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붉히게 한, 독일대사의 ‘외교’
2004년12년10월 쉴리 (Otto Schily) 독일 내무부장관은 서울에서 우리나라 당시의 김 순규 법무부 장관과 한·독 양국간의 "입국 및 체류에 관한 양해각서"와 "불법체류자 송환협정"에 서명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국민은 장기 체류비자를 획득하는데 있어 독일로부터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첫 대접을 받게 됐다.
독일은 '한국의 해'가 독일에서 시작되는 2005년1월1일부터 우리나라 국민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이스라엘 그리고 유럽 연합(EU) 국민과 똑같이 취급해, 무 비자로 독일에 입국한 후, 현지에서도 장기 체류비자를 신청할 수 있게 했다.
독일 정부는 이를 위해 2004년11월5일 연방상원에서 외국인 법 시행령 41조를 개정해 비자발급 시 특혜를 줄 수 있는 국가에 우리나라를 추가시켰다. 이로써 한국은 명실공히 실질적인 비자발급 문제에서 선진국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독일의 선례는 여타 EU 국가에도 전파되고 있다. 우선 오스트리아가 그런 선례를 이어 받았고 화란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기대, 그리고 동남아 지진해일 때에 우리의 기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독일정부의 우리 국민에 대한 구체적 대응 조치의 하나이다. (참고로 "쓰나미" 사건 때 우리의 공적 원조 액은 5천만 불 이었다)
그로부터 4~5년 지난 재 작년 초 1월, 독일 외무성 하우스베델 (Dr. Christian Hauswedell) 대사가 서울에서 개최된 조찬 석상에서 언급한 아래 내용이 지금껏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사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2004년12월 동남아의 지진해일 '쓰나미' 때를 보아도 알 수 있었지요. 한국과 일본의 국제적인 기여에 대해 우리는 매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화가 되면 될수록 이와 같은 인도적인 국제협력은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지만, 피셔(Joschka Fischer) 외무부장관은 당시 곧 바로 피해 현지로 달려 가지 않을 수 없었고, 5억 유로의 공적 지원을 독일은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관광객이 대부분인 독일인의 인명 피해만 해도,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 사망 33명, 부상 260명이었으며 그 이외 실종자가 1000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니까요.”
그는 과거 콜 총리의 공보비서관을 역임한, 인품은 물론 박식하고 다독(多讀)으로도 유명한 독일외교관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였고 공식적으로 65세가 지난 터라 작년에 외무성에서 은퇴한 그는 당시 원조 업무를 담당, 총괄하는 외무성의 아주국장으로서 '쓰나미' 사건 때 수 주일을 피해 현지에서 보낸 사람이다. 대사의 연설은 계속됐다.
“사실 선진국이란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성인과 비교할 수도 있겠지요. 정치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와 인권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고 경제적으로는 못사는 사람들을 함께 배려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구현하자는 취지라고 보면 큰 오차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이 경제발전단계에 받은 외국의 지원을 환원하며, 개발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한다는 정책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우스베델 대사의 어조는 늘 그렇듯이 칭찬과 격려 일변도였다. 특히 한국인의 자존심을 잘 아는 그는 “독일은 현재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북구국가가 개도국에 보여준 관대함을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OECD 멤버로서 OECD가 적극 권장하고 있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공적 개발원조(ODA) 비율 0.7%는커녕, 재 작년도 독일이 제공한 원조는 0.27% 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기껏 금년 목표가 0.33%이니까요.
1% 전후를 부담하는 북구 국가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선진국을 규정하는 척도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독일대사의 연설에 대비, 나는 나름 대로 몇 가지 질문할 내용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사의 '고백'을 다 듣고 나서 나는 그저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당초 "우리나라가 과거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개발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전환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려 작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OECD에 가입한지 내 후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났지만, 이 기구의 핵심인 개발원조위원회(DAC)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고, 공적 개발원조(ODA)의 국내 총생산(GNI)에 대한 비율도 0.06%로서 국민 1인당 대외원조 액이 8달러에 불과한 우리 현실로서 선진국 운운이란 말을 내 자신이 하기엔 정말 부끄러웠던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와 비슷했던 85년의 경우, ODA/GNI 비율이 0.29%였고 우리와 현재 GNI 수준이 비슷한 호주나 스페인도 0.25% 및 0.30%를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는 남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기와만 올린 토담집 수준이란 말인가?
9년 반이 지난 지금 껏 하우스베델 대사의 이야기는 내게 계속 환청으로 남는다. 우리의 실정이 그 정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기는 대사의 저 겸손... 외교란 저런 게 아닐까?
“국민 총생산(GNP) 세계 12위 국가로서 한국이 선진국으로서의 특혜를 받는 것은 때늦은 조치로서 우리는 동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여에 대해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렇다. 우리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 민족주의만을 내세워왔던 과거와는 다른 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세계 12위 국가로서의 국제적인 기대에 우리가 세계 120위 국가라고 떼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 때의 옷은 어른이 되면 당연히 바꿔 입어야 한다. 그것이 순리 아닌가? 세계는 우리를 유심히 지켜 보고 있다!
<권영민/현 순천향 대학 초빙교수/전 한-독 미디어 대학원대학교 홍보대사 겸 부총장, 전 주(駐)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대사, 애틀랜타 총영사, 제주 평화연구원장 대리 역임/저서: "베를린 맑은 하늘에 그림을 그리자", "자네 출세했네","권 대사, 자네 큰 실수했네"/서울대 문리대 졸업/충남 아산産>
첫댓글 수백 년, 수천 년 걸린 모든 걸려가려니
과외와 쪽 집기 답안으로
너무나도 많은 힘이 드나 봅니다.
사춘기 아이들처럼 울퉁불퉁.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아가리라 생각이 들어
인내로 기다리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국운이 따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운
그렇습니다. 지나고 보면 국가 지도자들도 그때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때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