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귀엽고 사랑스럽고 평화롭네요.^^ 모두 다 꽃으로 보인다면, 아마도 그 마음이 꽃과 같이 아름와서일 것입니다. 늘 꽃과 같은 마음이라면 이미 꽃과 같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니,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걸 하사도라 하든 말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뜻은 진정 무엇인가? 교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생각납니다. 옛적에 배휴 거사가 황벽스님을 만나 이 벽화의 고승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니, 황벽 스님이 큰 소리로 배휴~! 하고 불렀지요. 배휴가 얼덜결에 예! 하니, 어디있는가? 하자 배휴가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에서 보면, 사실 진리란 것이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고, 교수님이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진리를 못깨달으면 천리가 지척이듯 늘 보면서도 못보고, 깨달으면 계를 달리하여 있어도 보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오신 적도 없고 가신 적도 없다 하시니, 부처님은 어디 계실까요? 이것을 알면 교수님이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지 알을까 합니다. 그러면 날마다 부처님오신날이겠지요 마도로스님, 거친 마음을 녹이는 너무 좋고 아름다운 동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_((()))_
배휴거사와 황벽스님의 만남에 관한 일화가 오늘 부처님오신날 저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진리란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교수님이 멀리 계신 것도 아니며 부처님은 오신 것도 가신 것도 아니다! 배휴거사와 황벽스님은 선문답을 하셨지만 그 깨달음의 결과는 공, 중도불성, 연기 즉 반야입니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선불교'라는 명칭보다 '반야불교'라고 칭하는 것이 이해하기 좋다고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교수님 어디계신지 알 것 같은 날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_((()))_
에구 청정님 바른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수정 바로했습니다. 제가 부처님오신날이라 좀 들떠있었나봅니다. 그리고 교수님 어디계신지 알 것 같다는 제 말은....배휴거사와 황벽스님의 일화를 읽으며 그 분들의 깨달음에 순간적으로 빙의한 듯 한 기분으로 쓴 것입니다. (마치 그분들의 깨달음을 같이 느낀 것 같은 기분) 청정님 말씀 들으니 너무나 경솔한 문구입니다. 결코 청정님께서 알고계시다는 뜻으로 쓴 것도 아니고 제가 알고 있다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그리 느끼실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해명을 했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게시판에 미숙한 점이 있고 마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다른 회원님께도 죄송합니다. 이곳은 교수님의 훌륭한 도량이니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주시면 바로 고쳐나가겠습니다. 꾸벅
이해라니요, 저로 인해 그런 것인데, 제가 감사하지요. 마도로스님, 이곳을 교수님께서 만드신 도량으로 생각하면 정말 그런 곳이 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홈으로 생각하면 또 그런 곳이 될 것입니다. 모두 내 마음이 만든다는 말씀이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나 혼자 산다는 운전자 관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나혼자 산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교수님의 두번째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세상에는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최상인 사람들만 있게 됩니다. 그리고 늘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는 곳마다 도량이 되는 것이지요, 저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요^^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_((()))_
첫댓글 귀엽고 사랑스럽고 평화롭네요.^^
모두 다 꽃으로 보인다면, 아마도 그 마음이 꽃과 같이 아름와서일 것입니다.
늘 꽃과 같은 마음이라면 이미 꽃과 같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니,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걸 하사도라 하든 말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뜻은 진정 무엇인가?
교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생각납니다.
옛적에 배휴 거사가 황벽스님을 만나 이 벽화의 고승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니,
황벽 스님이 큰 소리로 배휴~! 하고 불렀지요.
배휴가 얼덜결에 예! 하니,
어디있는가? 하자
배휴가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에서 보면,
사실 진리란 것이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고, 교수님이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진리를 못깨달으면 천리가 지척이듯 늘 보면서도 못보고,
깨달으면 계를 달리하여 있어도 보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오신 적도 없고 가신 적도 없다 하시니,
부처님은 어디 계실까요?
이것을 알면 교수님이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지 알을까 합니다.
그러면 날마다 부처님오신날이겠지요
마도로스님, 거친 마음을 녹이는 너무 좋고 아름다운 동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_((()))_
배휴거사와 황벽스님의 만남에 관한 일화가 오늘 부처님오신날 저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진리란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교수님이 멀리 계신 것도 아니며 부처님은 오신 것도 가신 것도 아니다!
배휴거사와 황벽스님은 선문답을 하셨지만 그 깨달음의 결과는 공, 중도불성, 연기 즉 반야입니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선불교'라는 명칭보다 '반야불교'라고 칭하는 것이 이해하기 좋다고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교수님 어디계신지 알 것 같은 날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_((()))_
마도로스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쳐주시어 감사합니다.^^
저도 고쳐 썻씁니다,
오해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_((()))_
@청정
에구 청정님 바른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수정 바로했습니다.
제가 부처님오신날이라 좀 들떠있었나봅니다.
그리고 교수님 어디계신지 알 것 같다는 제 말은....배휴거사와 황벽스님의 일화를 읽으며 그 분들의 깨달음에 순간적으로 빙의한 듯 한 기분으로 쓴 것입니다.
(마치 그분들의 깨달음을 같이 느낀 것 같은 기분)
청정님 말씀 들으니 너무나 경솔한 문구입니다.
결코 청정님께서 알고계시다는 뜻으로 쓴 것도 아니고 제가 알고 있다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그리 느끼실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해명을 했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게시판에 미숙한 점이 있고 마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다른 회원님께도 죄송합니다.
이곳은 교수님의 훌륭한 도량이니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주시면 바로 고쳐나가겠습니다.
꾸벅
이해라니요, 저로 인해 그런 것인데, 제가 감사하지요.
마도로스님, 이곳을 교수님께서 만드신 도량으로 생각하면 정말 그런 곳이 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홈으로 생각하면 또 그런 곳이 될 것입니다.
모두 내 마음이 만든다는 말씀이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나 혼자 산다는 운전자 관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나혼자 산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교수님의 두번째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세상에는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최상인 사람들만 있게 됩니다.
그리고 늘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는 곳마다 도량이 되는 것이지요,
저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요^^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_((()))_
@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