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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 14 파는 사람과 바꾸는 사람 - 요 2: 18 이런 일을 행하니
3.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 2: 14-22 )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전통적으로 이것을 성전 청결이라고 했다. 성전 뜰이 얼마나 크냐 하면 가로 300미터 세로 475미터이다. 성전 뜰 여인의 뜰 남자의 뜰 제사장 제단 지성소 등이 있다.
로마 군대가 약 5-6백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감시하고 있었다. 중요한 순례 절기에는 민족해방운동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여기에 장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와서 예수가 상을 뒤업고 소란을 피웠다. 전통적으로 이것을 성전 청결이라고 한다. 성전의 거룩성을 회복해서 하나님께 헌당했다는 뜻으로 해석을 했다.
이방인의 뜰은 요즘 사람들이 만든 뜰이고 원래 없었다. 막 11: 16절에 근거해서 성전이 유대인의 전유물로 전락했다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원래 성전은 모든 사람. 즉 이방인까지 포함한 기도의 처소였는데 이방인이 기도하는 것 마저도 유대인들이 막아서 예수가 싹쓸이 해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기도처를 되찾게 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위한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처로 했다는 의미로 예수의 성전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건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새 와서는 정치신학, 해방신학자들은 혁명적으로 당시 성전 제사장들의 부패 타락상을 말하는 것이고 가난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로부터 오는 민중들을 착취하는 것을 상징했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했다고 해석을 한다. 이런 것들은 별 의미가 없다.
사실 성전 소란 사건이 큰 사건이 아니었다. 큰 사건이었다면 성전 경찰에게 잡혔다. 성전 소란은 혁명적인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 장사치 몇 명에게 상징적으로 상 몇 개를 뒤엎은 사건이다. 이것은 구약에서 보는 선지자적 시위 싱징적인 데모이다.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상징적 행위를 통해 전달하는 메세지가 있다.
여기서 논쟁이 벌어진다. 네가 성전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표적을 내봐라. 메시야로서의 권세를 증명해라. 이에 대해 예수가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사흘 만에 내가 세우겠다고 한다. 이 말은 요한복음의 유명한 기법이 나오기 시작한다. 곧 오해(disunderstensing), 지도자들은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한다. 시공의 물리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그것의 영적인 진리 하늘의 진리 표적성을 보지 못한다.
46년 동안 걸렸는데 3일 만에 짓는다고. 그들은 예수의 표적성을 깨닫지 못했다. 요한은 이 표적성을 자기 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의 부활 후에야 깨달았다. 부활의 빛 아래 되돌아 보았을 때 깨달았다. 이 말은 예수의 대속과 십자가의 죽음이 새 언약의 제사이다.
요 2: 14 파는 사람과 바꾸는 사람 -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의 집이다.
그곳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처소이어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주의 일을 의논하고 교제하는 것 외에, 성전 안에서 세상적인 행사들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1]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멀리 이방에서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오는 순례자(巡禮者)들에게는, 성전 안에서 소와 양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편리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편리를 위하여 고요히 예배를 드릴 장소에 혼잡을 가져오는 것은 도리어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인간은 편리를 도모하는 것이 당연하나, 영적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것을 취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2]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바꾸는 것은, 이방에 살던 유대인들이 가지고 온 로마 돈을 성전에 바치기 위하여 유대의 세겔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 출 30: 13 -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그들이 그 때에 성전에서 이런 매매 행동을 통하여 부당한 수입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잘못이다.
* 사 56: 7 -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 렘 7: 11 -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앉은 것을 보시고
앉았다는 것은 고착화 된 것을 의미한다.
성전에서의 매매행위와 돈 바꾸는 행위가 당연한 것처럼 고착화 되면 교회는 부패하기 시작한다.
더욱이, 종교적 행위를 빙자하여 돈벌이를 하는 행위는 성전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가증한 일이다.
요 2: 15 채찍을 만드사 -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다.
1]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노끈은 쉽게 끈기지 않는 질긴 것으로 채찍으로 사용할 때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화될 때까지 반복하여 사용함을 의미한다.
2]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하나님은 제물에 눈이 어두운 분이 아니시다. 회개하는 자의 진심어린 통회 자복을 원하신다.
3]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돈은 사람 경제활동의 매개 수단을 의미한다.
4] 상을 엎으시고
이 말씀을 보면, 이 때에 예수님의 의분(義憤)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이 의분인 만큼, 질서 있게 움직였다. 예를 들면, 그가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셨을 뿐이고 그것을 뿌리지 않으셨다. 그가 그렇게 하신 것은, 그 소유자들로 하여금 돈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하심이었다. 만일 그가 그 돈을 뿌리셨다면, 돈 임자가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 2: 16 장사하는 집 -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더욱이, 종교적 행위를 빙자하여 돈벌이를 하는 행위는 성전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가증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 대신에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참된 경건과 너무 거리가 먼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장사하는 집이 되지 않고 순수한 성전이 되기를 원하셨다.
1]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이 구절에도 예수님의 의분이 질서(秩序)있게 나타난 것이 드러난다.
그는 말씀으로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고 하셨을 뿐이고, 그것을 날려 버리지 않으셨다. 그는 남의 소유물을 이렇게 존중히 여기셨다.
2]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이것은 상업을 정죄하는 의미가 아니고, 성별 된 기관을 세속(世俗)과 혼동시키지 않아야 할 것을 가리키신 것이다.
공관 복음에서 취급된 둘째 번 성전 청결 기사에 있어서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라고 하셨다.
* 마 21: 12-13 –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 막 11: 15-17 –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 눅 19: 45-46 –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이것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정직하지 않은 것을 꾸짖은 말씀이다. 물론 이 말씀에는 성전 안에서 그런 영업을 할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요 2: 17 주의 전을 사모하는 -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
언급된 성경은 시편 69: 9이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며 그것을 위해 열심을 낼 것이다.
그래서 시편 137편 저자는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라고 고백하였다(시 137: 6).
예수님의 성전 청결의 권위 있는 행위는 성전을 위한 그의 사랑과 열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1]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은 그곳이 사랑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 시 5: 7 -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은 그곳이 살진 것으로 풍성하기 때문이다.
* 시 36: 8 –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은 그곳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 시 65: 4 -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은 그곳이 복이 있기 때문이다.
* 시 84: 4 -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은 그곳이 영원무궁하기 때문이다.
* 시 93: 5 -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
2]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것은, 시 69: 9의 인용인데, 다윗이 그 원수들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핍박받은 사실을 가리킨 말씀이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성전 청결의 날카로운 행사를 보고 그가 유대인들 앞에 핍박 받으시게 될 것을 예측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 죽으실 수 밖에 없었다.
요 2: 18 이런 일을 행하니 -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
1]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예수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2]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표적(sign) 또는 이적(異蹟. miracle)
성경에서 '이적'(혹은 '기적')과 '기사'와 '표적'은 같은 것을 표현하면서도 그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이적은 정상적인 자연현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상한 사건 자체를 가리키고, 기사(wonder)는 목격자의 놀라워하는 태도를 뜻하며 그 희한성에 강조가 있고, 표적(sign)은 이적을 행하는 자의 신분과 그 이적의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적은 종종 행하는 이의 능력과 신분을 증명하는 표적이었다.
* 막 16: 20 -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
* 행 14: 3 -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대개 이적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경적 용어상으로 기적은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주는 하나님의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성경에서 기적은 자연과 초자연으로 구분하여 기적을 자연 법칙에 위반하는 직접적이고 특별한 사역이라고 이론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연적인 동시에 초자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존과 통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적은 추상적 문제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 구원사적 활동으로 기적의 의미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기적 중의 최고 기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사적 신적 계시의 표징인 기적을 자연법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자연법을 절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초자연, 자연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인간 편에서의 편의상 구분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이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는 "기이한 일"(powerful deeds), "기적"(wonders), "표적"(signs)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말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이적은 예수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으로 간주 된다.
예수 이후 1세기에 기독교인의 마음에 들어와 있던 희랍의 자연법 개념은 이 세 용어를 이적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되어 자연법에 역행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초자연적 행위로 전이되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적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권위를 증면하는 것이다.
17, 18세기에 자연 과학이 발달하고 불변법(immutable laws)에 따라 작동하는 것처럼 자연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이적의 개념은 교회의 외부로부터 신랄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통적인 신학자들은 이적을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 안에서의 커다란 변혁은 자유주의 개신교의 발생과 성서 비평의 인정과 함께 발생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개신교는 신앙이 기적적인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적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 고대 문서와 다른 경전들을 성공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비평의 기준에서 성경를 제외한 것은 정직하지 못한 역사였다고 믿었다.
여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고대 사람들이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사건들을 모두 이적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결론은 정통파에게 혼란을 주었고 세계 2차 대전 이전 수십 년 동안 이적과 성서 비평에 대하여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신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많은 자유주의 신학적 개념을 부인했지만 성서 비평과 그 전제조건들을 인정했다.
신약성서의 이적 이야기들은 예수의 중요성을 신앙으로 표현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해석되었다. 현대의 어떤 기독교 호교론자들은 과학의 새로운 발달이 이적의 불가능성의 개념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신학적 중요성을 가지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역사가들이 대답해야 할 질문은 "이적이 불가능한가?"가 아니고 "이 특별한 경우에 무엇이 초자연적 개입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은 다른 종교들의 이적이 초자연적이 아닐 때 진정으로 초자연적인 종교의 이적을 결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