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제결혼하면 장애인이거나 난쟁이,농촌 총각들만 하는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주피터는 3,500여명을 결혼시키면서도 장애인은 불과 3-4명정도였다.나머지는 재혼이 50프로,
초혼이 50프로였다.의사도 많았고.법무사,세무공무원,교수 그리고 경찰공무원도 여러명 있었다.
보통 중소기업의 중간간부급,예를 들먼 대리.과장급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중 생각나는 장애인이 세명 있다.
첫째는 28세의 유 00군으로 청계천 새벽시장에서 전자제품과 기타 잡화를 팔고 있었다.
다리 지체 장애인이었지만 활동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고 성격이 아주 낙천적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형과 아버지가 와서 상담하더니 곧 베트남결혼을 하겠다고 아버지가 계약을 했다.
옆에 따라 왔던 형은 너무 놀라며"아버지는 쉽게 남을 믿지 않은 분인데 어떻게 주피터 고사장을 보고
한시간도 안돼서 1,300백만원을 내고 결혼계약하느냐"고 의아해했다.
그리고 아버니는 "베트남 방문시 고사장이 직접 가야하고 아버지도 동행하겠다고 해서 실비만 내시라"고 했다.
형도 따라 가겠다는 것을 그러면 쓸데 업시 경비만 추가로 내야 되는데 꼭 갈필요가 있느냐고 하자 포기했다.
우리는 베트남 호치민에 가서 몇명의 여성과 맞선후 아주 착하게 생긴 아가씨와 혼인했다.
그런데 신혼여행 다닐 때부터 옆에 계속 따라다니면서 어린애 취급을 하며, 밥 먹는것.음료수 마시는것등 일체를
아버지가 허락해야만 행동하는것이었다.
어떻든 4개월여가 지나서 신부가 입국했고,둘은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듯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신부가 도망갔다고 주피터에서 왜 그런 여성을 중매해주었느나며 항의했다.
나중에 알고보니,신부가 하도 아버지가 간섭해서 별도로 분가해서 살게 해달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거절하자 도망갔다고 했다.그의 형은 수속도중에 또,왜 신부 입국항공료를 받느냐고 따저서
계약서에 있지 않느냐?몇번을 반복해야하느냐하고 말했더니,
"나이먹은 사람이 젊은 사람한테 이렇게 대답을 받아야되느. 가만이 있지 않겠다"더니.그이후 말이 없었다.
다음으로 강원도 원주에 사는 36세의 총각이었고 한쪽 다리를 전달한 장애인이었으나
의족을 해서 걷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그는 컴퓨터 대리점을 하고 있었는데 매사에 긍정적이었다.맞선 보러가기 전부터
여성이 흡족해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장애인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면서 힘닿는데까지
자기가 여성을 도와주겠느라고했다.그는 본인의 성격만큼이나 이해심 넓은 여성과 결혼해서
행복한 혼인생활을 하고있었다
세번째로 부산시사하구에사는 조00씨로 48세였다.그는 양쪽 다리장애인으로 자기 스스로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정도로 심한 중증장애인이었다.비행기 탑승시부터 내가 따라 다녔고
소변통을 메고 다녔다.하얼빈에서 내려서 200여킬로 떨어진 방정시까지도 별도로 승용차를 대절해서 갔는데,
그렇게 심한 장애인이면서도 음식을 절제하지 않고 대변도 어찌하지 못해
하얼빈에있는 이소장의 여직원이 대소변까지 받아내야했했다.그런데도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맞선을 보았다.
자신은 사하구에서 군소정당으로 국회의원도 출마했고 못하는게 없다고 했다.
이런 처지였음에도 며칠을 걸려 재혼여성과 혼인했다.귀국하자 며칠 안돼었는데 주피터 직원이
"부산의 조씨가 주피터 홈페이지를 도용해서 인터넷에 올리면서 결혼사업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전화해서 "조사장! 결혼사업을 하는것은 좋지만 남의 회사홍페이지를 도용하면
벌금내고 처벌 받으니 즉시 내리라"고 하자 곧 내렸다.자신이 장애인이라도 이를 이겨 내려는
자세는 좋지만 남을 배려하지 않는 지나친 자세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심한 중증 장애인임에도 결혼한 재혼여성이 별다른 말썽없이
오래도록 사는 것을 보고 남녀관계란 참 모를 일이구나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