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삶, 행복 마일리지
재미없는 글, 이어 쓰기 안하려했더니 또 꺼리가 생겼다. 어젯밤 알고지내는 교회 권사님의 SOS, 비닐하우스 작업이다.
비닐하우스, 중년에 직장 다닐때 동료들과 삼국지 유비를 흉내낸다며 비닐하우스를 빌려 '도화원'이란 이름짓고, 작물가꾸며 즐기다 마누라들 몰래 몇백씩 주머니 털어먹은 전과(?)가 있다.
그때 하우스안 한여름 온도가 40도를 넘었으니, 가슴과 등줄기 땀흘려 일한뒤, 막걸리 한잔 마시니 힘이 솟아 우리가 관우나 장비가 된듯 싶었더라.
오늘 일하는 하우스내 작업은 토마토 줄기가 위로 뻗게 줄을 매달아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쪼그려 앉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토마토가 잘자라 꽃도 피고 벌써 탐스런 열매도 맺었다.
주인장께 시중의 토마토 가격이 비싼데 농가 수입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헉! 그러면 이 하우스 한동만 해도 도대체 얼마치야? 시중의 과일 가격을 보니 2~3년새 두배는 오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것도 오래 못갈 것이다. 비싸면 덜사먹고, 국내산 가격이 오르는건 일시적이고, 시간 지나면 값싼 외국산 다른 과일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지않고 두시간 가까이 일하다보니 어느듯 새참시간, 내 취향을 알기에 주인장은 자신은 못마셔도 막걸리 한통은 빼놓지 않으셨다.
농촌일에 막걸리는 풍만함이다. 소도 영양가만 채운다고 링겔 맞고는 힘을 쓰지 못한다. 그저 여물이 차더래도 배가 빵빵해야 부리는 주인이 덜 안스럽다.
내가 하는 일은 당연히 봉사의 성격이다. 시간을 채우면 서로가 임금에 대한 개념이 생겨나니 하루에 대여섯 시간쯤...나의 멘토 김삿갓님처럼, '술한잔에 시한수' 아닌 한나절 일로 끝내는 것이다.
맡은 분량이 남은 주인장께 '쪼그려 하는 일은 못하겠고, 수월한 일은 부담 가지지말고 전화를 하라'고 말하고 그곳을 떠나들판을 걸었다.
사실 내가 하고싶은건 좋은 말로 포장해서 측은지심,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다. 주인장이 나보다 잘사는지 못사는지 한번도 따져보진 않았다.
그런데 막상 노력봉사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건 할꺼리가 거의 없다. 폐휴지 리어카 밀어드리는 일이나 있을려나? 그들은 사업장이나 농토가 없기 때문이다. 가능한 것은 현금, 현물을 제공하는 것뿐...
농장을 나와 길을 걷다가 드론을 작동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하얀 통들이 부착된걸 보니 농업용 같았다. 다가서는 나게게 그들은 수요자인줄로 대했고 나는 그저 본심 숨기고 궁금한 것만 물었다.
지나다보니 다른 곳과 거꾸로 밭은 논으로 만든 곳이 있있다. 밭일은 힘드니 수익은 낮아도 돈만주면 기계화가 가능한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란다.
햇살이 길걷는 목을 따갑게 비춘다. 태워주신다고 했는데...그래도 아직은 내발로 움직인다는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여분의 삶, 남은 여생 뭔가 보람있는 일은 하다 갈순 없을까?
내가 신께 부여받은 사명을 알수 없으니 더욱 방황하는 것 같다. 우스개 소리로, 감히 논할 자격도 못갖춘 주제에 사후세계를 생각할때면 기독교보다는 불교쪽이 더 슆게 느껴졌다.
기독교는 평소에 쌓아온 선과 악의 마일리지에 의하여 자동으로 삼판되어 가야할 곳이 정해지는데 비하면, 불교쪽은 기소(사망)가 되면 49재의 과정에서 7번의 심판을 거치며 반성과 항변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그냥 쓰는 글이니 사실 관계에 개념치 마시길...)
세상일 옳고 그름의 명확한 구분은 없다. 다만 정직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 삶에서 더 중요하다.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알면서 당하는 것이 더 억울해 하는게 사람의 심리다.
글을 마감하려니 옛 친구의 전화가 왔다. 몇차례 계획 끝에 행복의 마일리지를 채워가는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일까지 내가 생존해야할 이유가 생겨난 것이다. 오늘도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