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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에서 그대로 내려와 오후 세시에 도반에 도착해 숙소를 배정받았다. 3인실인데 공간도 넉넉했고, 화장실도 가까워 불편없이 지냈다. 급보를 받았다. 이제 산행을 시작한 다른 팀에서 포터가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숙소에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죽어 있었다는 사고내용이었다. 우리 팀에서 셀파 두 명이 급파되었다. 가벼운 배낭 메고 가는 것도 힘들었는데 30키로그램되는 짐을 지고 고산을 오르내리니 무리가 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 그만 믿고 사는 그의 가족들은 어찌할까하는 짠한 생각이 들었다.
10월21일
출발을 서둘렀다. 다섯시 기상, 여섯시 식사, 일곱시 출발 했다. 점심식사 예정인 촘롱까지 거리가 멀다. 사흘 전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것이지만 만만치 않았다. 밤부에서 시누와까지 올라오는 오르막길이 힘들었다. 내려가는 길일지라도 편안하게 내려가게 산길이 되어있지는 않았다. 계곡을 건너러면 산 아래까지 내려 가야하고 고개를 넘어야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었다. 시누와에서 그 동안 아껴먹었던 간식을 다 털어서 일행과 나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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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롱으로 가는 길, 다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야하는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다리에서 촘롱까지 올라가는 길은 여정 중에 마지막 힘든 길이었다. 오전 열한시의 땡볕은 내리쪼이고 고도 300미터의 언덕길을 죽을둥 살둥하면서 올랐다. 물을 계속 마시고 두 번이나 쉬어가면서. 셀파 순일이가 먼저 올라서서 “앞으로 더 이상 오르막길은 없습니다.”하는 소리를 들으니 어찌 그리 안도가 되었든지.
촘롱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사십분 쯤 급경사를 내려와 지누단다에 도착했다. 지누단다 부터는 왔던 길로 가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나야폴로 가는 길이다. 오전에는 일정이 힘들었는데 오후 일정이 너무 싱겁게 끝났다. 산속에서 마지막 숙박지, 가장 안락했던 숙소였다. 2인 1실에 샤워실에 좌변기가 있다. 산속 생활에사 가장 불편했던 점이 배설하는 것이었다. 좌변기가 없고, 쭈그려 쏴 하는 재래식 변기였다. 순간 문명의 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오후에 시간이 넉넉해 9일 동안 깎지 않았던 수염을 깎고, 빨래도 하고, 샤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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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 수염을 깎지 않았다. 면도하기 직전
저녁식사 시간에 식당에 모여서 우리들 무사하게 내려옴을 자축했다. 가이드 박대장이 주관하여 우리 여행을 도왔던 셀파와 요리사들과 포터대장들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팁을 전했고 그 들과 인사를 나눴다. 네팔인들에게 노래를 시켰다. 네팔의 민요라고 하는 ‘네산 삐리리’를 들었다. 우리나라 진도아리랑처럼 후렴구를 매기고 받고 하는 노래인데. 가사는 “ 앞산의 물 긷는 처녀여, 애타는 내 마음을 아는가, 우리는 언제나 만날 것인가” 하는 내용이였다.
그들을 보내고 서로 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이번 산행에 대한 느낌을 말했고 인솔자 박대장과 참가자들과의 질문, 대답 형식으로 우리나라 유명 산악인들에 대한 궁금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허영호, 엄홍길, 박영석, 여성 산악인 고미영과 오은선 등. 그들이 행적에 논란이 된 점을 설명하면서도 극도로 본인의 감정을 자제했던 점이 믿음이 갔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몇몇은 술을 계속마시고, 즐겁게 노래도 불렀다. 자리를 물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저 아래 계곡에서 들리는 강물소리를 들으며 편하게 잠에 들었다.
10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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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단다를 여덟시에 출발했다. 바로 건너편 롯지에 도착하는데 30분 넘게 걸렸다. 벼랑을 내려와 숨차게 언덕을 올라 쉬었다. 간판이 삼동 찻집으로 되어있다. 말이 찻집이지 구멍가게 였다. 아직 등교전인 여자아이가 가게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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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눈망울이 끌리는 아이였다. 아침식사 후 얼마 시간이 지나니 않아 별로 생각이 없는데 주머니에 있는 네팔 지폐를 꺼내 음료수 과자 등을 샀다. 그리고 배낭에 있는 초코렛과 과자 등을 털어주며 동생들과 나눠먹으라 하고 길을 떠났다.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고 나야폴에 가는 짚차를 탔다. 나야폴에서 포카라로 이동을 하여 폐와호수 안에 있는 Fish Tail Lodge에 짐을 풀다. 경치 좋고 시설 좋고 최고의 호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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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배들 타고 들어간다. 우리는 줄을 잡아당겨 가는 줄배를 타고갔다
그 호수에 한 시간 정도 뱃놀이를 즐겼다.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안나푸르나는 혹독한 시련과 엄격한 자기극복을 요하는 초자연의 세계였다면, 페와 호수는 배타고 유람하는 여유 넘치는 인간들의 세상이었다.
기행문을 마치며
산에서 잠 못 이루고 고단한 몸을 끌고 나설 때, 만약 오늘 밤도 불면에 뒤척인다면 하산할 것이라고 마음먹고 나섰는데, 어떻게 그 순간을 넘겼습니다. 매일 누적되는 피로가 마치 훈련소 생활 할 때 기분이었습니다. 바닥난 체력으로 다시 일과를 시작해야하는 막막함이었습니다. 불면으로 뒤척이고 다음날 숨이 턱에 차오르는 강행군을 할 때 내가 과연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했는데 지금 제 서재에서 여행기를 마쳤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저는 지금 퍽 행복합니다. 다시 올 일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산을 내려왔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겼나요? 다음에는 핑계거리 없이 몸을 만들어 다시 가볼까 하는 터무니없는 자기기만도 살포시 살아납니다. 그 일행 중에는 칠십을 넘은 청춘들도 있었으니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고생했구나 해병대 악발이 지금도 유지 되고 있지 않나 싶다..하여간 이 나이에 대단하이 큰일을 했구나 ...재미이있게 읽었고 부러워 죽겠다..
그러게 같이 가면 좋았겠지. 그 멤버 중에 만경국믹학교 나온 친구들이 둘 왔더라,
따져보니 내 고등학교 친구와 동창들이었어. 경기도에서 국민학교 선생했던 친구들이었지.
그 놈들 죽어라고 붙어 다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