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99D0A6375B4400462A)
7월 7일
군 동기생들 모임이었다. 부부동반 8팀 싱글 여덟명 총 24명이 연안부두 대합실에 도착했다. 인천과 백령도를 운항하는 화이트 하모니호를 타고 여덟시 반에 인천항을 출발했다. 날씨 쾌청하고 바람 온화하였다. 해병대 초급장교시절 해안소대장의 추억이 있거나, 통신이나 수송병과로 백령도 근무 경험이 있는 동기생들이었다. 특히 대령 예편한 윤종욱 군은 백령도에 참모장으로 근무하여 다른 동기생들에 비해서 비교적 백령도 근무 경력이 가까운 편이었다. 그 세월도 10여 년이 넘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좋은 자료를 많이 제공해주었다.
40여 년 전 옛날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연평도에서 1년 6개월을 소대장 생활을 했다. 그때 서해 5개 도서의 신참 소위들이 겪었던 애환은 백령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진지와 교통호 작업을 많이 했고, 훈련은 빠지지 않고 다 받았다. 야간 경계근무는 철저했다. 대부분 최전방에 근무하는 부대는 경계근무가 주 임무였다. 경계근무를 위해 작업도 훈련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연평도 병사는 낮에 힘들게 작업하고 훈련받고 밤에 야간경계근무를 서야 했다. 이중으로 시달렸다.
그 시절 대원들은 일요일에도 쉬지 못했다. 부대장이 기독교 신자였다. ‘전군의 신자화’라는 구호를 내세워 일요일이면 근무자 제외 전부대원이 교회에 가야했다. 대원들은 설교시간에 졸았다. 그러면 군목이 존다고 고함을 질렀다. 피곤에 절어 지내는 대원들에게 조금도 연민이 없는 사람이었다. 장교들은 그를 돌파리라 불렀다. 그 덕에 나도 세례를 받았지만 한 번도 내가 기독교 신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무리한 선교강요에 오히려 정나미만 떨어졌다. 그때 배웠던 찬송가를 지금도 열 곡 정도는 부를 수 있다.
중대장들은 악질이었고, 선배 장교들에게 집합을 당해 기수 빠따를 두어 번 맞았다. 데리고 있던 선임하사들은 추접하고 간교했다. 소대원들에게 돌아갈 고기나 부식들을 빼돌려 마을에 팔아먹기도 했다. 보직해임을 시켜 다른 데로 보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가족을 데려온 중사들은 주부식을 소대에서 갖다 먹었고, 또 그것을 팔아먹는 놈도 있었다. 그때 힘들었고, 배고팠던 대원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지나고 나서 일었다. 내가 그 후로 4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해병대였다는 것을 긍지로 삼고 살아왔는데 좀 더 충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 당시 백령도를 다녔던 연락선이 옹진호였고, 연평도 다녔던 배는 황진호였다. 백령도는 열두 시간, 연평도는 여덟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백령도에 네 시간이면 도착한다.
종전 이후 오십여년 동안 평화로웠던 서해5개 도서가 최근 십년 사이에 큰일을 두 번 겪었다. 백령도 근해에서 천안함이 침몰되었고, 연평도 포격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겪은 후로 소외되었던 서해5개 도서가 전략상의 중요한 거점으로 다시 인식이 되었다. 장비가 현대화 되었고, 무기 및 병력이 대폭 증강되었다. 내가 근무했을 때는 해안가로 함포, 전차포 등이 즐비해 대한민국 단위 부대 중에 최고의 화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떠들었지만, 훈련 시 사격을 해보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는 화기는 별로 없었다. 다 2차대전 때 썼던 무기였거나, 육군에서 쓰다 오래되어 구닥다리가 된 구형무기가 용도 폐기 직전에 도서지방으로 왔다. 두어 번 쏘고 나면 수리하기에 바빴다.
지금은 코브라 헬기 부대가 있고, 155미리 장사포 (사거리 40키로), M7 신형 전차로 바뀌었고, 미사일 기지와 레이다 기지가 신설되었다. 그때에 비해 병력이 2천명 증가 되었다.
인천을 떠나서 세시간 반 정도 되었다. 작은 섬에 사람을 내려주었다. 소청도였다. 다시 십여분 이동하여 대청도에 들렸다가 백령도에 도착했다. 내가 근무했던 연평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섬이었다. 백령도는 동서로 11킬로 남북으로 4킬로 되는 섬이다. 인구가 만 명인데 주민이 5천명, 군인이 5천명이다. 주민의 9할이 농업에 종사하고 나머지 1할이 어업으로 산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191415B4400F433)
소청도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8433F5B44011F23)
대청도 대청도는 둘레길이 아주 좋다고 다녀온 사람들이 추천을 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상과 물범이 우리를 맞고 있다. 물범은 백령도에만 사는 보호동물이다. 오래전에는 물범의 거시기가 정력에 좋다고 해서 색골들에게 인기가 최고였다. 늙은 노인이 먹었는데 얼굴에 여드름이 피었다 했다. 우리나라에서 물범의 거시기를 취할 정도가 되려면 롯데의 신격호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FB7385B44018728)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B513F5B4401AC31)
백령도 다운타운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마치고 심청각에 오르다. 백령도는 인구 만명의 작은 섬인데 소비성향이 대단히 높다. 노래방, 피시방이 잘되고 룸살롱이 열군데 성업 중이고, 롯데리아가 아주 잘되는 곳이다. 젊은 병사들이 많은 덕이다.
사정거리 20키로 155미리 직사포로 퇴역했다. 사정거리 40키로 155미리 곡사포로 대체되었다. 지금은 안보 관광용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77A3A5B4401EE33)
M47 2차대전 때 사용했던 탱크 지금은 M7로 교체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7E24335B44023A04)
심청각에 올라서 본 옹진반도 장산곶이다. 장산곳 앞 물살이 거세고 사철 소용돌이 치는 곳이 인당수 이다. 심청이가 용왕의 제물로 바쳐졌고, 섬의 반대편 연화봉에서 연꽃이 피어나며 다시 세상에 나왔고, 연화리에 살았다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모처럼 날씨가 좋아서 북녘 땅이 아주 뚜렷하게 보였다. 심청각 앞 NLL쯤 되어 보이는 곳에 어선이 두어 척 고기를 잡고 있다. 중국배라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F1F3375B4402AA30)
작은 점 처럼 떠 있는 배가 중국 어선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13B375B4402AC2A)
옹진반도 끝이 장산곶, 그 앞바다가 심청이 뛰어 들었던 인당수
용트림 바위 전망대에 오르는데 갈매기가 가까이에 쉬고 있다. 잿빛 갈매기는 새끼갈매기이다. 어른이 되면 하얀빛을 띄게 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1DA365B44034D32)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5423E5B44038D35)
두무진 항구에서 유람선을 탔다. 왕복 사십분 해안 절경을 둘러보다. 천안함이 침몰된 지점까지 와서 둘러보고 돌아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D6E355B44057A42)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81D3A5B44044532)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6073A5B44044701)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0DF3A5B4404492F)
![](https://t1.daumcdn.net/cfile/cafe/992A103A5B44044B33)
![](https://t1.daumcdn.net/cfile/cafe/99CCBE3A5B44044D37)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B513F5B44049038)
암벽의 위쪽에 구멍이 뚤린곳이 90미리 해안포 진지이다. 나바론의 요새처럼 절벽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 째 세워진 중화동 교회다. 옛 모습은 없다.
교회 아래 느티나무 그늘에서 가이드의 마술을 구경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2490395B4405BB0B)
![](https://t1.daumcdn.net/cfile/cafe/9971C6395B4405BD07)
천안함 추모비에 참배했다. 바로 여기서 2,5키로 되는 바다에서 격침을 당했다. 일동 묵념했다.
저녁을 먹다. 백령도에는 양식장이 없다. 횟집의 물고기는 자연산이다. 해삼과 우럭회가 입에 살살 녹는다.
8일 아침
일찍 기상하여 심청각에 혼자 올랐다. 날씨 쾌청하고 바람 잔잔했다. 고은 시인의 시비가 오늘 아침에서야 눈에 띄었다. 미투 사건 이후로 대한민국 곳곳에 고은 시인의 자취가 뭉개지고 있는데 백령도에서는 건재하여 반가웠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FEE415B4405F606)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FF4415B4405F806)
아침을 먹고 사곶 해수욕장에 갔다. 백령도는 날씨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대표적인 해양성 기후이다. 한 여름에도 해수욕을 할 수 있는 날이 일주일이고 열대야는 없다. 백령도는 대한민국 섬 넓이 순위에서 12위에서 8위로 네 등급이 올랐다. 바다를 막아서 섬이 백오십만 평이 더 넓어진 것이다.
사곶 해수욕장 끝으로 드나들던 바다물을 막아 간척지를 만들고 큰 민물 저수지를 만들었다. 이 사곶해수욕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연 활주로였다. 세계에 천연활주로는 나폴리하고 여기 백령도 두군데 였다. 이제는 활주로로 쓸 수 가 없게 되었다. 간척지를 막음으로서 해류의 흐름이 달라졌고, 그 결과로 모래사장이 물러져 비행기가 착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만이 모래사장 위를 달린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2932345B44066D0C)
사곶해수욕장이 보이는 관망대에 올랐다. 숲길을 따라 가면서 해안 초소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옛날 분초의 막사가 폐허로 남아 있었다. 1개분대의 병사 열두어 명이 지냈던 곳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2D6415B4407330D)
벌써 40년이 지났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옛날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추억의 앨범 속에서만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내 기억의 아득한 저편 끝에나 남아 있을 것이다. 그때 일주일에 기상이 좋으면 배가 두 번 들어왔다. 황진호는 소망의 여신이었다. 배에 왔던 편지들에 장병들의 희망은 실려 있었다. 철조망 사이로 피었던 해당화에는 고향 뒷동산으로 향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지는 저녁놀을 볼 때면 왜 그렇게 심난해야했던지.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F93415B4407C713)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FEE415B4407C90C)
약초 파는 데. 특산물 파는데 두 군데를 들렸다. 역시 여인들의 표정은 장바구니를 들고 있을 때 활짝 피어난다. 한 아름 씩 백령도의 향기를 안고 귀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