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킴라일락*/ 김진숙
들리네요, 화분 속에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눈물로 피고 지던
기지촌의 꽃밥 한술
미스 킴 혼혈의 언니,
라일락이 웃네요
*해방 직후 식물 채집가 미더 교수가 북한산에서 수수꽃다리 종자를 채집,
미국으로 건너가 개량하여 만들어진 꽃.
***
보말 껍데기/ 김진숙
물질 간
누이의 들숨
연신 뱉던
그 아이
문득 잠이 깨는 유년
웅크린 돌담 아래
발치께 뭉클 쏟아진
숨소리가 파래요
***
곱사등의 시/ 김진숙
꽹과리 북장단에 제주 오름 들썩인다
가둔 채
울지 못하는
꽃을 위해
너를 위헤
알오름
하얀 피로 울어
등이 휘는
억새야
***
바람까마귀/ 김진숙
새들도 기억하는 걸까
제주 봄날 그 꽃자리
떼 지어 너른 들녘에
무른 상처 쪼다 말고
울음 채 삭이지 못한
목울대 돋우다 말고
약속이나 한 듯이 모여든 나뭇가지
찰칵!
셔터 소리에 검은 꽃 나래를 펴고
까맣게, 꽃들이 날아간다
조문하는 저 사월로
***
철학 하는 바다/ 김진숙
저들도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웠을까
막다른 곳에 이르러 생각이 많아졌는지
사유의 섬유질란 남은 억새 무리를 본다
돌아가는 길은 늘 바다로 와 길을 지우고
발목이 다 젖도록 풀지 못한 물음 앞에
외발의 가마우지도 바위처럼 앓는다
물갈기 세운 날에 쇳소리로 울던 바다
하얗게 시간의 태엽 감았다가 풀었다가
수평선 덧문을 열고 다시 내게 묻는 바다
***
겨울 무밭/ 김진숙
흙 묻은 겨울 햇살
한입 스윽 베어 물고
'스왕스왕 스왕스왕'
사투리로 씹다 보면
입안에 쩍쩍 붙는다
제주 바람
그
단내
***
그리운 밤바다/ 김진숙
서투른 이별 두고 늦도록 뒤척이다가
선잠 속 잠꼬대하듯 끼룩끼룩 울다가
아련히 손끝에 닿는 아버지 막걸리 냄새
눈물 슬쩍 감추려 안개 풀어놓으셨나
발밑에 어둠 끌어와 이불인 양 덮던 바다
그 바다 속울음 소리 나는 알지 못했네
***
김진숙시인: 1967년 제주 성산읍 시흥리 출생/ 2004년 제주시조지상백일장 당선/
2006년 {제주작가} 신인상/ 2008년 {시조21} 신인상/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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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킴라일락'의 주석 가운데, '미러' 교수는 '미더'의 오자여서 바로잡았음.
Elwin M.Meader는 한국의 군정기인 1947년에 캠프잭슨에 근무하던 미국 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로
도봉산에서 자라던 정향나무 혹은 털개회나무 종자를 채취,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하였다고 하며
미스킴은 그의 한국 사무실에 근무하던 타이피스트의 성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