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
두 발로 걸어 하늘 가까이 가는 길에는 그 만한 대가가 따른다. 이른바 고산병이다. 하늘을 향해 5,000m 이상을 오르면 대기압은 평지의 절반으로, 산소는 150mmhg에서 80mmhg으로 감소하면서 고소에 노출된 인체의 혈액산소포화도가 70% 이하로 급감한다. 몸이 무거운 사람이나 고령자일수록 위험에 노출되기 쉽고 갑자기 탈것을 이용하여 고도를 높이거나 조급하게 높은 곳에 오르겠다고 욕심을 내도 고산병의 위험은 가중된다. 그래서 고산등정에서 증세가 심하여 하산을 하는 모습은 흔히 보는 일이다. 산소 부족과 저 체온, 체내 수분 증발로 인한 탈수증이 원인이 되지만 심한 경우에는 고소 뇌부증과 폐부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히말라야트래킹에서도 헬기로 후송되는 모습은 자주 목격되는 일이고 한 달에 한 명 정도가 목숨까지 잃는다고 하니 우습게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고산 증세의 초기 징후는 가벼운 두통으로 시작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처음에는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다가 차멀미처럼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이 난다. 식욕이 없고 무기력해 지면서 졸음이 쏟아져 자꾸 눈이 감긴다. 밤이 되면 어렵게 잠을 청하나 두어 시간 자고 나면 깬다. 다시 잠들 기는 더 힘들어 업치락 뒤치락거리다 날이 새기 일쑤이다. 하루에도 몇 번을 불면과 싸워야 한다. 부족한 산소가 원인이다. 고산의 롯지에서 잠이 오지 않는 고통은 추위와 더불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걱정거리의 하나이다.
해발 약 2,500m 이상을 오르면 누구에게나 머리로 부터 신호가 오고 높이 오를수록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2단계는 코피가 터지거나 구토, 설사가 난다. 심한 두통으로 머리를 들 수가 없고 기침도 난다. 가급적 이 단계에 이르면 등산을 중단하고 저지대로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고집을 부리다간 더 큰 위험에 봉착할 수 있다. 3단계는 호흡곤란으로 인한 심각한 혼수상태로 폐와 뇌에 수종이 생겨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 헬리콥터를 불러 저지대에 있는 병원으로 신속히 이송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렇게 사경을 헤매던 환자가 평지의 병원으로 후송된 후, 반나절 만에 제 발로 걸어 나가는 웃지 못 할 헤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건강의 반전이 고산병이 아닌가 싶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과 이웃한 산의 정상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한다. 히말라야에서만도 해마다 세계 각처에서 모인 만명이 넘는 트래커들이 설산 고봉을 향해 위험한 도전장을 내민다. 고산병의 위험보다 산이 주는 매력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여 성취감을 맛보고픈 인간의 의지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정신, 더 높은 곳을 향한 열망은 개인을 발전시키고 인류를 도약시키는 원동력이다.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사람들 누구도 중도포기나 죽음을 예상하지는 않는다. 지구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잠시나마 세상을 내려다보고 멋진 사진 한 장 찍고 싶다는 일념으로 힘겹게 산을 오른다. 그러나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공기가 적어지는 탓에 정확한 위험의 인지와 순간적 판단능력의 저하가 수반되고 위기에 대처하는 감각이 둔해진다.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무시한 채 ‘나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착각과 오만에 빠지면서 그것이 엄청난 산악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1921년부터 1996년 사이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630명중, 144명이 하산 길에 사망했다. 최고봉을 오르고도 내려오다 네 명 중 한명 가까이가 죽은 것이다. 산은 정상에 오르기도 힘들지만 내려오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 잘못하면 등정후의 오만과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육천 미터 이하의 산들에서는 몇 가지 원칙만 숙지하고 지키면 그렇게 큰 위험에 빠지지는 않는다. 먼저 음식은 술과 담배는 금하고 식사량은 평소보다 약간 줄이는 게 좋다. 가급적 고단백, 고열량의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산행 도중에는 물을 자주 마시고 수분이 많은 과일이나 오이를 먹는 것도 좋다. 롯지에 들려 쉴 때도 현지인이 즐겨 먹는 수유 차나 티벳 차를 마시는 것이 고산증세의 호전에 도움이 된다. 약으로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이뇨제인 다이아목스(아세타롤마이드)를 미리 먹으면 탈산탈수소효소를 억제하고 혈액의 PH농도를 균형 있게 조절하여 효과를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혈류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비아그라(실데라필), 진통제인 아스피린을 먹기도 하나 확실하게 도움을 주는지의 여부는 내가 해 보지 않아 알 길이 없다. 내 소견으론 약물에 의존하는 소극적인 방법보다 고산에서는 천천히 걸으며 서서히 고도를 올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서두르지 않고 하루에 500m 이하 정도로 고도를 높이고 한나절 걷고 한나절 쉰다는 생각으로 오르면 큰 문제는 없다. 힘들면 하루 더 묵었다 가면 되고 매사를 천천히! 천천히! 하는 자세로 마음에 여유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괜찮아요?”
앞서 가는 메인 가이드 실바노가 연실 일행을 돌아보며 건네는 유일한 한국말이다. 선두에서 아주 천천히 일행을 인도하며 걷는 그의 눈매는 탄자니아맨 답지 않게 날카롭다. 이미 18번이나 정상에 오른 사람답게 5,895m 킬리만자로 우흐르 피크까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올리겠다는 결기가 서린 눈매다. 4,700m에 위치한 마지막 키보산장에서 출발한지 30분 만에 경사각이 오,육십 도는 됨직한 칼라파타르의 벼랑에 달라붙었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급경사 구간이 계속된다. 밟히는 것은 화산탄과 재, 그리고 가끔 굴러 내리는 자갈뿐이고 보이는 것은 어둠속을 지키는 커다란 바위와 암흑을 조롱하는 허공뿐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가 없다. 그야말로 삭막강산이다. 그것도 한밤중, 12시에 출발하여 해드랜턴으로 간신히 길을 밝히고 앞 사람만 따라 아주 천천히 걷는다. 참으로 재미없고 멋없고 황량한 썰렁한 산행이다. 여기가 아마추어 산 꾼이 갈 수 있는 세계의 최고봉, 아프리카의 젖꼭지, 킬리만자로의 정상 우흐르 피크를 향한 고행의 현장이다.
밤은 깊어 2시가 넘었다. 잠간 쉬는 동안에 가장 고령인 나에게 실바노가 안부를 물어 재차 확인한다.
“괜찮아요?”
“아임 오케이! 노, 프로브럼!”
하고 일부러 크게 소리친다. 메인 가이드가 상태를 보고 하산을 명하면 포터와 같이 산을 내려가야 한다. 고생고생해서 이 먼 곳까지 왔는데 하산을 하라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벌써 파김치가 다 되었다. 뒤 따르던 일본의 젊은 청년도 길가에 널 부러져 초죽음이 되었다. 창백해진 얼굴을 가랑이 사이에 묻고 고개를 들 줄 모른다. 그러니 나이가 칠십이 넘은 나야 오죽 했겠는가?
잠간 서서 쉬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고산에서는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천천히”가 불문율이고 엄수해야할 최상의 규율이다.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이나 킬리만자로가 있는 탄자니아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한국말이 ‘천천히’이다. 웬만한 가이드나 포터도 그 말만은 안다. ‘천천히’가 입에 붙었다.
그러나 아무리 천천히 걸으며 심호흡을 해도 흉부를 압박하는 고통과 어지럼증, 비염으로 인한 콧물과 재채기, 가슴의 답답함은 어쩔 수가 없다. 대략5,200m쯤 올라 왔을 때 두통이 심해지고 컨디션이 저울질을 하며 불안감이 엄습한다. 체력의 고갈보다 전반적인 신체 리듬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한계 상황이 연상되고 걱정이 밀려온다. 어지럽고 메스껍고 눈이 감긴다. 졸음이 오면서 다리도 풀린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신체적 딜래머가 전신을 타고 들며 가슴을 조여 온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천금처럼 무겁다.
포터인 윌리암이 물 한잔을 권한다. 한 모금 받아 마시니 정신이 조금 든다. 다시 힘든 걸음을 떼어 놓는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급경사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고도 5,550m였던 히말라야의 칼라파타르에서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었다. 생전 겪어 보지 못한 일이다. 차라리 주저앉고 싶다. 한스 마이어 동굴이 시커먼 괴물의 모습으로 나를 삼켜버릴 듯 입을 벌리고 서 있다.
동굴 앞에서 10여 분을 쉰다. 이곳에서 길만스 포인트까지는 더욱 심한 급경사 지역이란다. 일행은 벌써 앞서 지나갔다. 20여 분을 올라왔을까? 갑자기 설사가 터진다. 누가 보건 말건 너무 급하여 길에서 약간 떨어진 화산너덜지대를 발로 밀고 터를 잡아 일을 본다. 항문을 열고 토해내니 속은 편해 졌으나 어지럼증이 심해 일어설 수가 없다. 머리가 빙빙 돌고 앞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육신이 퍼져 허우적댄다. 정신이 아늑해지면서 자꾸 몽롱해진다. 그 와중에도 고산에서 외부로 액체가 터지는 것은 심한 고산병의 단서라고 주워 들은 얘기가 머릿속을 맴돈다. 빨리 하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심각한 상태가 도래했음을 직감한다.
괜신히 흙벽을 잡고 일어서 윌리암이 기다리는 길로 올라선다. 불안하게 지켜보던 그가 손을 내 밀어 나를 부축하더니 내 몸을 감싸 안는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버틴다. 어떻게 여기 까지 왔는데 정상을 눈앞에 두고 내려간단 말인가. 허망함이 가슴을 때린다. 윌리암이 어렵게 위로의 말을 꺼낸다.
“아버지! 하산 하시지요? 건강이 걱정이 됩니다. 무리하시면 큰 일 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수락의 의사를 보낸다. 그로부터 30여 분을 윌리암의 어깨에 매달려 끌려오다 시피 내려온다. 얼마를 내려 왔을까? 정신이 들면서 텅 빈 머리가 가슴을 때린다. 눈가를 흘러내리는 진한 눈물방울을 그냥 혀로 핥아 먹는다. 맛이 쓰다. 다시 고개를 드니 고였던 눈물은 눈 속 제 고향을 찾아 자취를 감추었다. 아들 뻘 되는 윌리암도 눈시울이 발개졌다.
고산병의 특효약은 ‘낮은 데로 임하소서!’이다. 고도를 낮춰 내려오면 바로 증세가 호전된다. 윌리암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괜찮아요? ”
“잇츠 오 케이! 두 낫 워리 어바웃 미. 댕큐!”
산장의 나무 침대가 그리 포근할 수가 없다. 윌리암이 끓여다준 따뜻한 탄자니아 홍차를 한 모금 마시니 거칠어졌던 숨결도 잠잠해지고 깊은 잠이 나를 미궁으로 유혹한다. 우흐로 피크는 못 갔어도 몸 상태가 좋아져 일행에게 누가 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고산병의 된 맛을 절감한다.
1966년 5월,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가 일행 중 12명을 잃은 존 크라카우어가 쓴 “희박한 공기 속으로”라는 등정기가 나의 머리를 후빈다.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심각한 위험을 예고하는 징조들을 소홀히 넘기는 경향이 있다. 성공하기 위하여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일 필요는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과하면 죽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8,000m 위에서는 적절한 열정과 무모한 정상 정복열의 경계선이 아주 모호해져 버린다. 그리하여 에베레스트의 산비탈에는 시체들이 즐비하다.”
우리네, 사람의 삶도 비슷한 것이 아닌가. 정상이 가까이 보이면, 눈앞에 성공이 손에 잡힐듯 하면 올바른 판단에서 등을 돌리고 무리수를 둔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고산병의 고통보다 더 엄청난 아픔이 나를 괴롭힐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자. 킬리만자로의 길목에서 고산병이 깨우쳐 준, 산이 내게 준 교훈이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