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Austria
04 발칸여행의 시작, 오스트리아 그라츠
9세기 건설한 도시로 슬라브어로 ‘작은 요새’라는 뜻을 가진 그라츠는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주의 주도이며, 헝가리와 슬로베니아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1240년 무렵 자치권을 얻었고, 중세 시대에는 슈타이어마르크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빈(Wien)에 이어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구시가지는 1999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지멘스(Siemens)나 다임러(Daimler)등 유명한 기업들의 본사와 지사들이 있다.
아직가지는 많은 한국 여행객들에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겨지는 곳 발칸.
나는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동북쪽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써나가고자 한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여행을 시작하는 첫 도시인 그라츠를 들렸을 때다. 오스만 투르크의 방어 기지로 세워졌던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그라츠에서 나는 1미터 65센티미터 정도로 보이는 키에 날신한 몸매, 그리고 둥근 챙 모자를 눌러쓴 모습의 그녀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동양인의 외모였지만 서구적인 느낌을 주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녀를 만난 곳은 그라츠 시내의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들어갔던 카페였는데 좁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구시가지 건물의 정원 같은 인상을 주는 카페여싿. 자리는 기억하기에는 여섯 테이블 정도 되어 보였다. 나는 더블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커피가 나왔고 바로 그때 한 아가씨가 들어왔는데 두리번거리는 것이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자리가 다 차 있는 것을 보더니 이내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앉아도 되느냐는 제스처를 하였고 나는 물론 앉아도 된다 하였다. 그녀도 커피를 시켰다.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어 말을 걸었다. 동양인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영어로 물어보았다.
그녀가 나를 보면서 말하였다.
“한국 분 아니세요?”
“네.” 하고 대답하였지만 쑥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그녀와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이곳부터 시작해서 발칸 지역인 동남부 유럽 여행을 한다고 하였다.
그녀는 이것도 인연인데 이름이나 알자고 하였다. 웃는 모습에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녀는 현재 스페인에 살고 있고 이름은 ‘엘레나’라고 하였다.
“엘레나 씨는 무슨 일로 이곳에 왔어요?”
그녀는 여행 중이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를 지중해로 구분하지만 그리스 또한 발칸이라면서 그리스를 여행하고, 어제 이곳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도착하였다고 얘기했다.
그녀와 커피를 마시고 함께 카페 밖으로 나왔다.
오스트리아의 두 번째 도시이기는 하지만 그라츠의 구시가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우리 둘은 잠시 머뭇거리다 구시가지를 같이 돌아보기로 하였다. 우리가 있던 카페는 슐로스베르크 근처여서 구시가지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래로 내려가야 했으나 나는 그곳에서 강을 따라 내려가며 쿤스트 하우스와 무어 강의 인공 섬을 보자는 심산으로 그녀에게 무어 강 쪽으로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날씨는 무척이나 화창하였고 무어 강의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처음 만난 것은 인공 섬이었는데 검은 빛을 내고 있는 무어 강 위에 현대적인 모습으로 떠있었다.
“혹시 저 인공 섬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세요?”하고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혹시 안양 공동 예술 재단에서 안양 유원지에 만든 주차 시설을 설계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나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공 섬을 만든 사람은 알겠는데….”하면서 나는 말을 흐렸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비토 아콘치라는 뉴욕의 미술가이자 건축가가 인공 섬과 안양 유원지의 주차 시설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계속 이 인공 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인공 섬은 그라츠가 2003년 유럽 문화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건설한 시설중의 하나죠.”
우리는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무어 강변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100미터 남짓 내려갔을 때 커다란 문어 같은 푸른색 현대식 건물이 보였다.
바로 ‘쿤스트 하우스’였다.
“저 건물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해 볼게요. 그냥 들어봐 주실래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나를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강변을 따라 걷다보면 그라츠 시를 관통해서 흐르는 무어 강 양쪽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풍경이 흐릅니다.
강의 동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 등 다양한 건축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이곳은 부유층들이 사는 거주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강 건너편 서쪽은 가난한 동유럽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죠.
이런데서 도시의 불균형이 드러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서쪽 강변에 예술센터인 쿤스트 하우스를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신이 나서 계속 이야기하였다.
“2004년 9월에 영국의 건축가인 피터 쿡과 콜린 파우니어가 설계한 현대식 4층 건물이죠.
이 건물은 처음에는 그라츠 시민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영화관, 재즈 바, 쇼핑센터 등이 들어서고 치안도 좋아지면서 그라츠의 명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 이 건물 쿤스트 하우스는 계층 간의 거리를 조금은 좁혀 준 것이 아닐까 생각 되네요. 꼭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느낌도 있지만요.”
그녀와 나는 강을 따라 걸었다. 중간에 사진도 두어 컷 찍으며 이내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그녀와 걸어간 곳은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린트하우스와 무기고였다.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란트하우스는 슐로스베르크 요새를 지었던 이탈리아의 건축가 도메니코 댈랄리오가 1565년에 지은 르네상스식 건물이고 현재는 슈타이어마르크 주 청사로 사용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슈타이어마르크 주의 주 의회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언덕 위에 있는 슐로스베르크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지요?”
“저기를 한 번 보세요.”하고 나는 손으로 가리켰다.
“저곳의 높이는 해발 475미터 입니다. 그라츠 시내보다는 120미터 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죠. 9세기-16세기에 걸쳐 세워진 곳입니다. 지금은 16세기에 세운 시계탑과 종탑이 있고요.
1839년에는 공원으로 조성되었죠. 그러다가 세 차례나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습니다. 1797년, 1805년, 1809년. 1809년에는 쇤부른 강화조약에 의해 헐리는 수모까지도 당했습니다. 그리고 위에 올라가면 있는 시계탑은 1561년에 만들어졌지요. 시침을 먼저 만들고 분침을 나중에 만들었는데 일반 시계와는 달리 시침이 더 길죠. 이곳은 한때 화재 감시탑으로도 사용되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연인들이 첫 키스를 나누는 장소로 유명하다고 하는군요.”
나는 이렇게 설명을 하였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 듯했다.
그녀가 무기 박물관 정문의 장식된 동상을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있는 이 조각상이 누군지 아세요?”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설명하였다.
“그리스 신화, 멀리까지 왔네요. 전쟁의 신 마르스와 전쟁의 여신이며 지혜, 공예, 작업 등을 주관하는 여신 아테네죠.”
그녀는 “맞아요.”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이 건물은 1642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발칸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오스만 투르크족의 위협이 18세기 초에 사라지자 무기들을 모아서 빈에 비치하고 다른 곳에 있는 무기들은 없애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식을 접한 그라츠 시는 빈 시당국에 이곳의 시민군들이 벌인 전쟁의 생생한 물증인 무기를 보존해 달라고 청원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광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청광장의 분수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광장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신 시청사가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어젯밤에 이곳에 나와 보셨는지요?”
“저는 호텔이 가까워 밤에 잠깐 나왔었어요. 야경이 무척 운치 있더라고요. 쿤스트 하우스의 불 들어온 모습, 고깔모자 모양의 시계탑이 있는 슐로스베르크에서 바라보는 시내 야경도 아름답고 예쁘던데요. 물론 오래 있지는 못했죠.”
그녀는 나를 보며 이야기하였다.
“저도 어젯밤에 나왔는데 시간이 늦어 구시가지 시내만 돌아봤어요. 커피 한 잔 마시고 들어갔습니다.”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하였다.
“비슷한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었네요. 어제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와 나는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던 카페 앞까지 와서 우리는 인사를 한 뒤 헤어졌다.
그녀는 그녀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나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가고 그녀는 쿤스트 하우스 방향으로 갔다.
나는 차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다음 행선지가 어디냐고, 연락처를 물어볼 걸 하는 아쉬움으로 ‘그래 언젠가 인연이 되면 한 번은 마주치겠지’하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모습은 헤어져 주차해 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