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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34) 아름다운 마무리 역대상 29:20-30
매사에 시작이 절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어쩌면 마무리가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멋지게 시작하고 출발한 일들마저, 아름다운 마무리로 끝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질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은 역대상의 마지막 기록이요, 우리가 아는 다윗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다윗은 어떤 복을 받고 있는지 함께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예배와 찬양
오늘 본문 20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윗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매 회중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와 왕에게 절하고”
단 한 줄의 말씀이 저를 울게 합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에 회중이 순종합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불평을 다 접어두고, 반대와 원망을 내려놓고, 온 회중이 함께 찬양합니다. 저 벧세메스의 암소처럼, 울면서 억지로 찬양했던 사람은 없었을까요? 도무지 찬송할 마음이 하나도 생기질 않는데도 왕의 명령에 순종해 찬송했던 사람은 없었을까요?
우리도 한 마음으로, 아니, 어떤 상황 어떤 처지 어떤 환경과 어떤 분노와 어떤 미움과 어떤 원망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이 들려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찬송할 수 있는 종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분 때문에 내 감정 때문에 사람 때문에 찬송을 드리지 못하는 일이 없는 우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우리 가정이 그러하면 좋겠고, 그렇게 우리 교회가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입장과 생각을, 처지와 상황을 너도 나도 쏟아놓는 종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만 넘치는 우리, 모든 것을 멈추고 찬송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요. 다윗의 마지막은 찬송으로 장식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혼자 찬송하지 않습니다. 온 회중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했고, 하나님께 많은 예물로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 인생을 마무리합니다. 여러분의 생애 마지막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온통 자녀들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찬송하다가, 무엇보다 하나님께 멋지게 예배를 드리다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분들, 설령 살아서는 못했어도, 죽어서 빈소에서라도 찬송이 울려 퍼지고, 예배가 드려지도록 끝까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분들, 장례식에 목사가 서서, 유족들과 조객들에게, 하나님 만드신 천국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꼭 마련하시는 분들이 다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면서 보시죠. 우리는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대단하다! 라고 말하지만, 아시죠? 오늘 다윗이 온 백성과 함께 여호와를 송축하고, 드린 예물들을 한번 보십시오. 21절, 삼천 번제입니다.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천 마리요 숫양이 천 마리요 어린 양이 천 마리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그래요. 솔로몬은 왕이고 부한 사람이니, 그의 일천 번제에는 소를 드렸을 것이다! 라고 생각할 뿐이지, 실제로 소를 천 마리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냥 천 마리 희생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정확하게 명시가 되어있지요? 수송아지 천 마리, 숫양이 천 마리, 어린 양이 천 마리입니다. 우리의 평생의 예배도 언젠가 한 번은 이렇게 멋지게 드려보실 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꿈을 꾸면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찰싹 거리는 파도보고 마음이 졸이니, 우리는 평생에 배를 띄워보질 못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한 번만이 아니라, 열 번도 백 번도 드릴 수 있는 복된 분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서 생각해보지요. 하나님을 송축하고, 풍성한 제물로 제사드리는 아버지 다윗을 바라보는 솔로몬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고서도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믿음의 아버지와 백성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깝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과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저걸로 나나 잘 기르지, 예수님 제자들처럼 어휴 저걸로 가난한 백성들 구제나 하지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솔로몬의 생각과 받아들이는 마음이 어떠하였든 상관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내 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길 바라며, 오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모습, 예배의 모습, 하나님 앞에서의 종된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주었습니다.
그래요. 오늘 우리가 자녀들에게 보여야 할 최고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보여드리는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모습, 예배의 모범이어야 합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어쩌면 오지 못해도, 우리는 언제나 자녀들에게 최고의 예배자의 모습, 세상에 어느 분이 가장 귀한 분인지를 내 삶과 나의 헌신을 통해 보여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가끔 한 번씩 찾아오는 자녀들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모습, 특별히 저들이 잊지 못하고 기억할 우리의 마지막 모습만큼은 더욱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예배의 모습이 되기를, 오늘부터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름다운 권력이양
하나님께 찬송하고 예배하는 일에 힘을 다한 다윗은, 그 다음으로 자신의 권한을 다음 세대에게 이양하는 일에 힘을 쏟습니다. 그래요.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이스라엘 공동체가 아름답게 하나님을 섬기며,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도록, 준비하고 다음 사람을 세웁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세웁니다. 마치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다음 주자로 세우듯, 자기 아들이나 손자를 세운 것이 아니지요? 모세는 아예 레위 지파도 아닌, 에브라임 지파에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사사 시대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 저 미가의 집에서,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방황하며 살아갔던 이유는 아마, 할아버지가 자기와 가문을 챙겨주지 않은 서운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여호와의 명령이라며 가족들이 아닌 다른 지파에서 지도자를 세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다윗도 다른 누군가를 염두에 두었었을지도 모릅니다. 암논이었을지, 압살롬이었을지, 아도니야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직 어리고 미숙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나라를 통치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사장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과 백성을 말씀으로 세우는 일을 감당하게 하지요. 왕과 제사장을 세워 나라와 성전이 아름답게 서 가도록 했던 다윗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요. 위대한 인물이 세상을 떠나면 그 공백을 메꾸는 일이 쉬지 않습니다. 늘 구관이 명관이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 형 만한 아우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 영향력이 거대하였을수록, 인수인계과정이 매끄럽질 못해서, 공동체가 와해되기도 하고, 오랜 기간 큰 내홍을 치러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능히 이스라엘 공동체를 섬길 사람들을 생전에 이미 잘 세워두었기 때문입니다. 왕도 세우고, 제사장도 세우고, 나머지 모든 군대와 문지기와 찬양대와 일꾼들의 반열을 다 조직해두었던 것이지요.
그래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이나 권한을, 다른 이에게 내어주는 것을 아까워합니다. 내게 허락하진 줄로 재어주신 구역에 만족하질 못하고, 넘겨 주어야 할 것을 계속 내 손에 붙들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되지요? 그 시기를 놓쳐서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바깥 세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후임자가 왔는데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목사님들, 은퇴하시고도 다시 교단 밖에서 교회와 기관을 개척하시는 목사님들, 그렇게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질 못하는 모습들을 교회에서조차 보이고 있으니, 뭐 세상을 손가락질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모세가 아름답고, 다윗의 말년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권한을 기꺼이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다음 세대를 잘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내려놓고 깨끗하게 떠났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엘리야는 그 흔한 무덤도 없이 떠났던 것입니다. 지금 내가 충성하는 것, 지금 내가 홈런을 쳐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를 홈런타자로 준비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만큼은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죽음
다윗의 죽음이 아름다운 첫 번째 이유는, 28절이 기록하듯, 오늘 그가 수한을 다 누리고, 부유한 가운데 존귀하게 여김받는 가운데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상29:28)
이것은 모두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 받은 복이지요. 늘 하나님의 심장소리에 내 심장 박자를 맞추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상급이어습니다. 오래 산 사람, 부유한 사람, 높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다 다윗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는 복, 하나님이 주시는 어쩌면 가장 큰 복일진대,저와 여러분이 모두 누리실 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다윗의 죽음이 아름다운 두 번째 이유는, 29-30절이 기록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평생의 행적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고, 그의 삶은 기록을 해서 남겨두어야 복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또 그의 왕 된 일과 그의 권세와 그와 이스라엘과 온 세상 모든 나라의 지난 날의 역사가 다 기록되어 있느니라”(대상29:29-30)
예수님의 관한 이야기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다 펜을 들어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했다고 했죠?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이 죽은 이후 수많은 세대가 오고 갔지만, 그의 행적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다음 세대들은 다윗을 위대한 왕으로, 그리고 위대한 신앙인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다윗을 본받고 싶어하고 수많은 사람이 다윗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싶어하고, 자녀의 이름을 다윗이라고 짓고 싶어합니다.
오래된 영화 안시성이 있습니다. 성주가 양만춘인데, 그 성에 사는 한 부부가 자녀의 이름을, 늦봄이라고 지어도 되냐고 성주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늦봄이면 만춘인데? 하면서 자기 이름으로 자녀의 이름을 짓고 싶어하는 이들로 행복해 합니다. 그만큼 성주를 사랑하고 존경하니 자녀의 이름으로 택한 것이지요. 감히 행여 그 이름이 불려지며 누를 끼칠까, 똑같이 지을 수는 없고 같은 뜻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요. 다윗의 영향력은 지금도 남아 있고 여전합니다. 신학교에 가면 다윗 모세 요한 바울이 가득한 것이지요? 이름처럼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또한 여러 마음과 바램들, 기대 가운데 세워지고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남긴 유산이요, 다윗의 죽음이 아름답다고 인정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아시지요? 한 사람에 대한 진짜 평가는 그가 호흡하는 동안, 그가 쳐다보고 있는 데서 이뤄지지 못합니다. 그가 죽은 이후에 그가 보지 못할 때 이뤄집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오늘 내 귀에 들리는 평가는 정직하고 진실한 평가가 아닙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남겨질 평가가 바른 평가입니다. 오늘 내 귀에 들리는 칭찬은 교만하지 말라고 주시는 말씀이요, 오늘 내 귀에 들리는 비난은 잘하라고 주시는 말씀인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그리고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을 날, 우리가 죽는 날을 잘 준비해가시는 우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 날에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평가를 들을 수 있는 주의 종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요. 잘 아시는 대로, 다윗의 일생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왕되심을 고백하며, 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고, 힘써 이스라엘의 장래를 준비했으며, 무엇보다도 평생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하였기에 해방공동체가 롤모델로 삼는 인생이 되었고, 그래서 그의 인생은 아름답게 마무리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23-25절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지요? 읽어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에 앉아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 형통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모든 방백과 용사와 다윗 왕의 여러 아들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 또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사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게 최고의 복입니다. 나보다 내 자녀가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여김받고 쓰임받는 이 복을 모두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내 자녀의 존귀함”을 보며 내 인생을 마무리하실 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요. 우리 역시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을 맞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다윗이 누린 모든 복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왕이 되기 전 30년, 그리고 왕이 되어 40년, 그는 70년 평생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노래하고 의지하며 참고 견디고 감사하며 살았던 것이지요. 다윗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다음 세대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위해 일하는, 이를 위해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처음의 모습보다 마무리의 모습이 더욱 하나님과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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