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요.‘
생애 처음 중딩 담임을 하게 되었는데, 개학 다음 주부터 5월 말까지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보통 중학교에서 흔히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에 더해, ’역대급 상황'이 뻥뻥 터지자, 내가 교회 다니는 걸 아는 학생부장님이 농담 반, 진담 반 '굿'을 하라 하셨다.
"선생님, 굿 한 번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연속해서 벌어지죠?" 하셨다.
‘굿’이라는 말에 나는 '파묘'의 무당 김고은을 흉내 낸 개그우먼 '이수지'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파묘’처럼 해볼까요? 그런데 저 교회 다니는데요, 하하."
했더니,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이
"그럼 금식기도 해야지.“
하신다.
"선생님, 저 밥 굶는 거 싫어해요. 금식기도보다 철야기도가 낫겠어요.”
“금식 투쟁이든 철야 농성이든 뭔가 해야 할 것 같지 않아요?
이 상황이 무탈하게 마무리되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서는 그 끝을 알 수가 없네요.
일단 선생님이 입는 상처에 대해 관리 잘 하셔요.”
이렇게 교무실에서의 대화는 썰렁한 농담과 진심 담은 조언으로 채워졌다.
‘평균의 종말’을 읽으며 평균이라는 허상 위에 세워진 이상한 학교 시스템의 실체를 보았고,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개별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학교 현장에서 나는 최소한의 도리나 도덕 개념이 부족한 몇 몇 아이와 학부모와 씨름하느라 힘을 너무 빼앗겼다. 지난 몇 달동안 나는 수업을 연구할 시간을 쪼개 관련 학생을 불러 상담을 하고, 학부모와 통화를 하고, 이 과정을 학생인권부와 공유하고 의논했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눈이 빠지게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그날 있었던 일을 학생별로 정리하는 문서를 만들었고 졸리는 눈을 부릅뜨고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했다. 학교에서 경험하는 일들이 너무나 소모적이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고 그냥 ‘버티기’의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채운 날도 많다.
여러 사건 중 몇 개는 ‘선도 위원회’가 열렸고, 학부모가 호출되기도 했고 여러 번의 훈육과 상담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수의 학생들에게 후유증을 남긴 채 2명의 학생이 한 달 간격으로 전학을 갔다. 그 후에도 또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지만......
폭탄 돌리기
굿도 안 하고 금식도 안 하고 철야 기도도 안 했는데 산불처럼 커지려던 사건은 최악의 상황 직전에 해당 학생이 전학을 가면서 급히 해결되었다. 상황이 한참 진행될 때 경력이 많은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그 학생'이 자발적으로 전학을 가는 것이 가장 나은 결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학생이 전학을 가면서 사건이 종결되자 많은 이들이 안도하고 기뻐했다. 나 역시 가슴 속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지만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학'이 최선 또는 차선책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내가 좀 더 힘을 내고 인내하면서 학생과 원가정의 문제를 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려움이 있는 학생을 붙들고 씨름해서 개선의 실마리를 잡고 늘어져야 하는데, 별다른 정보도 없이 다른 학교로 학생을 전학 보내면 그것은 마치 '폭탄'을 넘기는 행위와 다름 없는 것이 아닐까? 전학생을 받은 학교는 속수무책으로 폭탄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도의적으로도 아니다 싶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 능력은 이상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결국 첫 번째 폭탄과, 두 번째 폭탄이 학적을 옮기자 내 일상에 평화와 여유가 찾아왔고, 나는 그 속에 안주했다. 그리고 평화와 여유를 갖게 되자 그 때서야 조용히 자기 자리에 있던 다수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물론 학급에는 여전히 콩알탄급 사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콩알탄 아이의 상황과 이유를 돌아볼 여유가 생겨 다행이다.
미안하다.
오늘 점심 시간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학급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외우는 아이, 가장 자주 이름 불러주는 아이는, '장난꾸러기'들이다. 수업에 집중 못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가 교사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고, 더 많이 말 걸게 된다. 그러다 보면 조용히 자기 일 잘 하는 아이는 이름도 모른 채 지나갈 수도 있다고.. 그래서 참 미안하다고 했다. 모든 교사가 다 끄덕였다. 조용히 있는 아이들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교사는 자칫 급한 일에 힘을 쏟다가 목소리를 내지 않는 조용한 아이들을 간과할 수 있다고...
"맞아요, 맞아요," 하다가 '우리 나라는 교사 1명당 학생 수가 너무 많다'에 방점을 찍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잘 하고 싶은데,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데, 어렵다. 그리고 지금은 미안함투성이다. .
첫댓글 참, 아까 제가 초고?를 프린트했는데, 합평 때 읽으신 글 후반부가 초고와 꽤 다르더라고요! 합평회 직전에도 퇴고시다니, 훌륭하십니당👍
먼저 선생님의 노고에 심심한 위로를...ㅠㅠ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글로 정리하신 선생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합평시간에 나온 이야기를 묵직하게 받아 안는다면 정말 좋은 글이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서 계신 풍경에서 보이는 것들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으니까요. 아무쪼록 몸과 마음이 회복되시는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