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咀呪)
‘저주’는 동서고금에 은밀하게 자행되어온 무서운 비방이다. 민간은 물론 왕조사에도 왕실의 비빈들이 적대시 하는 사람을 저주해왔다는 것은 부지기수이다.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하는 등을 위한 비밀한 저주는 부지기수이다. 저주를 일명 방자(方子)라고도 한다.
최근에 필자는 우연히 어떤 무속인을 만나 오늘에도 저주는 비밀히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바람난 아내의 애인을, 바람난 남편의 애인 등을 무속인에게 고액을 바치며 저주해달라고 청탁한다는 것이다. 저주를 해달라고 비밀히 거래를 트려는 사람은 열 명이면 아홉이 여자라고 한다.
대체적으로 무서운 저주는, 첫째, 원한이 맺힌 저주는 무엇보다 현실화 한다. <둘째, 무당이 모시고 부리는 무서운 신들 앞에 공양물을 바치고, 신들에게 저주대상의 사주를 고하고, 재앙을 내리기를 지극지성으로 기도 하는 것이다. 세째, 저주대상의 사주와 이름을 종이에 적어 붙인 인형에다 저주의 주문을 외우며 큰 바늘로 인형의 눈을 연거퍼 찌르기도 하고 심장과 목과 복부에 찌르기도 하며, 목을 비틀기도 한다. 저주하는 방법은 부지기수였다. 저주는 곧잘 현실화 한다.
저주는 굳이 무당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무당은 오랜 세월을 거쳐 신들에게 기도를 해오기 때문에 보통사람 보다는 빠르게 초상적(超常的)인 정신통일을 이루고, 그 정신력으로 신들과 감응하기 때문이다.
무당이 아닌 보통사람이라도 정신통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저주한다면 그 효과는 당연히 나타난다. 또 종교적으로 평소 기도생활을 많이 한 사람은 그 정신통일이 무당에 못지 않고, 때로는 능가하기도 한다. 특히 여자의 가슴에 원한이 사무쳤다면 저주하는 마음에는 정신통신을 빨리 이룰 수 있다.
정신이 통일되면 무엇을 이루지 못할 것인가(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이 통일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 염력이 발생한다. 염력으로 숫가락을 부러지게 하거나 손바닥의 벼씨에 싹을 틔우는 것 정도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 성인들은 정신은 늘 성신(聖神)과 통일되어 있다. 그래서 성인들은 신의 능력, 즉 신통력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의든 아니든 타인에게 저주 섞인 악담을 퍼붓는 수가 종종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등등 저주 섞인 악담을 퍼븟는 수가 있다. 물론 저주의 악담이 나오기까지 원인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심코 퍼붓는 저주의 악담이 자신도 모르게 정신통일이 된 상태에서 이뤄졌을 때 놀라웁게도 저주는 현실화 되어버린다. 예컨대 공부를 잘 못하는 아들에게 화가 난 엄마가 아들을 꾸짖으며 집에서 나가 죽어 돌아오지 말라, 고 퍼부었다. 가뜩이나 부모의 기대에 못미쳐 괴로운 심정의 아들의 머리에 대고 퍼부운 저주의 악담은 아들의 머리에 프로그램화 되고 말았다. 아들이 울며 집을 나간 그 날 오후, 현실화 되어버렸다. 엄마는 경찰서로부터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저주의 악담대로 아들은 죽어 집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고의든 아니든 퍼부운 저주의 악담이 현실화 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리 화가 머리털 끝까지 화가 치솟는다해도 저주의 악담은 퍼붓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마음을 비우고 서로를 축복하는 마음과 언어를 가져야 한다. 가족, 이웃, 세상에 축복하는 마음을 베플어야 복을 받는다.
나는 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분들에게 저주를 깨뜨리는 수행방법을 제시한다. 수행방법은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저녘에 심신을 정제하고 반야심경을 봉독하기를 권장한다. 반야심경은 팔만대장경의 압축된 핵심의 경전이다. 반야심경안에는 우주를 움직이는 대신력(大神力), 대법력(大法力)이 담겨있다. 반야심경을 수지독송하는 자에게는 이 세상 어떠한 저주가 닥친다 해도 부처님의 위신력이 반드시 저주를 깨뜨려주고, 가호하며 축복을 주실 것이다.
자, 이제부터 나는 원한의 저주로 인해 미친 젊은 여교수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하기로 한다. 1980년대 중반, 늦가을 어느 날, 월출산 무위사 주지로 재직할 때였다.
그 날 오전, 시골의 칠순이 가까워 오는 듯한 주름진 노보살이 산사를 찾아왔다. 나는 그녀를 내방으로 안내하였고, 불교식으로 서로 합장하여 정중히 맞절을 하였다. 나는 이어서 따뜻한 작설차를 대접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차를 마시려들지를 않고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주지스님을 찾아온 것은 간청이 있어서 찾아왔네요.”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어느 때고 제가 도울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차를 드시면서 천천히 말씀하시지요.” 노보살은 찻잔에 손을 대지 않고 연이어 훌쩍 거릴 뿐이었다. 나는 노보살이 딱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따뜻이 위로하는 마음에서 말했다. “괴로운 일이 있으신지요?” “제 막내딸이 중병이 들어서요.”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나요?” “병원에서 장기간 임원하여 치료도 받았지요. 이제 병원에서는 치료해도 안된다고 해서 퇴원하여 집에 있지요.” 나는 병원에서 치료를 할 수 없다는 말에 죽음을 선고받은 말기 암 같은 정도의 중병이라고 추측했다. 위로의 말을 꺼내려는데, 노보살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정색을 하여 나직히 이상한 질문을 해왔다. “죽은 귀신이 장난을 쳐서 멀쩡한 사람이 미칠 수 있나요?” “무슨 말씀입니까? 뜻밖의 질문이기에 나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노보살을 응시했다. "제 딸의 병은 그 귀신 때문에 생긴 것 같아서요.” “그 귀신이라면, 아는 사람의 귀신인가요?” 노보살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는 노보살에게 말했다. “제자신이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불가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귀신의 저주가 때로는 멀쩡한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며, 미치게 하거나 각종 불행한 사고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노보살은 깜짝 놀라 경악의 표정을 짓고 나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 귀신 때문인지, 멀쩡한 막내딸이 하루아침에 미쳐버렸답니다.” “따님이 미쳤다고요? 도대체 그 귀신은 누구입니까?” 노보살은 훌쩍이며 말했다. “그 귀신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허지만, 우선, 저희집으로 가서 제 딸 좀 구해주세요, 예?” 무슨 뜻인지 어안이 벙벙한 나에게 노보살은 울면서 간청해왔다. “제발, 저희 집으로 가서 제 막내 딸 좀 살려주세요. 이렇게 사정합니다.” 노보살은 일어나 나에게 큰절을 세 번 하려 들었다. 나는 황급히 노보살님을 만류하며 말했다. “노보살님의 간청이니 저는 따라 나서겠습니다. 그러나, 따님을 미치게 한 귀신을 내쫓는데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노보살의 딱한 사정에 못이겨 목탁과 함께 금강경을 걸망에 담아 어깨에 메고 노보살을 따라 나섰다. 나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지극지성으로 환자를 위해 금강경을 읽어주자고 생각했다.
노보살은 무위사에서 멀리 떨어진 화산(花山)밑 마을에 살고 있었다. 화산은 산이 높고, 기암괴석이 많고 그 바위 틈에 진달래꽃을 위시하여 산유화가 흐드러지게 피운다고 해서 꽃산, 즉 화산이라고 불리웠다. 노보살의 뒤를 따라 터벅터벅 걸으면서 나는 화산을 보니 산이 온통 불타오르듯 단풍이 아름다웠다.
시골에서 잘 먹지 못하고 힘든 일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마음고생이 많아서인지, 노보살은 나이에 비해 허리가 굽은 듯 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힘들어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노보살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었다. 노보살의 뒤를 묵묵히 고개숙이고 걷는 나에게 노보살이 돌아서 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팔자가 안좋은 인생이랍니다. 나이 설흔에 상부를 하고 혼자서 남매를 키웠지요.” 나는 서서 슬픈 표정으로 위로했다. “너무 일찍이 바깥어른이 일찍 세상을 버리셨군요.” 노보살은 손으로 코를 팽 풀어 제치며 야속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술하고 전생에 무슨 원수를 맺었는지, 술을 지독히 마셔 대고, 인물 반반한 술집 작부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더니…. 만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어 혹한의 눈속에 쓰러졌지요. 그런 신랑을 만난것도 전생의 제 업보이겠지요?” 노보살은 동의를 구하듯 나를 슬프게 건네 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씩 웃어 보였다. 노보살은 천천히 걸으면서 내게 다시 말했다. “별재산도 없는 집안이라서 저는 여자지만 자식을 위해서 소처럼 일을 했지요. 일하면서 저는 오직 내배 아파 낳은 남매가 잘되는 것을 보려는 희망으로 살아왔지요.” “….” “아들은 애비를 닮아 허우대도 크고, 인물이 잘생겼는데 부전자전인지 일찍이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 하더니 학문하고는 일찍부터 담쌓고 사는 인생이랍니다.” “….” “아들은 나를 실망시켰지만, 막내 딸 강미숙이는 어릴 때부터 오빠 하고는 천양지차를 보였어요. 어릴 때부터 친구도 사귀지 않고 오직 책과 벗하여 사방에 인물좋고, 공부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답니다. 미숙이는 어릴 때 꿈이 유명한 대학교수가 되겠다고 했지요. 싹수가 보이는 아이였어요.”
미숙의 어머니인 김보살은 공부 잘하는 딸의 진학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물론이요, 밤이 깊도록 돈이 되는 일이라면 심신을 바쳐 일을 해서 미숙의 진학을 도왔다. 미숙이 국립대학에 진학할 그 무렵, 미숙의 오빠인 강준구는 결혼을 했다. 그의 아내는 시골처녀인 오금숙이었다.
오금숙은 시집을 온 후로 무엇보다 온식구가 소처럼 일해서 미숙의 학비에 전부다시피 쏟아 붓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노골적으로 준구에게 대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댁은 부잣집이 아니에요. 없는 형편에 우리가 노동을 해서 시누이 학비를 계속 지원할 수는 없어요. 우리도 부지런히 일하여 저축해야 아이들이 생기면 학교를 보낼 수 있지 않아요?” 금숙은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이에요. 우리 온 식구가 소처럼 일해서 시누이를 공부를 시켜도 시집가면 그만이예요. 시집가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나요?” 시어머니는 시누이에게 곱지 않은 감정이 있는 며느리를 달래기 일쑤였다. 미숙이는 올케의 노골적인 반감을 받으면서 어렵게 학비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때는, 학비를 받으려 온 시누이에게 올케인 금숙은 노골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여자는 많이 배우든 적게 배우든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인생이 달라지는 것 뿐이야. 없는 살림, 제발, 우리 고생시키지 말고, 좋은데 시집이나 가요!” 언쟁이 붙는 일이 늘어갔다. 어느 날은 올케가 시누이게 욕설이 퍼부어졌다. “야, 내가 왜 너에게 죽도록 일해서 학비를 대주어야 하냐? 염치도 없는 년아, 당장 시집이나 가란말야!” 금숙에게 아이가 태어나자 금숙은 단 한푼도 줄 수 없다고 욕설을 퍼붓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미숙은 어렵게 대학을 나왔지만, 공부를 잘해서 곧바로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노보살은 버릇처럼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미숙이는 고등학교 교사로 만족할 아이가 아니였지요. 혼처가 많이 나왔지만, 교수가 되기 전에는 죽어도 시집을 아니간다고 고집을 피우더군요. 자신은 공부를 더 해야 하기 때문에 남자친구를 사귈 틈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미숙은 부지런히 공부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마침내 지방대학의 전임강사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미숙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 때, 늙은 어머니는 혼기가 지나친 것을 안타까워했다. 미숙은 선물을 가득 들고서 시골집에 내려와 어머니에게 선물을 드리고, 효도를 다짐하고, 오빠와 올케에게도 푸짐한 선물을 주면서 보은하겠다고 약속했다. 금숙은 선물을 받아들고 기뻐하며 시누이가 교수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동네방네 다니면서 시누이가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자랑을 하고 다녀도 괞찮지?”
김보살과 미숙이와 준구, 금숙이와 어린 아이까지 화기애애하게 웃음 꽃을 활짝 피울 때, 미숙에게 몹쓸 정업의 그림자가 찾아오고 있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정업의 발단은 오빠가 바람이 난 것이다. 지독히도 술을 좋아하더니 술집 여자와 함께 살기로 약조를 해버린 것이다. 어느 날, 대학의 미숙앞에 시골의 올케가 황급히 나타났다. 올케는 안색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강의 준비를 하고 있는 미숙에게 올케는 분을 못이겨 씩씩 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바람이 났어요. 다른 여자와 살겠다고 나에게 이혼을 해달라고 거요. 오빠는 시누이말을 들으니, 오빠의 잘못을 바로잡아 줘요. 어서 시골집으로 갑시다.” 강의노트를 준비하며 미숙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곧 시골집에 가겠어요. 오늘은 강의 때문에 못가겠어요. 죄송해요. 언니, 어서 집으로 가세요.” 강의실로 향하는 미숙의 등 뒤에 대고 금숙은 욕설을 퍼부었다. “네 년도 네 오빠와 한통속이냐? 나를 쫓아내려고 해? 강의 핑계대고 나를 도와주지 않는 속셈 내가 모를 줄 알구? 어디 두고보자! 나도 생각이 있어!” 미숙은 그 후, 한 달간 시골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동생으로서 오빠의 부부싸움에 끼어들기 싫어서였다. 어머니가 잘 해결해주시리라 믿었다.
미숙에게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오후 2시 반, 연구실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데, 연구실 문을 박차고 올케가 뛰어들어왔다. 놀라는 미숙에게 올케는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썅년아, 나 오늘 네 년 오빠와 이혼을 했다. 이혼을 안해주면 매일 매타작이니 매맞고 죽을 수는 없어서 이혼장에 도장을 찍었다, 이년아. 내가 시집와서 소처럼 일해서 네 년 학비 대준 것 다 잊었지? 나쁜 년, 네년이 오빠를 설득했으면 내운명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쁜년!” “언니, 무슨 말씀인지 잘모르겠네요. 그리고, 여기는 교육장이에요. 욕설을 하셔서는 안됩니다.” “오냐, 잘났다, 이년아. 네 년 오빠는 나를 망치고 버리고, 네 년은 내 등골을 빼먹고는 설교만 하려들어? 네 이년, 내가 죽으면 너는 잘될 것 같으냐? 배은망덕한 네 이년!” “언니, 제발 참으세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연구실 바깥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당황해 하는 미숙을 향해 올케는 욕설을 퍼붓고 덤벼들어 미숙의 머리채를 잡아 사정없이 흔들며 미친 듯이 저주했다. “네 이년, 나는 이제 죽을 거야. 네 년은 네 집의 희망인데, 네 년도 나와 같이 죽어야 돼! 아니, 비참하게 죽어야 돼! 내가 귀신이 되어서도 네 년을 죽일 거야!” 사람들이 말릴 틈이 없이 순식간에 올케는 시누이의 머리채를 잡아 힘껏 흔들더니 있는 힘을 다해 시누이의 머리통을 벽에다 부딪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저항하지 않은 미숙은 올케에게 머리채를 잡혀 머리통을 벽에 부딪히고 의식을 잃어버렸다. 올케는 쓰러진 시누이에게 발길질까지 하고는 쏜살같이 미친 듯이 달아났다. 금숙은 배반한 남편에 대한 복수로 그 집안의 희망인 미숙에게 패악을 자행하고 시골로 달아나 집에 도착하여 곧바로 농약을 마시고 온집안 식구를 저주하며 죽어갔다.
노보살은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못난 아들 때문에, 며느리는 한을 품고 죽고, 딸은 병원에 실려갔는데, 며느리가 죽은 시간 쯤에 딸이 의식을 차리는 듯 싶더니 갑자기 병실이 떠나가라 호호호호 홍소를 터뜨리기 시작하더랍니다. 의사의 말인즉 머리를 벽에 마구 부딪힐 때 뇌를 다쳤대요.” 나는 미숙이 미쳐서 홍소를 터뜨리는 광경을 상상해보았다. 병상의 침대에 누워있던 여교수가 갑자기 일어나 호호호호….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어려운 환경에서 애써 공부하여 꿈을 이룩하는 즈음에 청천벽력의 불행을 당한 것이었다. 나는 비로서 노보살의 딸을 미치게 한 그 귀신은 며느리의 귀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노보살의 집에 도착했다.. 넓은 정원에 건물은 본채와 조금 작은 별채가 있고 화장실이 딸린 제법 큰 곳간이 있었다. 집 뒤에는 울창한 대밭이 있었고, 집 주위에는 해묵은 감나무가 대여섯 구루가 잇는데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노보살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며느리를 죽이고, 여동생을 미치게 한 아들 녀석은 동네사람 보기가 창피한지 다른 여자와 함께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소식조차 없지요.” 고등학교에 다니든 손자 하나는 어머니가 농약으로 죽자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을 뛰쳐 나가 그역시 소식이 두절되어 버렸다고 했다.
노보살은 나를 별채로 데려가더니 굳게 닫힌 방문 앞에 서서 큰소리로 방안을 향해 말했다. “아가, 자냐? 에미가 왔다.” 방안은 인기척이 없었다. 노보살은 보다 큰소리로 말했다. “아가, 에미가 무위사 주지스님을 모시고 왔어. 어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라.” 이번에도 인기척이 없자 노보살이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혼자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시 후 노보살이 방문을 열고 나를 불러들였다. 방안에 들어서니 방에는 온통 책더미였다. 족히 수천권은 되어 보이는 책더미 속의 공간, 아랫묵 쪽에 하얀 한복을 입은 30대 후반의 산발한 여자가 정좌하여 앉아 있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야위었지만, 계란형의 얼굴, 오똑한 코, 크고 지적인 눈, 입은 작고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의 방안에는 때묻은 이부자리, 먼지가 가득한 방, 그녀조차 세면를 하지 않아서인지 어두워 보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나를 쏘아보았다. 노보살은 딸에게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스님께 인사를 해야지. 그렇게 쏘아봐서는 안된다. 너를 위해 어렵게 모셔온 무위사 주지스님이시다. 어서 인사 해.” 그러나, 미숙은 여젼히 무표정하게 나의 눈을 쏘아볼 뿐이었다.
노보살은 내 옆자리에 쪼구리고 앉아 무표정한 딸을 달래고 한켠으로는 나에게 딸을 치료할 주문을 해왔다. “스님들은 신통력이 있다는데, 신통력으로써 내 딸의 병을 치료할 수 없을까요? 병원에서는 손을 들었으니까요.” 노보살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속타는 심정이었다. 하는 하릴없이 걸망에서 목탁과 금강경을 끄집어 내어 미숙 앞에 펼쳐 놓았다. 나는 뾰족한 신통력이 없으니 귀신붙은 미숙을 위해, 지성을 다해 목탁을 울리어 금강경을 낭송할 생각이었다. 노보살은 앉은 채 나에게 합장하여 감사의 목례를 세 번 했다. 나는 목탁을 들어 막 치려는데, 돌연 무표정한 미숙이 오른 손을 번쩍 들어 제지하며 소리쳤다. “잠깐요!” 나와 노보살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미숙을 건네 보았다. 무표정한 미숙이 픽 웃고 말했다. “스님, 내가 사이코 같아요?” 나는 들었든 목탁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물끄러미 미숙을 건네볼 뿐이었다. 노보살이 역정이 나서 말했다. “아가, 스님이 경을 읽어 네게 붙은 귀신을 내쫓으려고 하는 것이야. 입다물고 가만이 있지 않고 왜 그러냐. 응?” 미숙은 슬픈 미소를 짓고 흘낏 어머니를 보는 듯 하더니 다시 나에게 말했다. “내가 사이코 같아요? 올케 귀신이 들린 것 같아요? 네? 어서, 말해봐요?”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멀쩡하구먼) 미숙은 다시 말했다. “저, 미치지 않았어요. 귀신도 붙지 않았구요. 아셨어요? 그러니 애써 염불독경 할 필요가 없지요. 안그래요?”
나는 미숙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노보살에게 동의를 구하듯 건네 보았다. 노보살은 순간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 흔들어 보였다. 노보살은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정신이 왔다 갔다 하지요.”
돌연 미숙이 정색을 하고 어머니를 쏘아보더니 따지듯이 말했다. “어머니, 왜 처음보는 스님에게 제 흉을 보세요. 그러시면 안되지요.” “오냐, 오냐, 내딸아, 정신을 차리니 에미가 좋아 죽겠구나.”, 미숙이 나를 향해 쏘아보며 말했다. “스님이나, 목사, 신부 가운데는 오직 남을 위해 헌신봉사 하는 측과 사깃꾼같이 종교를 빙자하여 돈벌이에 혈안이 된 측도 있다는데, 스님은 솔직히 어느 쪽이에요? 사깃꾼 아니예요?” 노보살이 펄쩍 뛰어 호통을 쳤다. “너 잘나가다 왜 그러냐?” 미숙은 어서 답변을 하라는 듯이 응시하듯 무섭게 쏘아 보았다.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사깃꾼은 못되고…. 도적놈이요. 부처님처럼 성불도 못한 채 시주밥만 축내었으니 도적놈이지요.” “도적놈? 호호호호…. 괞찮은 스님이네요. 그걸 깨달았으니.” 미숙은 처음으로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노보살은 머리를 가로 흔들며 방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엇다. 그 때였다. 미소를 보이든 그녀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엇이 좋은지 홍소를 터뜨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구, 다시 정신이 나갔구만. 에이구….”노보살은 다시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훌적이기 시작했다. 멀쩡해 보이든 미숙이는 혼백이 빠진 듯 다른 여자가 되어 춤을 추어대며 허공을 향해 예쁘게 웃으며, 이렇게 반복하여 외치는 것이었다. “어머니, 스님, 심청이가 농약을 먹고 우물속에 빠져 죽었어요. 심청이가….”
덩실덩실 춤을 추든 미숙은 지친 듯 자리에 쓰러져 벌렁 누워버렸다. 눈은 천장을 응시하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그때 훌쩍이는 노보살이 나에게 간청하듯 말했다. “제가 솔직히 고백하겠어요. 오늘 스님을 모신 뜻은 첫째 딸의 병을 낫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제딸을 스님에게 맡겼으면 해서이지요.” “예? 무슨 뜻인지요?” “저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저도 병이 깊답니다. 어미가 살아 있다면, 미친 딸을 끝까지 보호해줄 수 있지만, 제가 죽고나면, 누가 저 딸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 “많이 배웠지만, 실성한 탓으로 딸을 필요로 하는 남자가 있다면, 줘 버리고 싶지만, 무지막지한 자를 만나면 미친년이라고 걸핏하면 복날 개패듯 할 것을 생각하면, 그리할 수도 없구….” “….” “이 에미 죽고나면, 실성한 우리 딸은 뉘라서 돌보아 주겠어요?” 누워서 입을 앙다물고 천정을 응시하고 있던 미숙의 두 눈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노보살은 이어서 말했다. “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도원에 딸을 맡겼더니 딸에게 쇠사슬이 달린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배를 굶기고 몽둥이질을 해서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딸을 데려오기도 했답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길게 한숨을 내쉬며 버릇처럼‘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를 뿐이었다. 노보살은 눈물젖은 눈으로 나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스님, 부처님께 죄받을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스님이 제 딸을 거두워 주시지 않겠어요? 스님은 제 딸에게 매질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종을 삼든지 마누라를 삼든지 제 딸을 보호해주셨으면 내세에 꼭 보은하겠어요.” 노보살은 말을 마치자 방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상황에 나는 난감해 있었다. 그 때 미숙이 일어나 슬피 우는 어머니를 껴안았다. 그녀는 뼈만 남은 어머니의 어깨를 안고서 소리쳐 울면서 말했다. “어머니, 제가 죽겠어요, 어머니. 제발 울지 마세요.” 아아, 이 중생들은 전생에 어떤 정업이 있어서 이렇게 비통한 인생을 사는 것일까, 나는 염주를 헤아리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을 막연히 부를 뿐이었다.
이윽고 나는 두 모녀에게 사죄하는 마음이 되어 말했다. “고해중생의 피난처가 되어야 할 사찰이어야 옳겠지요. 하지만, 개인절이 아닌 공찰(公刹)에서는 실성한 여자를 둘 수가 없고, 비구승이 아내를 맞아 살 수가 없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노보살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가 없군요. 두 분의 정업을 애통해 하며, 부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내가 그 집을 떠나올 때, 미숙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슬픈 미소를 보이며, 오른 손을 불쑥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내손을 굳게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내 몸에 전달되었다. 미숙은 슬프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의 손을 잡아본 것은 처음이예요. 착한 스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내세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떠나올 때 미숙은 방문 밖에 서서 마치 아쉬운 전별이라도 하듯이 나를 바라보며 슬픈 미소속에 울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해 겨울 눈이 폭설로 내리는 날, 나는 본사인 대흥사에서 무위사 주지직을 해임 당했다. 나는 눈발속에 걸망을 메고 무위사를 떠나야 했다. 그 후, 나는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은거하여 공부를 하기 위해 산설고 물설은 강원도 횡성의 어느 골짜기로 들어갔다.
2년 후, 여름 어느 날, 나는 미숙의 집을 방문했다. 나는 지금쯤 병이 차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그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집은 인기척이 사라진 귀기가 어리는 집이 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잡초가 우거졌고, 잡초 속에 두꺼비들이 떼지어 나타나 엉금엉금 돌아다니고, 처마 밑에는 능구렁이 우는 소리가 음침하게 들려왔다. 소리쳐 주인을 불렀지만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미숙이 있는 별채를 찾으니 별채는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었고, 그 위에는 잡초가 무성해 있었다. 나는 잿더미가 된 별채의 터에 서서 합장하여 불호를 외었다.
지나는 마을의 노파는 말해주었다. “2년 전 겨울, 실성한 그 집 딸이 있는 별채에 불이 났어라우..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든 그 집 딸은 수천권의 책더미속에 춤을 추면서 죽었지라우.” 나는 애통한 마음에서 물었다. “노보살님은 어찌 되셨나요?” “소문을 듣고 아들이 모셔갔다우.” 나는 혼자서 별채의 잿더미 앞에 서서 비통한 심정으로 생각했다. 왜 별채에 불이 일어났을까? 방화일까, 실화일까? 늙고 병든 어머니의 부담을 들어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갔을까? 아니면, 삶에 희망이 없어서는 아닐까?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절망감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는 않았을까? 그에게 희망이 있다면 무엇이고, 절망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은 어두워왔고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슬비가 나의 승복을 적시는 가운데, 환상이 보였다. 미숙과 작별할 때의 모습이 선연이 떠올랐다. 그녀가 내손을 잡고 분명히 이렇게 말했었다.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의 손을 잡아본 것은 처음이예요. 착한 스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내세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나와 작별할 때, 그녀가 방문 밖에 나와서 울면서 춤을 춘 것이 상기되었다. 그녀의 희망은 어쩌면 자신이 나를 따라 산사에 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절망은 자신을 산사로 인도해주지 못한다고 선언하는 스님이 아니었을까? 실성하여 천지에 의지할 데 없는 신세를 슬퍼하며 스스로 책더미에 불을 붙이지 않았을까. 나의 눈 앞에는 수천권의 책이 불붙어 활활 타오르는 불속에 덩실덩실 춤추면서 저승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이 환영으로 비쳐졌다.
나는 거세지는 부슬비를 맞으며, 어두워가는 빈 집의 잿더미 앞에 허무러지듯 주저앉아 자책하여 마지 않았다. “아아, 나는 진정한 불제자가 아니다. 불쌍한 그녀를 왜 용기있게 구해주지 못하였든가!” 주위의 지탄을 무릅쓰고라도 미숙을 산사로 데려갔더라면, 불속에 죽어가지 않았을 것이었다. 산사의 채소밭을 가꾸면서라도 살 수 있을 것이었다. 알량한 비구승 체면을 유지하려고 그녀를 인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자책하여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불쌍한 영혼인 미숙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데, 눈앞에 한 여인이 산발한 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앙칼지게 외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나는 억울하게 농약을 먹고 죽어야 했어! 저주의 업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절대 안 끝났어! 나를 망치고, 버린 놈도 죽어야 해!” 오금숙의 영가는 천도가 어려운 원한에 사무쳐 있었다.
저주는 상호저주로 인해 인과의 수레바퀴처럼 끝없이 윤회한다. 저주의 업보는 또다른 업보를 만들어 간다. 저주의 수레바퀴를 중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해원상생(解寃相生)이요, 자비무적(慈悲無敵)의 불심밖에는 있을 수 없다.죽은 자나 산 자도 역부여시다.
나는 그날, 미숙을 산사에 인도하지 못한 허물을 통회하고 자책하며 밤새워 비속에서 그녀의 왕생극락을 위해 '나무아미타불' 불호를 간절하게 부르며 천도의 기도를 했다. 아아, 이 세상에는 인간으로 태어나 양심을 지키고 열심히 살았지만, 소망을 이루고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정업에서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가는것이 대다수 인생이지 않은가.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고, 머리를 돌리고, 얼굴을 들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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