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일지 (2024.06.04~06.25)*
-7일차 : 6월 12일 수요일
정신세계(精神世界)를 누리다
-스티븐 킹, 피터 스트라우브 작 《부적·1》을 읽으며
1
-무서워,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여기가 세상의 끝인 걸까, 그런 걸까
(이 책 《부적·1》의 본문 중에서)
활짝 열어 놓은 창밖으로 파란 하늘의 정경과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학이 발달되어 지구가 둥글다고 판명되기 전에는 서구의 유럽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세상에는 그 끝이 있고, 그 끝에는 절벽과 같은 낭떠러지가 존재할 것이라고 여기며 그곳으로 여행하다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 천 길 낭떠러지는 아마 존재한다면 우주의 밑바닥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우주는 방사형 방향으로 지금도 팽창 중이고 밑바닥이란 개념은 없으며, 전 시대의 사람들이 믿었던 그 밑바닥은 다만 저마다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2
지금 이 책의 주인공 잭 소여(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주인공 톰 소여를 모델로 해서 지은 이름으로 비슷한 나이대의 소년이다)는 ‘순간이동’을 통해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이제 1, 2권으로 된 작품의 도입부를 막 읽어나가는 중이다. 미지의 세계로 이동하는 방법은 병에 든 어떤 짙은 색의 액체를 마시는 순간 일어난다. 소년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 잠시 다녀온 바에 따르면 그곳에 거주하는 어떤 새는 크기가 어마어마하고 심지어 인간의 말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극중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쪽 세계를 순간이동하며 왕래가 가능한 무리가 두 부류 있다.
잭 소여가 처음에 믿지 않자 그의 눈앞에서 마술 같은 놀라운 이적을 선보인다. 그건 소설가 스티븐 킹이 다른 작품에 흔히 보여주는 일종의 창의력이 풍부한 상상력인데, 이번에는 벤치의 발밑으로 지면의 흙이 소용돌이치며 파들어 가 주인공을 빨아들일 수도 있을 구멍을 내는 것이라든지, 공중에서 뚜렷한 음성이 들려온다든지, 주인공을 납치하려는 작자들의 눈동자가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서서히 변하는 것들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정차되어 있는 자동차가 마치 위장된 덫인 것처럼 사람이 접근하면 문이 열리면서 손이 파충류처럼 길게 뻗어 나와 순식간에 차안으로 끌어당기고는 문이 닫혀버린다. 먹어치웠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 차 주변에는 조금 전과 같이 정적만이 감돌고 그 차는 그대로 다음 표적을 위해 가만히 정차해 있다, 와 같은 무시무시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순간이동과 관련해서는 작가의 다른 작품 《다크 타워》 같은 곳에서는 주인공 앞에 갑자기 문이 나타나며 문을 열고 통과하는 순간 다른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작가 스티븐 킹은 이런 류의 SF 소설과 또 다른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실감 넘치는 스릴러적 줄거리를 펼쳐 보임으로서 문학계에 독보적인 그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3
인간의 정신세계(精神世界)는 그 영역으로 치면 과거에 비해 아주 다양해졌다. 무엇보다도 세계 거대 종교라 일컬어지는 기독교, 회교, 유교, 불교가 있는데 이것도 엄밀히 따지자면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룬 영역이다. 과학적으로는 의학계에서 다뤄지는 일반적인 정신세계와 심리학에서 많이 다뤄지는 무의식의 세계가 있고 한편으로 아직 미지의 학문으로 여겨지는 심령세계가 있다. 그런가 하면 철학에서 다뤄지는 이데아론, 실존주의, 경험론, 합리론 등 모든 사상체계도 일종의 정신세계라고 볼 수 있다.
문학과 예술에서 다뤄지는 정신세계도 다양한데 먼저 문학에서는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전쟁이나 모험, 일상생활 등, 각종 상황이나 환경에서 작용하는 사고방식과 심리 상태가 있겠고, 미래 세계를 다룬 SF소설, 사이코의 복잡하고도 비정상적인 심리를 다룬 스릴러물, 원시 종교에 속하지만 현대 문화에서 엄연한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속이나 지역적 신앙을 다룬 작품군, 스티븐 킹과 같이 현재의 세계에서 3차원적으로 공간영역이 다른 곳으로의 순간이동과 같은 이적이 일어나는 가공스런 세계 등 찬찬이 시간을 두고 짚어볼라치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의 문화는 이런 식으로 따져보다 종합해보면 결과적으로 정신세계로 집결된다. 앞서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보여주는 신비한 세계는 또 어떤가. 그것은 스티븐 킹처럼 인간이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과 차별되는 별다른 공간이 존재하지 않아 보이지만 의식의 저 너머에서 생생한 세상으로 순식간에 넘어오는 장면이 더러 보인다. 그리고 그 넘어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흔적(멍)이 주인공의 신체(얼굴)에 남아있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초능력의 정신세계’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도 한 번 해본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영·정조 시대에 이르러 이단(異端)이라 일컬어져 한동안 금기시되던 소설(천주교의 성경도 이 무렵에는 사학(斯學)으로 취급되었다)이 중국에서 넘어와 민가에서 향유되기 전의 유교와 불교의 엄격한 경전시대에 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상상하곤 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