옮겼습니다만, 실은 93호는 솟대 특집 외에 ‘표절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문학’이라는 제1주제가 있었고, 때문에 무단 옮김은 지양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고 옮김을 사과드리고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장애문인의 작품이 표절의 표적이 되고 있다.
작가 이름이 알려진 것도 아니고 학연 등의 보호막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표절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밝혀진다 해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이 문제를 묵과해두면 장애인문학이 표절로 피폐해질 것이란 판단에 솟대문학에서 발견한 표절 사례를 소개하고 그 현상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전문가와 진단해본다.
제1주제인 ‘표절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문학’의 서문입니다. 어렵게 쓴 글을 도둑질 당했을 때의 분함이야 누구라고 별다르겠습니까마는, 특히 운신이 어려운 장애인들로서는 스스로 밝힐 길이 없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김준엽 시인의 피해 사례를 옮겨봅니다.
김준엽 시인은 20여 년 전 하이텔 사이버문단을 통해 자신의 시들을 발표하며 문학활동을 하였는데, 1995년 봄 한 출판사에서 시집을 발간해주겠다고 하여 시작품들을 보냈지만 출판사가 문을 닫게 되어 시집 출간도 못하고 작품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런데 월간 ‘좋은생각’ 1995년 9월호에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제목의 시가 ‘좋은 생각’ 발행인 정용철 시인의 작품으로 게재된 것을 시작으로, 정용철 시인은 ‘내 인생이 끝날 때’로 제목을 수정하여 ‘윤동주 혹은 작자 미상’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뇌성마비 시인의 시가 윤동주 작품으로 둔갑’ 솟대문학 보도자료)
김준엽 시인은 중증 뇌성마비 장애로 펜을 입에 물고 시를 쓰는 분입니다. 사례를 소개한 문학평론가 허혜정 교수는 ‘그의 고된 삶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인생 자체를 시적 제재로 취할 수밖에 없게 한 필연성으로 작용했다’고 하였습니다. 즉 격렬한 삶의 정화가 시로 표현되었다는 뜻인데, 그러한 노력의 결실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훔쳐간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김준엽 시인의 원문)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정용철)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윤동주, 혹은 작자미상)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은 200자 원고 원고지 10장 가량의 긴 시입니다. 솟대문학에 인용된 앞부분만 옮겨 보았는데, 위의 시들 중 원작자 외의 명의로 돌아다니는 두 작품을 놓고 허혜정 교수는 ‘표절이 아니고 도용’이라고 격렬히 비난하셨더군요.
다음은 ‘산골소녀 옥진이 시집’으로 알려진 김옥진 시인의 작품이 도용된 사례입니다.
기도/ 김옥진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앞으로 해 나갈 내 사랑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게 하소서
……
기도1/ 변영인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이렇게 고백은 늘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한계를 당신만이 아십니다
……
김옥진 시인은 전신마비 장애인입니다. 고등학교 때 추락사고를 겪고 장애를 갖게 된 후 시를 쓰기 시작하여 ‘시문학’지를 통해 정식 등단을 한 기성작가인데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기도’가 부산고신대학의 변영인 교수에 의해 표절의 해를 입은 것입니다.
-김옥진 님의 시를 직접 접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김옥진 님의 좋은 시를 접하여 외웠고 오랜 시간이 지나 제것화되어 착각을 한 듯 합니다. 사과드립니다.
변영인 교수의 사과 메일입니다. 곧바로, 그리고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보낸 사과문이지만 20만 부가 팔렸다는 ‘산골소녀 옥진이 시집’이 전문 문학인의 독서목록에 들지 못했다는 증거를 본 듯하여 조금 씁쓸했습니다.
다만 ‘님의 좋은 시를 접하여 외웠고 오랜 시간이 지나 제것화되어 착각을 한 듯 합니다. ’ 부분은 참작의 여지가 있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표절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변영인 교수의 경우와 같은 실수는 누구나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명문장을 읽어 마음에 새기는 것을 선비의 미덕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이니 남의 글을 자신의 글로 착각하는 실수는 있을 법도 합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무릇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위의 문장처럼 사과문을 발표하는 사례는 만들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표절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문학’의 세 번째 사례는 이용석 님의 소설 ‘바리데기꽃’의 도용이었는데 한 작품을 작정을 하고 송두리째 훔친 것이었습니다. 단편 ‘바리데기꽃’은 1998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인데 ‘한국작가교수회’ 주최 ‘제1회 전국 고교생 소설백일장(공모전)’에 최우수상으로 선발되어 책으로 나와 버젓이 서점에 진열되어 팔렸고 작자를 자처한 고교생은 수상실적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진학하였으니 대명천지에 믿기지 않는 도작 사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아래 이용석 님의 항의문과 ‘한국작가교수회’측의 사과문 중 각 일절을 옮겨 해설에 대신합니다.
-(한 독자로부터의) 제보 메일을 확인한 후 본인은 평민사에서 출간한 ‘바리데기꽃’을 구입하여, 본인 소설인 ‘바리데기꽃’과 비교해 본 결과, 제목은 물론 소설 내용에서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똑같았기에 본 사항은 단순히 한 고교생의 실수에 의한 표절이 아닌 작품 전체를 베낀 도용(盜用)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됨.
-님께서 평민사 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확인한 결과, 우리 회가 주최한 ‘제1회 전국 고교생 소설백일장(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김**양의 단편 ‘바리데기꽃’은 님의 작품을 도용(표절이 아니라 도용입니다)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에 수상을 취소하고 그에 따른 행정적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이 사건은 2004년의 일로 세상에 두 권의 ‘바리데기꽃’을 내보내고 끝이 났는데 장애인문학의 현주소를 본 듯하여 언짢은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은 작가인 이용석 님의 글 중에서 일부를 옮긴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제가 1998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분이 이번 대회를 주관한 한국작가교수회의 회원이었고 그 작품집은 1000부가 출간되어 약 300부 가량이 한국작가교수회 회원들에게 일일이 베포되었음에도 작품을 도용했다는 사실이 그들 자체에서는 전혀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중앙문단에서는 장애문인들의 작품은 한낱 그네들만의 잔치쯤으로만 치부하여 암암리에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외국작품을 번안이라는 명목으로 도둑질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장 순수해야 할 고교생의 첫 수상이 도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학생의 장래가 걱정됩니다. 게다가 도용된 작품을 뽑아준 대표적 지성인의 모임이라는 교수회의 무심함에 이르러서는 선비사회의 도덕 불감증이 이 지경까지 왔는가 탄식이 나올 뿐입니다.
아래는 이용석 님의 작품 ‘바리데기꽃’의 일부분인데 작자가 왜 ‘그만큼 중앙문단에서는 장애문인들의 작품은 한낱 그네들만의 잔치쯤으로만 치부하여 암암리에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998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바리데기꽃/ 이용석>
그늘 한 뼘 없는, 뙤약볕이 서릿발처럼 하얗게 내려앉은 신작로 위에 할머니는 망연하게 서 있다. 노인의 흐린 안정(眼精)은 대수로울 것도 없는 촌락 풍경을 꼼꼼하게 톺고 있는 듯하다. 질식할 듯 뜨거운 공기가 호흡을 방해한 탓일까, 할머니는 가끔씩 옥다문 입을 벌려 가뿐 숨을 몰아쉰다. 알이 빽빽한 옥수수처럼 정갈하던 할머니의 잇바디도 끝내 세월이 너리먹어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움펑 꺼져버린 검은 구멍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미란은 할머니의 고무신을 덩그마니 담고 있는 한 줌의 그림자가 마치 노인의 남아있는 살이의 전부처럼 여겨져서 공연히 마음이 섬뜩하다.
유난히 몰강스럽던 할머니는 미란의 딸아이 연(蓮)이가 걸음마는커녕 제대로 앉지도 못했던 이유가 뇌성소아마비(腦性小兒痲痺)라는 병 때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외증손녀를 단 한 번도 손수 받아 안으려 하지 않았다. 유달리 식탐이 강한 아이의 투정에 꼿꼿한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원래 사람구실 못하는 배냇병신들이 음식을 밝히는 법이지. 아무래도 세상이 내리막길인가 보구나. 저런 몰골이 인두겁을 쓰고 사람행세를 하려고 태어나니 말이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미란의 가슴은 속절없이 무너지곤 했다. 금방 푼 짐을 바리바리 싸고 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는 총총히 친정집 대문을 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아이를 위해 굿을 하겠다니,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제 할머니가 돌아가시려는가 하는 외람된 생각으로 입안에 쓴물이 고였던 것이다.
“할머니, 덥잖아요. 왜 그렇게 땡볕 아래 서 계세요? ”
“저 고집이라니, 쯧쯔···”
마을로 이어지는 신작로 초입의 구멍가게 앞에 놓인 평상에 앉아 지쳐 잠이 든 미란의 딸아이에게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던 어머니가 못내 마땅치 않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끌탕을 친다.
“내 이런 먼길인 줄 알았으면 운동활 신고 오는 건데 그랬어.”
어머니는 까만 에나멜 구두를 벗어 평상 모서리에 탁탁 쳐 흙을 털어내고는 퉁퉁 부은 발등을 주무르며 히물쩍 웃어 보인다.
신작로 양편으로 머리를 푼 벼포기들이 시원하게 눈에 얼비친다. 마을은 병풍처럼 에둘러진 산등성이 밑으로 야트막하게 잠겨있다.
할머니의 족대김에 마지못해 따라나섰지만, 너겁 한오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악지가 미란의 등을 떠밀었는지도 몰랐다. 2년 남짓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뒤넘이를 치며 쫓아다녔으나 아이의 병색은 호전될 기미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보다 더 등달았던 남편 진우는 어느새 아이의 존재를 버거워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아이를 들쳐업는 미란을 흥뚱항뚱 쳐다볼 뿐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그만 현실을 인정하자는 눈치였으나, 미란은 애써 외면했다. 아니, 어쩌면 불구의 딸아이가 겪을 불행보다는 자신 앞에 눈을 부라리고 있는 투그린 숙명을 용납할 수 없다는 가당찮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눈총을 꼭뒤로 의식하며 총총히 현관문을 나섰던 것이다.
“인자, 다 왔구마는. 저기 뵈는 산구비만 돌면 된다.”
문득 미란은 허공에서 정지된 노인의 손가락 끝에 얹혀진 산자락을 향해 눈길을 보내다가 깜짝 놀란다.
아, 막내고모······. 쨍쨍한 햇볕에 토마토 색깔이 된 할머니의 얼굴은 십오년 전에 죽은 막내고모와 너무도 닮아 있다. 망자(亡者)와 닮은 때문일까, 그 모습이 귀기스럽기까지 하다.
“왜 그러니?”
자릿값으로 산 빙과를 핥고 있던 어머니가 미란의 어깨를 툭 친다. 그 서슬에 겨우 정신을 수습한 미란은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어머니가 쥐어주었을 빙과를 붙들고 헤뜩 벌어진 입에 우겨 넣는 꼴을 보고는 아연해진다. 아이의 손과 얼굴은 함부로 휘둘린 빙과에서 녹아 내린 단물로 온통 범벅을 하고 있다.
“아이, 엄마는 뭣하러 저런 걸 주셨어요.”
그제서야 어머니는 끈끈한 단물에 온통 더럽혀진 아이를 보고는 아이고 내 강아지, 하며 질겁을 한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에서 얼른 빙과를 빼앗고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먹을 것을 빼앗긴 아이는 온전치 못한 팔을 버르적대며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며 아망을 부렸다.
“오냐, 내 못난 강아지······.”
어머니의 손길은 매우 다급하게, 그러면서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단물에 끈적이는 아이의 잘 펴지지 않는 손가락들을 일일이 펴서 꼼꼼하게 닦아내고 있다. 여전히 아이는 울고 햇빛은 지칠 줄 모른 채 다글다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미란은 왈칵 설움 같은 짜증이 인다.
따지고 보면 미란이 역시 할머니와 똑같은 심경이었다. 첫돌이 지나도 기기는커녕 앉지도 못하는 아이를 그저 늦둥이쯤으로만 여겼었다. 목욕을 시키고 새옷을 갈아 입히기가 무섭게 가슴께가 흥건히 젖도록...(하략)
고교생이 구사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난해한 문장의 작품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최우수상으로 뽑아준 대학교수들…… 장애인문학에 대한 문단의 인식은 그런 정도였던 것입니다.
아래는 재작년(2012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대상 수상작인데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라서 옮겨봅니다.
쑥/ 박 성 진
쑥이 돋았다
논두렁도 개울가도 산비탈도 아닌
히로시마 평화공원
원자폭탄 떨어진 자리에 한잎 두잎 돋았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시체 위며 허물어버린 집
심지어 불타버린 고목나무 뿌리 사이에서도
푸른 잎으로 쑥쑥
돋아났다
그는 지금 봄을 기다리는 중일까
한국병원 304호 중환자실,
링거를 꽂은 채 잠든 사내
바짝 야위었다
방사능처럼 퍼져나간 암세포로
근육도 피부도 조직도 궤사 상태란다
손끝으로 툭
날아가버릴 듯 위태로운 몸을 보며
그이ㅡ 몸속 어딘가에
쑥 한 포기
몰래 가져다 심어주고 싶은 날
창밖을 서성이던 달빛 몇 줌
사내의 이마를 조용히 핥고 지나가고 있다
날이 새면
사내의 몸은 논두렁이 될까 개울이 될까
쑥 내음 가득한 산비탈이 될까
황폐해진 저 곳에
여린 새순들이 한잎 두잎 돋아나진 않을까
겨울이 지나갈 듯 말 듯 위태로운
2월의 마지막 밤 이었다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에 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글을 인용당한 장애문인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우리 ‘방랑하는 마음’ 카페의 동료들께도 제 기분에 취해 폭주한 점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첫댓글 김준엽 시인은 중증 뇌성마비 장애로 펜을 입에 물고 시를 쓰는 분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이러한 순수한 고백은 전에 피터의 시에 영감을 준 적이 있는 글들 입니다.
그리고 윤석인 수녀도 김준엽 시인처럼 전신마비로 늘 이동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입니다. 몸은 장애인이지만 영혼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이들은 몸은 정상이면서
마음은 병들어 있는 우리들을럽게 합니다.
이는 마치 눈을 뜨고 있으나 정신은 어둠과 불의의 장막에 가려
진실을 보지 못하는 영혼의 장님들인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들을
질타하는 비유로 다가오지요. 정성스럽게 올린 장문의 글 잘 보고 갑니다.
내일 점심 식사 후 오후 3시 경 책방에 들릴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장애인들의 시에는 감동적인 게 많지요. 그분들의 사연에 곁들인 시는 특히 절실하게 읽힙니다. 아래는 시각장애인이 본 세상입니다.
잡초에 대하여/ 우덕호
눈부신 꽃을 탐하진 않았어도
영롱히 이슬 맺는 풀꽃을 꿈꿔
스스로 몸 낮춰 자라났는데
업신여겼는가
누군가 다가와 침을 뱉는다
짓밟힌 온 몸에는 상처투성이
섧디 설운 그 곳에 아픔 맺히어
눈물 삼킨 세월 지켜
꺾인 무릎 세워가며 살아온 날들이
풀섶에 아롱진다
이제 깊은 가을 물들어
서녘 하늘 향해 고개 숙일 때
가슴 속 새겨놓은 비문이 있어
한 시절
초록빛 여명 어둠을 밝혀
아름다운 세상 살았노라고
-솟대문학 2009 겨울호.
@이피터 요즘 계절을 타느라고 몸살 비슷한 걸 앓았습니다. 오늘은 한결 좋아져서 글을 올렸는데 댓글을 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글.. 감동적인 글....가슴으로 읽고 담아갑니다...
마음의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 자신도 ...그 중하나가 아닌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음의 장애를 먼저 치료를 해야하는데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인문에 대해서는 갈수록 무시되는
사회의 풍조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선거철을 맞아 지방의원 후보들이 장애인 단체나 시설을 자주 방문하더군요. 제 책방이 있는 지역의 경우입니다만, 이맘 때면 갑자기 선량한 사람이 많아지곤 합니다. 지역 신문이 보도를 잘해 주던데 그 사람들은 '좋은 일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말을 모르는 듯합니다.
위의 글에서는 장애문인들의 예를 들었습니다만, 글이라도 쓸 줄 아는 장애인은 그나마 낫습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직업을 가질 수 없어 마냥 허송세월을 하는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읽어 주시고 걱정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이 여리신 우리 여니이 님께 장애인 동료들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한편의 논문을
읽고난 기분입니다
인용된 다섯 작품 모두가
마음을 잡아 끄는
우수작이기도 하지만
과하객님이
그들 하나 하나를
향한 애정이
얼마나 지극한지
쓰여진 글
行間마다에서
읽혀집니다
내 인생의 황혼이 들면 /김준엽
기도 / 김옥진
ㅡ도 그렇거니와
장애인들의 詩속에는
장애인들이 아니고서는
짐작도 못할
고통과 서러움과
인고의 세월이
응집돼 있느지라
읽는 이의 가슴 속에
묵직한 돌맹이를
안겨주는 듯한
버거운 감동을
숙제처럼 남기지요
김준엽시인의 작품을
통채로 훔쳐간
김용석이란 작자는
죄질이 참 나쁩니다
그런 인간을
문단에 남겨둬선
안돼죠
사장시켜야지
그리고
바리데기꽃은
나름 더 나쁘게
느껴지네요
그건 고교생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 아네요
장애인 문학
수상 당시
심사위원이었고
고교소설 백일장을
주최한 작가교수회
ㅡ회원이기도 했던
그 교수란 작자가
특례입학이란
부상을 노리고
워낙 약자이다보니
아얏!소리조차
못하리라 얏보고서
남의 작품을
통째로 거저
먹으려 들은거라고
저는 본답니다
웩,웩
썪어빠진 인간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돌보지 않으면 제구실을 못하는 잉여인간들' 정도인 것 같습니다. 시혜자의 입장이 되어 수혜자로서 장애인을 대하기 때문에 어떤 성취를 보이더라도 '그까이꺼'가 되는 듯합니다.
장애인문학상 심사에 참여했던 대학교수에 이르러서는 그 정도를 넘어서 아예 수상작을 읽지도 않고 명의만을 빌려주었지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상 수상작과 제목도 내용도 모두 같은 작품을 다시 뽑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가게에 온 장애인 친구가 "선거철이 오긴 온 모양입니다"하더군요. 장애인 단체에 후보들이 인사를 온다는 것입니다. 당선되면 나몰라라 할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반갑다고 하네요. 그간 얼마나
냉대를 받았으면 저럴까 싶어 안쓰러웠습니다.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가끔 방문해서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눌 수 있는 후한 인품의 인물이 뽑혔으면 좋겠습니다. 중증 장애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사람은 대화상대이거든요. 일상의 삶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어 줄 사람을 그리워하는 친구들.... 외로움은 가장 큰 천형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름다운문 님의 글을 읽고 감격했습니다. 남의 글을 옮긴 것뿐인 사람에게 칭찬을 해주시고 편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운문 님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분들만으로 이루어졌다면 장애인들에게도 힘든 곳만은 아닐 텐데....
밤이 늦었는데 편안히 주무세요. 고맙습니다.
가슴아픈 일이로군요.
시라는 문학은 워낙에 어려워서 제가 감히 뭐라고 감상을 적기조차 두렵습니다만,
소설을 읽으며 느껴지는 감정은 마치 제가 직접 당하는 것처럼 안타깝기만 합니다.
제 주변에도 뇌성마비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도 동네에서 자주 봅니다.
다운증후군의 아이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잘 뛰어노는 것으로 보이지만
뇌성마비로 태어난 친구는 문학을 좋아하고 소박한 꿈도 꾸었었지요.
스무살 즈음에 만났는데, 자신의 꿈을 제게 들려주며 이룰 수 없을까 두려워했었습니다.
장애인을 자식으로 두신 수많은 부모님들의 심정은 또 얼마나 괴로울까 싶습니다.
차라리 낳지 말 것을.. 하고 자식을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요.
저희 사무실에도 다운증후군을 앓는 40대 중반의 딸을 데리고 다니는 할머니께서 가끔 들르시는데,
훗날 내가 죽으면 그 딸 혼자 어쩔까 늘 걱정하시더군요.
과하객님 말씀대로 선거철에만 우르르 뭐떼처럼 몰려와 손을 잡고 웃음을 흘리며 연신 굽신거리다가는,
선거 끝남과 동시에 아는척도 않는 그런 분들은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덜 더럽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식이 빨리 변화하고 장애인이든, 사회취약계층이든 최소한 인간답게 느끼며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며 좋겠습니다.
요즘은 컴에 접속을 잘 안해서 도통 찾아뵙지 못하
@공벌레 고 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장애가 있는 친구 중에는 글재주가 뛰어난 이들이 많고 현역 문인으로 활약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산골소녀 옥진' 시집의 저자 옥진 님은 그 한 예입니다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입으로 펜을 물고 글을 쓰는 시인의 경우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시로 감동, 감동이었습니다.
차라리 낳지 말 것을...하며 슬퍼하는 부모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제가 아는 식당 사장님 부부는 딸이 뇌성마비 장애인인데 부모가 함께 데려와 책을 사주고는 갈 때면 꼭 눈물바람을 하십니다. "저것이 시집 한번 가서 반듯이 사는 모습을 보고 죽어야하는데..."하고요.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떠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장애인들 중 조금 깨인 사람들은
"우리를 그냥 편하게 놔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어떤 행사가 있을 때면 찾아와 가장 위하는 양 소리만 높은 사람들의 위선에 비위가 상하는 거죠. 요즘 선거철이라 특히 그런 사람이 많은데, 선물 주면 걸린다고 맨입으로 찾아와 입잔치만 걸찍하게 하고 사진 찍고 가는 자칭 유력인사들은 별로 예뻐보이지 않습니다.
하기는 저도 약간의 장애가 주어진 후에야 눈을 떴으니 내세울 말도 없습니다만, 부처님의 방편이랄까, 편한 마음으로 대해 주는 보통 사람들이 그리운 것입니다. 장애인과 같은 눈높이에 멈추어 함께 반편이짓을 해주는 보통사람들... 욕심이겠지요.
변함없이 찾아주시고 응원의 말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처럼
@공벌레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는 꿈이라도 꾸어볼까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읽어 보겠습니다~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