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의 출발지 라메세스는 지금의 타니스라는 것이 20세기의 통설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 말에 타니스 남쪽 20 km에 위치한 칸티르 (Qantir)에서 고대 도시가 발굴되었고, 칸티르에서 2 km 남쪽인 텔 엘다바(Tell el-Dab'a)에서 또 다른 고대 도시가 발굴되었다. 2천년대에 들어와서 칸티르의 유적은 라메세스, 텔 엘다바의 유적은 힉소스 왕조의 도읍 아바리스(Avaris)로 밝혀졌다.
타니스로 인식했던 라메세스의 위치가 100년만에 바뀐 것에 대하여 고고학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람세스 2세(재위 BC 1279~1213)가 아바리스 인근에 라메세스 도시를 건설했으며 훗날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두 도시 모두 버려졌다. 세월이 흐른 후 타니스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라메세스와 아바리스의 폐허에서 석재를 옮겨다가 사용했고 그 때문에 타니스에서 라메세스와 아바리스의 유적이 함께 나왔다는 것이다.
시편과 이사야서는 파라오의 궁궐이 조안(Zoan)에 있다 했고 출애급기에서 모세는 파라오의 궁궐과 고센을 자주 왕래한다. 이는 조안(Zoan)이 고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안(Zoan)이 어디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서 나일 델타에 도읍이 있었던 시기를 찾아야 한다.
제20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람세스 11세(재위 BC 1098~1070)가 룩소르에서 타니스로 도읍을 옮겼다. 람세스 11세의 통치권은 이집트 북부에 국한되었고 남부 이집트는 테베(룩소르)를 거점으로 독립정권이 통치했다. 타니스로 도읍을 옮긴 정확한 년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선왕인 람세스 10세 (재위 BC 1108 ~ BC 1098)가 오랫 동안 타니스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아 타니스 도시는 람세스 10세 때 건설되었고 람세스 11세 즉위초에 정식 천도한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의 타니스가 성서에 나오는 조안일 것이다.
지금의 칸티르(고대의 라메세스)에서 나일강 지류를 따라 20 km 내려가면 타니스에 도착한다. 고센에서 나일강에 버려진 아기 바구니가 조안(Zoan)으로 떠내려와 갈대밭에 걸렸고, 파라오의 딸이 조안(Zoan)의 왕궁에서 나일강에 나왔다가 바구니 속의 아기 모세를 발견하고 데려다 키웠다고 하면 스토리에 모순이 없다. 람세스 11세가 테베(룩소르)에서 조안(타니스)으로 도읍을 옮긴 직후 BC 1096년 무렵에 모세가 태어났다면 이런 일이 가능하다. 모세가 이집트에 돌아온 후 조안과 고센을 여러 차례 왕래한 것도 조안이 지금의 타니스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엑소더스의 경로는 아래과 같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히브리족은 BC 1446년에 라메세스를 출발하여 이집트에서 나온 후 40년간 떠돌다가 BC 1406년에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 가서 16년만인 BC 1390년에 토착민을 모두 정복했다.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들(1956년작 십계, 2004년작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은 엑소더스 당시의 파라오가 람세스 2세라 하고 일부 져널리즘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는데 그 시대는 성서의 기록보다 대략 200년 늦는다. 이집트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도 두 가지 주장 모두 오류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집트는 BC 1480년 무렵에 가나안을 정복하여 BC 1140년 무렵까지 지배했다. 람세스 2세가 즉위했을 때 이집트의 도읍은 지금의 룩소르였는데 람세스 2세는 나일강 델타 지대에 신도시 라메세스를 건설하여 북방 경영의 거점으로 삼았다. BC 1274년 람세스 2세는 가나안의 북쪽 카데시(Kadesh)에서 히타이트 왕국을 상대로 대규모 전투를 벌였고 히타이트의 남진을 저지하여 가나안 땅을 지켰다.
이집트의 숙적이던 히타이트 왕국은 바다민족의 침입으로 BC 1180년에 멸망하였고, 이집트는 제20 왕조 람세스 3세(재위 BC 1182~ 1151) 치세에 바다민족과 격렬한 전쟁을 치렀다. 바다민족의 일파로 천주교 성서에 필리스티아(Philistia), 개신교 성서에 블레셋으로 표기된 종족이 람세스 3세 때 가나안의 지중해 연안을 차지하였다.
이 때부터 이집트는 가나안에서 밀려나기 시작해서 람세스 6세(재위 BC 1141 ~ 1133) 때 가나안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BC 1070년에 람세스 11세(재위 BC 1098~1070)가 사망하면서 제20 왕조가 끝나고 제21 왕조가 수립되었다. 제21 왕조는 타니스를 도읍으로 BC 945년까지 존속하면서 북부 이집트를 지배했고 남부 이집트에는 테베(룩소르)를 도읍으로 독립정권이 존속했다. 남북 분열 상태는 누비아의 쿠시(Kush) 왕국이 BC 740년대에 북부 이집트를 정복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히브리족의 가나안 원정이 BC 1140년 이전이라면 히브리족은 가나안에서 이집트 군대와 싸웠어야 한다. 성서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히브리족이 싸운 상대는 이집트 군대가 아니라 가나안의 토착 종족이었다. 성서에 의하면 히브리족은 가나안 땅의 7개 종족 - Hittites, Amorites, Jebusites, Perizzites, Girgashites, Hivites, Canaanites -을 정복했으나 Philistines 족은 끝끝내 정복하지 못했다.
히브리족의 가나안 원정은 이집트가 가나안에서 물러간 뒤에 일어났으므로 BC 1130년 이후다. 엑소더스 당시 이집트 영토의 경계는 지금의 수에즈 운하이고 수에즈 운하 동쪽 시나이(Sinai) 반도는 이집트의 세력권 밖이었다. 이집트의 영토가 이와 같이 축소된 것은 람세스 11세(재위 BC 1098~1070) 때였다. 따라서 엑소더스는 람세스 11세 사후에 일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모세의 출생이 BC 1096년이면 성서의 기록보다 430년 늦는다. 엑소더스는 그로부터 50년쯤 후일 것이고 이집트 탈출 후 가나안 정복까지 20~30년 걸렸을 것이다. 역사학계에서 인정하는 이스라엘 건국은 다비드 왕이 즉위한 BC 1010년이니 연대상으로 앞뒤가 맞는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엑소더스의 출발지 라메세스 (Rameses)는 지금의 칸티르(Qantir)이다.
2. 힉소스 왕조의 도읍 아바리스(Avaris)는 칸티르에서 2km 남쪽인 텔 엘다바(Tell el-Dab'a)이다.
3. 시편과 이사야서에 엑소더스 당시의 도읍으로 묘사된 조안(Zoan)은 지금의 타니스이다. 칸티르에서 20 km 북쪽이다.
4. 모세가 태어났을 때 이집트의 도읍은 조안(지금의 타니스)이다.
5. 모세는 성서의 기록보다 430년 늦은 BC 1096년경 고센(Goshen)에서 태어났다. 모세가 태어난 곳은 라메세스(지금의 칸티르)와 소안(지금의 타니스)의 중간 지점일 것이다.
6. 엑소더스가 일어난 시기는 성서의 기록보다 400년 늦은 BC 1046년경이며 당시의 파라오는 스멘데스 1세(BC 1069~BC 104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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