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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류(同類)들은 이진삼진(二陣三陣) 이어져서 가섭(迦葉)·아난(阿難)보다도 수승(殊勝)하고 천태(天台)·전교(傳敎)보다도 월등(越等)할지어다. 조그마한 소도(小島)의 국주(國主) 등(等)의 위협(威脅)을 두려워 한다면 염마왕(閻魔王)의 책망을 어찌 하리오. 부처의 사자(使者)라고 자칭하면서 두려워 하는 것은 하열(下劣)한 사람들이라고 타일렀느니라.
사도초 佐渡抄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910~1쪽법화경(法華經)은 일법(一法)이지만 기(機)에 따라 시(時)에 따라 그 수행(修行)은 만차(萬差)이니라. 부처가 기록(記錄)하여 가로되 「나의 멸후(滅後)·정상二천년(正像二千年)이 지나서 말법(末法)의 초(初)에 이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만을 홍통(弘通)하는 자(者)가 출래(出來)하리라
각기(各其) 나의 제자(弟子)라고 자칭(自稱)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겁내지 말지어다. 부모(父母)를 생각하고 처자(妻子)를 걱정하며 소령(所領)에 미련을 두지 말지어다. 무량겁(無量劫)부터 지금까지 부모자식(父母子息) 때문에 소령(所領) 때문에 목숨을 버린 일은 대지(大地)의 미진(微塵)보다도 많았으나 법화경(法華經) 때문에는 아직 한 번도 버리지 않았었다. 법화경(法華經)을 많이 수행(修行)하였지만 이러한 일이 출래(出來)하였으므로 퇴전(退轉)하고 말았느니라.
비유(譬喩)컨대 물을 끓여서 냉수(冷水)에 붓고 부시를 치는데 이루지 못함과 같으니, 각자(各自)는 결단을 내리시라. 이 몸을 법화경(法華經)과 바꿈은 돌을 금(金)으로 바꾸고 분(糞)을 쌀로 바꾸는 것이니라."저 천태대사(天台大師)에게는 삼천인(三千人)의 제자(弟子)가 있었는데 장안(章安) 일인(一人)이 분명(分明)하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삼천인(三千人)의 중도(衆徒)를 두었는데 기신(義眞) 이후(以後)는 그것이 없는 것과 같다."
"지금도 또한 그와 같아서 수많은 제자(弟子)가 있다 해도 의심(疑心) 없이 정의(正義)를 전(傳)하는 자(者)는 드문 것이어서 일(一) 이(二)의 소석(小石)과 같으니 비장(秘藏)해야 할 법문(法門)이니라."
지금의 우리들의 도전을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경지명합 함개상응 감응도교로 하나되는 본인묘의 즉신성불의 신심을 제대로 수행하는 직제자들이 바로 우리들일 것입니다.
남묘호렌게쿄 제목의 행자답게 창제근본으로 실천하면서 지구촌의 평화낙토와 일체중생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인 입정안국의 세계광선유포를 말법만년진미래제에 걸쳐서 실현해가는 우리들의 도전은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불의에 한치도 어긋남없는 직제자들의 모습임을 확신하고 더욱 즐겁고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만끽하면서 여여래공숙 중생소유락하며 용맹정진해가야 할 것입니다.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명의조람을 확신하면서..저 천태대사(天台大師)에게는 삼천인(三千人)의 제자(弟子)가 있었는데 장안(章安) 일인(一人)이 분명(分明)하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삼천인(三千人)의 중도(衆徒)를 두었는데 기신(義眞) 이후(以後)는 그것이 없는 것과 같다. 지금도 또한 그와 같아서 수많은 제자(弟子)가 있다 해도 의심(疑心) 없이 정의(正義)를 전(傳)하는 자(者)는 드문 것이어서 일(一) 이(二)의 소석(小石)과 같으니 비장(秘藏)해야 할 법문(法門)이니라.
본인묘초(本因妙抄) 미노부에서 53세에 술작 874쪽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病)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受持)한 자를 수호(守護)하리라고 쓰였느니라.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교오전답서(經王殿答書)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124쪽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과거(過去)의 생사(生死)와 현재(現在)의 생사(生死)와 미래(未來)의 생사(生死)·이 삼세(三世)의 생사(生死)에서 법화경(法華經)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법화(法華)의 혈맥상승(血脈相承)이라고 하느니라..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37~8쪽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37~8쪽제목 : 세계광선유포 실현을 위한 염원이 시작되는 싯점에 즈음하여 반드시 심간에 새겨야 할 어서말씀들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弟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者)의 버릇이란 약속(約束)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개목초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234쪽
결국(結局)은 천(天)도 버리시고 제난(諸難)도 당(當)하여라, 신명(身命)을 바칠 뿐이로다.
개목초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232쪽
고(苦)는 고(苦)라고 깨닫고 낙(樂)은 낙(樂)이라고 열어서 고락(苦樂)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계시라, 이 어찌 자수법락(自受法樂)이 아니겠느뇨, 더욱더 강성(强盛)한 신력(信力)을 다하실지어다.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1143쪽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病)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受持)한 자를 수호(守護)하리라고 쓰였느니라.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교오전답서(經王殿答書)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124쪽
어찌 기원(祈願)의 성취(成就)가 늦으리요. 대지(大地)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虛空)을 동여매는 자(者)는 있을지라도·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西)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모든 보살(菩薩)·인천(人天)·팔부(八部) 등(等)·이성(二聖)·이천(二天)·십나찰(十羅刹) 등(等)이 천(千)에 하나라도 와서 수호(守護)하시지 않는 일이 있다면 위로는 석가제불(釋迦諸佛)을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구계(九界)를 속이는 죄가 되리라. 행자(行者)는 확실히 부실(不實)할지라도 지혜(智慧)는 어리석을지라도 몸은 부정(不淨)할지라도, 계덕(戒德)은 갖추지 않았을지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른다면 반드시 수호(守護)하시리라..
백오(白烏)의 은(恩)을 흑오(黑烏)에게 갚고 성승(聖僧)의 은(恩)을 범승(凡僧)에게 갚을지니라. 속히 속히 이생(利生)을 주십사 하고 강성(强盛)히 기원(祈願)한다면 어찌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으리요.
기도초(祈禱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51~2쪽
묘각(妙覺)의 산(山)에 달려 올라가 사방(四方)을 쫙 바라보니 아아, 유쾌하도다, 법계(法界)는 적광토(寂光土)로서 유리(瑠璃)를 가지고 땅으로 하고 금의 밧줄로써 팔(八)의 길에 경계(境界)를 했으며, 천(天)으로 부터 사종(四種)의 꽃이 내리고 허공(虛空)에서 음악(音樂)이 들리며, 제불보살(諸佛菩薩)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바람에 산들거리고 오락(娛樂) 쾌락(快樂)하시느니라. 우리들도 그 수(數)에 들어가서 유희(遊戱)하고 즐기게 될 것은 벌써 다가왔도다. 신심(信心)이 약(弱)해서는 이와 같이 가장 좋은 곳에는 갈 수 없다, 갈 수 없느니라.
마쓰노전답서 松野殿答書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1386~7쪽 별칭 : 十四誹謗抄
종종(種種)의 대난(大難)이 출래(出來)한다 할지라도 지자(智者)에게 아의(我義)가 타파(打破)되지 않는 한(限) 채용(採用)하지 않으리라, 기외(其外)의 대난(大難)은 바람 앞의 먼지와 같으니라, 나는 일본(日本)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日本)의 안목(眼目)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日本)의 대선(大船)이 되겠노라, 이렇게 맹서(盟誓)한 원(願)은 깨뜨리지 않겠노라.
개목초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232쪽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360쪽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는 남녀(男女) 공(共)히 여래(如來)이고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여여래공숙(與如來共宿)의 자(者)이니라, 부대사(傅大士)의 석(釋)에 가로되 「조조(朝朝)·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석석(夕夕) 부처와 함께 눕고 시시(時時)로 성도(成道)하며 시시(時時)로 현본(顯本)함이라」라고 운운(云云).
어의구전-상 御義口傳券上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37쪽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자(自)의 자(字)는 십계(十界)이며, 십계(十界) 각각(各各)이 득(得)하느니라, 제법실상(諸法實相) 이것이니라, 그러한 까닭으로 이 문(文)은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 중생(衆生)의 골육(骨肉)이니 깊이 깊이 이것을 생각할지어다 운운(云云).
어의구전-상 御義口傳券上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27쪽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신심(信心)의 모습)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어의구전-하 御義口傳卷下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88쪽
공덕(功德)이란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과보(果報)이니라, 결국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그러므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법(法)의 스승으로 되어, 큰 덕(德)이 있느니라, 공(功)이란 행(幸)이라는 것이며 또한 악(惡)을 멸(滅)함을 공(功)이라 하고 선(善)을 생(生)함을 덕(德)이라고 하느니라, 공덕(功德)이란 즉신성불(卽身成佛)이고 또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의 설문(說文)과 같이 수행(修行)함을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하 御義口傳卷下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62쪽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90쪽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심중(心中)의 불성(佛性)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功德)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하니라. 나의 기심(己心)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본존(本尊)으로 숭앙(崇仰)하고, 나의 기심(己心) 중(中)의 불성(佛性)·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불리어서 모이는 것과 같고,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妙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佛性)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梵王)·제석(帝釋)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佛菩薩)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 미노부에서 56세에 술작 557쪽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과거(過去)의 생사(生死)와 현재(現在)의 생사(生死)와 미래(未來)의 생사(生死)·이 삼세(三世)의 생사(生死)에서 법화경(法華經)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법화(法華)의 혈맥상승(血脈相承)이라고 하느니라..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37~8쪽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체(體)의 존귀(尊貴)하심은 어떠한 체(體)이신가 하고 추구(追求)해 보았더니 나의 심성(心性)의 팔엽(八葉)의 백연화(白蓮華)라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몸의 체성(體性)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말한 것이므로 경(經)의 이름이 아니고·이미 나 자신(自身)의 체(體)라고 알았기에 자신(自身)이 그대로 법화경(法華經)이며 법화경(法華經)은 나 자신(自身)의 체(體)를 불러 나타내시는 부처의 말씀이시므로 다름아닌 나의 몸이 삼신즉일(三身卽一)의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인 것이니라.
십여시사(十如是事) 가마쿠라에서 37세에 술작 411쪽우리들 생명의 가장 깊숙한 곳에 청정무루(구)한 생명(제9식)의 상태로 존재하는 가장 깨끗하고 환희로우면서 어떤 것에도 분동되지 않는 금강불괴의 위대한 불계의 환희 중의 대환희의 생명상태를 일컬어 묘호렌게쿄라고 이름하고 이 생명경애를 열어가는 작업이 남묘호렌게쿄라고 정확한 발음으로 억겁의 신로를 다해서 불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본래의 무작삼신이 염념에 일어나게 되어 시시로 성도(개불,성불)하게 되고 시시로 현본하면서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금강불괴의 불계의 생명상태를 유지하면서 끝없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산탕상승사(産湯相承事)미노부에서 60세에 술작 879~880쪽의 어서 "우리의 석존(釋尊)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해 나타내신 이래(已來) 십나찰녀(十羅刹女)라고 호칭(號稱)하였다. 십나찰(十羅刹)과 천조태신(天照太神)과 석존(釋尊)과 니치렌(日蓮)은 일체(一體)의 이명(異名)이며 본지수적(本地垂迹)의 이익(利益) 광대(廣大)하니라..
니치렌(日蓮) 은 천상(天上)·천하(天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주군(主君)이고 부모(父母)이고 사장(師匠)이니라." 말씀대로 석가불(釋迦佛) =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입니다.
니이케어서 1443쪽에 "부처가 된다고 함은 별다른 일은 아니로다. 남묘호렌게쿄 (南無妙法蓮華經)라고 타사없이 불러 나아간다면 천연(天然)히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를 갖추게 되느니라. 여아등무이(如我等無二)라 해서 석존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느니라." 말씀처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타사없이 불러 나아간다면 석존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는 본인묘의 즉신성불의 위대한 신심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제목 :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무작삼신(無作三身)의 본주(本主)이니라
권섭(權攝)의 의(義) : 남을 대신하여 사무 따위를 임시로 맡아본다는 의미
양(量)의 자(字) : 여래수량품의 양(量)
"양(量)의 자(字)를 본문(本門)에 배당(配當)하는 것은 양(量)이란 권섭(權攝)의 의(義)이니라"
법화경 : 서품 ~안락행품(安樂行品)까지 14품은 적문이라 하고, 종지용출품(從地踊出品) ~ 마지막까지 14품은 본문이라 함
"본문(本門)의 심(心)은 무작삼신(無作三身)을 말한 것이며, "
"이 무작삼신(無作三身)이란 부처의 입장(立場)에서 만이 아니고,
삼라만법(森羅萬法)을 자수용신(自受用身)의 자체현조(自體顯照)라고 말하는 고(故)로 "
"적문(迹門)에서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이원(理圓)을 밝히는 것을
그대로 바꾸지 않고 각기당체(各其當體)가 무작삼신(無作三身)이라고
논(論)한 것이 본문사원삼천(本門事圓三千)의 의(意)이니라."
"이는 즉(卽) 앵매도리(櫻梅桃李)의 각기(各其)의 당체(當體)를 고치지 아니하고
무작삼신(無作三身)이라고 개견(開見)하면 이것이 즉(卽) 양(量)의 의(義)이니라"
앵매도리(櫻梅桃李)의 각기(各其)의 당체(當體)를 고치지 아니하고
무작삼신(無作三身)이라고 개견(開見)하면 이것이 즉(卽) 양(量)의 의(義)이니라 :제목 :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마음에 믿으면 마음을 집으로하여 석가불(釋迦佛)이 회임(懷妊)되시느니라. 처음엔 잘 모르지만 점점 달이 거듭하면 마음의 부처가 꿈에 보여서 즐거운 마음 점차로 나올 것이외다.
우리들 입장에서는 석가불(釋迦佛) =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로 알고서 배독해야 합니다.
"십나찰(十羅刹)과 천조태신(天照太神)과 석존(釋尊)과 니치렌(日蓮)은 일체(一體)의 이명(異名)이며 본지수적(本地垂迹)의 이익(利益) 광대(廣大)하니라."
산탕상승사(産湯相承事)미노부에서 60세에 술작 879~880쪽의 어서 "우리의 석존(釋尊)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해 나타내신 이래(已來) 십나찰녀(十羅刹女)라고 호칭(號稱)하였다. 십나찰(十羅刹)과 천조태신(天照太神)과 석존(釋尊)과 니치렌(日蓮)은 일체(一體)의 이명(異名)이며 본지수적(本地垂迹)의 이익(利益) 광대(廣大)하니라..
니치렌(日蓮) 은 천상(天上)·천하(天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주군(主君)이고 부모(父母)이고 사장(師匠)이니라." 말씀대로 석가불(釋迦佛) =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입니다."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무작삼신(無作三身)의 본주(本主)이니라"
참고하실 어서말씀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 어서 709쪽어서 234쪽에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弟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者)의 버릇이란 약속(約束)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말씀대로 지금이야말로 더욱 현명하게 일념을 끌어올려서 용맹하게 정진해가야 할 것입니다.
몇일 남은 지금이야말로 우리들 각자가 제천선신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며칠 더 "고(苦)는 고(苦)라고 깨닫고 낙(樂)은 낙(樂)이라고 열어서 고락(苦樂)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계시라, 이 어찌 자수법락(自受法樂)이 아니겠느뇨, 더욱더 강성(强盛)한 신력(信力)을 다하실지어다" 어서 1143쪽 말씀대로 실천하는 진정한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직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십나찰(十羅刹) = 석가모니불
"우리의 석존(釋尊)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해 나타내신 이래(已來) 십나찰녀(十羅刹女)라고 호칭(號稱)하였다." 어서 879쪽
어본불 니치렌대성인께서 우리들을 위해 강성(强盛)하게 기원드리고 있다고 말씀하신대로 우리들도 직제자들답게 같은 일념으로 일체를 강성(强盛)하게 기원드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여러분을 법화경(法華經)·십나찰(十羅刹)이여, 도우십사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强盛)하게 말하느니라."
우리들이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경지명합 함개상응 감응도교로 하나되어 여여래공숙하면서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일념에 억겁의 신로를 다해 부른다면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께서도 항상 위의 말씀과 같이 강성(强盛)하게 기원해주시게 되어 있음을 확신.실감하면서 용맹하게 정진해가야 할 것입니다.
불법은 엄합니다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본인묘의 즉신성불의 묘법은 더욱 엄합니다.
지나고나서 보면 반드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결실을 맺게되어 있습니다.
특히 미증유의 상상을 초월하는 위대한 세계광선유포 실현을 위한 사명완수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러하기에 반드시를 확신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이나 사회적인 안목으로만 우리들의 사명을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 어유명대로의 명의조람을 확신하면서 우리들이 바라는 때가 아니라 본존님께서 열어주시는대로가 가장 좋은 때임을 확신하고 끝까지 의심없이 기원해가면 결국에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결실을 맺게됨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용맹정진해가야 할 것입니다.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 어유명대로의 명의조람을 확신하면서 우리들이 바라는 때가 아니라 본존님께서 열어주시는대로가 가장 좋은 때임을 확신하고 끝까지 의심없이 기원해가면 결국에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결실을 맺게됨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용맹정진해가야 할 것입니다.
어서 234쪽에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弟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者)의 버릇이란 약속(約束)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말씀대로 지금이야말로 더욱 현명하게 일념을 끌어올려서 용맹하게 정진해가야 할 것입니다.실대승(實大乘)의 법화경(法華經)에 귀의(歸依)하면 제천선신(諸天善神)과 아울러 지용천계(地涌千界) 등(等)의 보살(菩薩)이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리니 이 사람은 수호(守護)의 힘을 얻어 본문(本門)의 본존(本尊)·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염부제(閻浮提)에 광선유포(廣宣流布)케 하리라제목 : 지혜(智慧)에 있어서도 정지(正智)가 있고 사지(邪智)가 있는데 지혜(智慧)가 있더라도 그 사의(邪義)에는 따르지 말 것이며 귀승(貴僧)·고승(高僧)에는 의(依)하지 말아라. 천(賤)한 자(者)일지라도 이 경(經)의 내력을 알고 있는 사람을 생신(生身)의 여래(如來)와 같이 예배(禮拜) 공양(供養)할지어다, 이는 경문(經文)이니라.
《 본문어서 》
제불(諸佛)도 제신(諸神)도 방법(謗法)의 공양(供養)을 전(全)혀 받으시지 않는데 하물며 인간(人間)으로서 이를 받겠는가. 가스가대명신(春日大明神)의 탁선(託宣)에 가로되, 동염(銅炎)의 밥을 먹을지언정 마음이 더러운 사람의 물건을 받지 않겠노라. 동염(銅焰)의 좌(座)에는 앉을지언정 마음이 더러운 사람의 집에는 가지 않으며, 초랑(草廊)·모옥(茅屋)에는 가겠노라고 말했느니라. 설령(設令) 천일(千日)의 금줄을 친다 해도 불신(不信)의 곳에는 가지 않겠으며, 중복심후(重服深厚)한 집이라 할지라도 유신(有信)의 곳에는 갈 것이니라 운운(云云). 이와 같이 선신(善神)은 이 방법(謗法)의 나라를 한탄하여 천(天)에 올라 가셨느니라. 마음이 더럽다고 하는 것은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지 않은 사람을 말하며 이 경(經)의 오권(五卷)에 설해져있다. 방법(謗法)의 공양(供養)을 바로 동염(銅焰)이라고 말씀하셨다. 신(神)조차도 이와 같으니 하물며 우리들 범부(凡夫)로서 화염(火焰)을 먹겠는가. 사람의 자식으로서 나의 어버이를 죽인 자가 나에게 물건을 주려고 하는데 이를 받을 수 있겠는가. 어떠한 지자성인(智者聖人)도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벗어날 수 없느니라. 또 그들에게 가까이도 하지 말지어다, 여동죄(與同罪)를 두려워 하고 두려워 할지니라.
석존(釋尊)은 일체(一切)의 제불(諸佛)·일체(一切)의 제신(諸神)·인천대회(人天大會)·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부(父)이고 주(主)이며 사(師)이니라. 이 석존(釋尊)을 죽인다면 어찌 제천(諸天)·선신(善神) 등(等)이 기쁘게 생각하겠는가. 지금 이 나라의 일체(一切)의 모든 사람은 모두가 석존(釋尊)의 적(敵)이며, 재가(在家)의 속남(俗男)·속녀(俗女)들 보다도 사지심(邪智心)의 법사(法師)들은 유달리 적(敵)이니라. 지혜(智慧)에 있어서도 정지(正智)가 있고 사지(邪智)가 있는데 지혜(智慧)가 있더라도 그 사의(邪義)에는 따르지 말 것이며 귀승(貴僧)·고승(高僧)에는 의(依)하지 말아라. 천(賤)한 자(者)일지라도 이 경(經)의 내력을 알고 있는 사람을 생신(生身)의 여래(如來)와 같이 예배(禮拜) 공양(供養)할지어다, 이는 경문(經文)이니라.
니이케어서 新池御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441쪽(1439-1444)정상시(正像時)에 세워진 권소(權小)의 이종(二宗)은 점차 말법(末法)으로 들어옴에 집심(執心)이 더욱 강성(强盛)해져서 소(小)로써 대(大)를 치고 권(權)으로써 실(實)을 파(破)하여 국토(國土)에는 대체로 방법(謗法)의 자(者)가 충만(充滿)하느니라. 불교(佛敎)에 의(依)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자(者)는 대지(大地) 미진(微塵)보다도 많고 , 정법(正法)을 행(行)하여 불도(佛道)를 득(得)하는 자(者)는 조상(爪上)의 흙보다도 적으니라. 이 때에 즈음하여 제천선신(諸天善神)은 그 나라를 버리고 떠나니 오직 사천(邪天)·사귀(邪鬼) 등(等)이 있어 왕신(王臣)·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 등(等)의 신심(身心)에 입주(入住)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를 매리(罵詈)하고 훼욕(毁辱)케 하는 때이니라. 비록 그렇기는 하나 부처의 멸후(滅後)에 있어서 사미(四味)·삼교(三敎) 등(等)의 사집(邪執)을 버리고, 실대승(實大乘)의 법화경(法華經)에 귀의(歸依)하면 제천선신(諸天善神)과 아울러 지용천계(地涌千界) 등(等)의 보살(菩薩)이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리니 이 사람은 수호(守護)의 힘을 얻어 본문(本門)의 본존(本尊)·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염부제(閻浮提)에 광선유포(廣宣流布)케 하리라, 예(例)컨대 위음왕불(威音王佛)의 상법(像法)의 때에 불경보살(不輕菩薩)이 아심경(我深敬) 등(等)의 이십사자(二十四字)를 가지고 그 국토(國調)에 광선유포(廣宣流布)하여 일국(一國)의 장목(杖木) 등(等)의 대난(大難)을 초래(招來)했던 것과 같으니라. 그 이십사자(二十四字)와 이 오자(五字)와는 그 말은 다를지라도 그 의(意)는 동일(同一)하고 저 상법(像法)의 말(末)과 이 말법(末法)의 초(初)는 전(全)혀 같으며, 그 불경보살(不輕菩薩)은 초수희(初隨喜)의 사람이고·니치렌(日蓮)은 명자(名字)의 범부(凡夫)이니라.
현불미래기(顯佛未來記)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507쪽(505-509)예(例)컨대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탑중(塔中)에 병좌(並座)하여 법화(法華)의 묘리(妙理)를 서로 수긍하실 때·오십소겁(五十小劫)·부처의 신력(神力)으로써 제대중(諸大衆)으로 하여금 반일(半日)과 같다고 생각케 한다고 한 것과 같으니라, 겁초(劫初)로부터 이래(以來) 부모(父母)·주군(主君) 등(等)의 감죄(勘罪)를 받고 원국(遠國)의 섬으로 유죄(流罪) 당(當)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들과 같이 기쁨이 몸에 넘치는 자(者)는 아마 없으리라. 그러하니 우리들이 거주(居住)하고 일승(一乘)을 수행(修行)하는 곳은 어느 곳일지라도 상적광(常寂光)의 도읍(都邑)으로 될 것이로다. 우리들의 제자(弟子) 단나(檀那)로 되는 사람은 한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천축(天竺)의 영산(靈山)을 보고 본유(本有)의 적광토(寂光土)로 주야(晝夜)로 왕복(往復)할 것이니 기쁨은 말할 수 없도다, 말할 수 없도다.
사이렌보답서(最蓮房答書)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43쪽법화경(法華經)에는 「나의 멸도후(滅度後)에 있어 응당(應當) 이 경(經)을 수지(受持)할지어다, 이사람은 불도(佛道)에 있어 결정(決定)하여 의심(疑心)이 있을 수 없으리라」 혹(或)은 「속위질득(速爲疾得)·무상불도(無上佛道)」 등(等) 운운(云云). 이 기문(記文)이 허무(虛無)하여서 우리들의 성불(成佛)이 금번(今番) 허언(虛言)이 된다면 제불(諸佛)의 혀도 잘리고 다보(多寶)의 탑(塔)도 깨져 떨어지고 이불병좌(二佛並座)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열철(熱鐵)의 마루로 되고 방(方)·실(實)·적(寂)의 삼토(三土)는 지(地)·아(餓)·축(畜)의 삼도(三道)로 변(變)할 것이로다. 어찌하여 그러한 일이 있겠느뇨, 아, 믿음직스럽고 믿음직스럽도다. 이와 같이 생각을 계속하노라면 우리들은 유인(流人)이지만 신심(身心)이 함께 즐거우니라.
중요(重要)한 법문(法門)을 주야(晝夜)로 연구(硏究)하고 성불(成佛)의 이치(理致)를 시시(時時)·각각(刻刻)으로 맛보는데, 이와 같이 지나 간다면 세월(歲月)을 보내더라도 멀지 않으며 지나는 시각(時刻)도 잠깐이리라, 예(例)컨대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탑중(塔中)에 병좌(並座)하여 법화(法華)의 묘리(妙理)를 서로 수긍하실 때·오십소겁(五十小劫)·부처의 신력(神力)으로써 제대중(諸大衆)으로 하여금 반일(半日)과 같다고 생각케 한다고 한 것과 같으니라, 겁초(劫初)로부터 이래(以來) 부모(父母)·주군(主君) 등(等)의 감죄(勘罪)를 받고 원국(遠國)의 섬으로 유죄(流罪) 당(當)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들과 같이 기쁨이 몸에 넘치는 자(者)는 아마 없으리라. 그러하니 우리들이 거주(居住)하고 일승(一乘)을 수행(修行)하는 곳은 어느 곳일지라도 상적광(常寂光)의 도읍(都邑)으로 될 것이로다. 우리들의 제자(弟子) 단나(檀那)로 되는 사람은 한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천축(天竺)의 영산(靈山)을 보고 본유(本有)의 적광토(寂光土)로 주야(晝夜)로 왕복(往復)할 것이니 기쁨은 말할 수 없도다, 말할 수 없도다.
사이렌보답서(最蓮房答書)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43쪽우리들이 거주(居住)하고 일승(一乘)을 수행(修行)하는 곳은 어느 곳일지라도 상적광(常寂光)의 도읍(都邑)으로 될 것이로다. 우리들의 제자(弟子) 단나(檀那)로 되는 사람은 한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천축(天竺)의 영산(靈山)을 보고 본유(本有)의 적광토(寂光土)로 주야(晝夜)로 왕복(往復)할 것이니 기쁨은 말할 수 없도다, 말할 수 없도다.경(經)에 가로되 「능(能)히 이 경(經)을 수지(受持)함은 즉 불신(佛身)을 수지(受持)함이라」고. 천태대사(天台大師)가 가로되 「일일문문(一一文文) 이는 진불(眞佛)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묘(妙)의 문자(文字)는 삼십이상(三十二相)·팔십종호(八十種好)·원비(圓備)하신 석가여래(釋迦如來)이심을 우리들의 눈이 무능(無能)하여서 문자(文字)라고 뵈옵는 것이외다. 비유하면 연꽃의 열매가 연못 속에서 생겨남과 같소이다. 그 연밥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많은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이며, 밤에는 그림자가 있어도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이 묘(妙)의 글자는 부처님이십니다. 또한 이 묘(妙)의 문자(文字)는 달이고 해이며, 별이고 거울이며 옷이고 식(食)이며 꽃이고 대지(大地)이며 대해(大海)이니라. 일체(一切)의 공덕(功德)을 합(合)쳐서 묘(妙)의 문자(文字)가 되셨으며 또는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옥(玉)이니라. 이와 같이 아실지어다."
묘신니부인답서(妙心尼夫人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484쪽그런데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항상 부르시고 있으므로 이 묘(妙)의 문자(文字)가 사자(使者)로 변(變)하시어·혹(或)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혹(或)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혹(或)은 상행보살(上行菩薩) 혹(或)은 불경보살(不輕菩薩) 등(等)으로 되시느니라. 비유하면 진자(陳子)의 거울의 새가 항상 고(告)하였듯이 소무(蘇武)의 처의 다듬이 소리가 들렸듯이·사바세계(娑婆世界)의 일을 명도(冥途)에 고(告)해 주시리라. 또 묘(妙)의 문자(文字)는 꽃이 열매가 되듯이 반월(半月)이 만월(滿月)이 되듯이 변(變)해서 부처가 되시는 문자(文字)이니라.
그러므로 경(經)에 가로되 「능(能)히 이 경(經)을 수지(受持)함은 즉 불신(佛身)을 수지(受持)함이라」고. 천태대사(天台大師)가 가로되 「일일문문(一一文文) 이는 진불(眞佛)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묘(妙)의 문자(文字)는 삼십이상(三十二相)·팔십종호(八十種好)·원비(圓備)하신 석가여래(釋迦如來)이심을 우리들의 눈이 무능(無能)하여서 문자(文字)라고 뵈옵는 것이외다. 비유하면 연꽃의 열매가 연못 속에서 생겨남과 같소이다. 그 연밥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많은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이며, 밤에는 그림자가 있어도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이 묘(妙)의 글자는 부처님이십니다. 또한 이 묘(妙)의 문자(文字)는 달이고 해이며, 별이고 거울이며 옷이고 식(食)이며 꽃이고 대지(大地)이며 대해(大海)이니라. 일체(一切)의 공덕(功德)을 합(合)쳐서 묘(妙)의 문자(文字)가 되셨으며 또는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옥(玉)이니라. 이와 같이 아실지어다."
묘신니부인답서(妙心尼夫人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484쪽 묘(妙)의 문자(文字)는 꽃이 열매가 되듯이 반월(半月)이 만월(滿月)이 되듯이 변(變)해서 부처가 되시는 문자(文字)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항상 부르시고 있으므로 이 묘(妙)의 문자(文字)가 사자(使者)로 변(變)하시어·혹(或)은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혹(或)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혹(或)은 상행보살(上行菩薩) 혹(或)은 불경보살(不輕菩薩) 등(等)으로 되시느니라."
"묘(妙)의 문자(文字)는 삼십이상(三十二相)·팔십종호(八十種好)·원비(圓備:완벽하게 갖춤)하신 석가여래(釋迦如來)이심을 우리들의 눈이 무능(無能)하여서 문자(文字)라고 뵈옵는 것이외다."
"비유하면 연꽃의 열매가 연못 속에서 생겨남과 같소이다. 그 연밥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많은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이며, 밤에는 그림자가 있어도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이 묘(妙)의 글자는 부처님이십니다."
"또한 이 묘(妙)의 문자(文字)는 달이고 해이며, 별이고 거울이며 옷이고 식(食)이며 꽃이고 대지(大地)이며 대해(大海)이니라."
"일체(一切)의 공덕(功德)을 합(合)쳐서 묘(妙)의 문자(文字)가 되셨으며 또는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옥(玉)이니라. 이와 같이 아실지어다.""묘(妙)의 문자(文字)는 삼십이상(三十二相)·팔십종호(八十種好)·원비(圓備:완벽하게 갖춤)하신 석가여래(釋迦如來)이심을 우리들의 눈이 무능(無能)하여서 문자(文字)라고 뵈옵는 것이외다."
"비유하면 연꽃의 열매가 연못 속에서 생겨남과 같소이다. 그 연밥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많은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이며, 밤에는 그림자가 있어도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이 묘(妙)의 글자는 부처님이십니다."
"또한 이 묘(妙)의 문자(文字)는 달이고 해이며, 별이고 거울이며 옷이고 식(食)이며 꽃이고 대지(大地)이며 대해(大海)이니라."
"일체(一切)의 공덕(功德)을 합(合)쳐서 묘(妙)의 문자(文字)가 되셨으며 또는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옥(玉)이니라. 이와 같이 아실지어다."
부처가 된다고 함은 별(別)다른 일은 아니로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타사(他事)없이 불러 나아간다면 천연(天然)히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를 갖추게 되느니라.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라 해서 석존(釋尊)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느니라.
비유(譬喩)컨대 새의 알은 처음엔 물인데 그 물속에서 누가 하는 것도 아닌데, 주둥이나 눈이 생겨나서 허공(虛空)을 날아다니는 것과 같다.
우리들도 무명(無明)의 알이고 천박한 몸이지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창제(唱題)라는 어머니가 품어주어서 삼십이상(三十二相)의 주둥이가 나오고 팔십종호(八十種好)의 개모(鎧毛)가 생겨 갖추어져서 실상진여(實相眞如)의 허공(虛空)을 날게 되느니라.
유해무신(有解無信)이라 해서 법문(法門)을 알아도 신심(信心)이 없는 자(者)는 결코 성불(成佛)할 수 없으며 유신무해(有信無解)라 해서 해(解)는 없어도 신심(信心)이 있는 자(者)는 성불(成佛)하느니라.
사리불(舍利弗)조차도 지혜(智慧)로써는 부처가 되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우리들 중생(衆生)이 약간의 법문(法門)을 터득했다 해도 신심(信心)이 없으면 부처가 되기란 의심스럽도다.부처가 된다고 함은 별(別)다른 일은 아니로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타사(他事)없이 불러 나아간다면 천연(天然)히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를 갖추게 되느니라.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라 해서 석존(釋尊)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느니라.유해무신(有解無信)이라 해서 법문(法門)을 알아도 신심(信心)이 없는 자(者)는 결코 성불(成佛)할 수 없으며 유신무해(有信無解)라 해서 해(解)는 없어도 신심(信心)이 있는 자(者)는 성불(成佛)하느니라. 모두 이 경(經)의 의(意)이지 나의 말은 아니로다. 그러므로 이(二)의 권(卷)에는 「신(信)으로써 들어감을 득(得)하였지 자기(自己)의 지분(智分)은 아니다」라고 해서 지혜제일(智慧第一)의 사리불(舍利弗)도 오직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고 신심(信心) 강성(强盛)함으로써 부처가 되었으며 자기(自己)의 지혜(智慧)로써 부처가 되지 않았다고 설(說)하시었다. 사리불(舍利弗)조차도 지혜(智慧)로써는 부처가 되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우리들 중생(衆生)이 약간의 법문(法門)을 터득했다 해도 신심(信心)이 없으면 부처가 되기란 의심스럽도다.
니이케어서(新池御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443쪽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창제행 =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불러내어 하나되는 순간 =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 각자가 본불.지용보살들로 발적현본하게 되는 이 순간 순간의 일념을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로 경지명합 함개상응 감응도교로 하나되면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위대한 금강불괴의 불계의 생명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중생소유락'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천하는 것이 본인묘의 신심 즉 즉신성불의 신심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고, 시시로 성도하고 시시로 현본하면서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행복감을 만끽하게 되는 현증을 실감하면서 마음껏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일생성불초 384페이지에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라고 자행의 실천 방안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어의구전 794페이지에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이 홍통(弘通)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체(體)이고 심(心)이니라,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용(用)이고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조행(助行)이며 제목(題目)은 정행(正行)이니라.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운운(云云)."라고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