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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화론]
핓빛 붉은 vs. 눈빛 맑은
- 누구든 걸려들어라, 닥치는 대로 녹여버리리라 -
권대근
문학박사, 명예철학박사
모든 폭력은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킬 수는 있겠지만, 상대를 순종시킬 수는 없다.
- 톨스토이
Ⅰ.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무솔리니가 21세 때 쓴 최초의 작품은 힘의 원리에 관한 에세이였다. 힘의 개념은 언제나 그를 황홀하게 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폭력은 도박처럼 모험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술 같은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의 테러를 ‘민족적인 질병 예방 조치’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의사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격리시키는 것처럼 특정한 개인들도 사회로부터 제거시켜야 한다고 기술했다. 역설적으로 송명화는 테러에 준하는 폭력물을 사회로부터 제거시켜야 한다고 썼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폭력은 방위하고자 생각하는 것, 즉 인간의 존엄 생명 자유를 파괴한다. 폭력은 사회의 체제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했다. 개인적인 폭력도 문제지만 권력의 폭력은 더 큰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가. 에머슨은 우둔한 인간은 항상 철면피한 폭력을 휘두른다고 했고, 풀러는 폭력의 백성은 많은 머리를 갖고 있지만 뇌수는 없다고 했고, 마틴 루터 킹은 폭력은 사회를 파괴하고 동포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했다. 종교인이나 사상가는 물론 의식이 있는 사람은 모두 평화를 부르짖었다. 세상에서 폭력을 찬양한 이는 독재자 무솔리니나 히틀러뿐이다. 히틀러는 처음부터 테러행위를 장려했다.
송명화 수필가는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구보다도 작가의식에 충실했다. 사회적 문제를 결코 방관하지 않았다. 영상 폭력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네펜데스의 통발>이란 작품으로 제기한 것도 이러한 경향성을 잘 반영한다고 하겠다. ‘뉴스든 영화든 인터넷이든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폭력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눈빛 맑은 아이들을 걱정하는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작가로서 그녀의 입장은 분명한 것 같다. 더 나은 방안이나 대안이 있음에 포커스를 두고 이를 문학적인 전달력에 기대어 잘 나타내고 있다. 과거 부모 입장에서 겪은 폭력물 문제를 현재 지성인이 된 상황으로 연결시켜 폭력물의 심각성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Ⅱ.
작가의 사회적 책무는 그릇된 현실타파를 외치고,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을 호소하는 것이다. 송명화는 지식인으로서 작가라는 공인으로서 수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넘치는 영상폭력물에 대한 사회적 관대에 대한 저항을 표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물에 대해 소극적이나마 문제제기를 하려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한 그대로 송명화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펜을 드는 것이다. 그녀는 수필 전문지 에세이문예의 주간을 맡아, 오랫동안 주옥 같은 사회수필을 많이 발표해왔다.
“영상폭력의 바다는 닥치는 대로 녹여버리는 네펜데스의 소화샘이다.”는 결말부 주제의식의 의미화는 개성적이면서도 신선한 표현으로 문학적 성취를 견인하는 결정적인 한 수 역할을 한다. 작가는 글로써 지켜야 할 진실이 있다. 송명화는 이런 차원에서 소수자의 길을 택했다고 본다. 언제나 정의 편에 서고, 약자의 편에 서고, 서민의 편에 선다. 이런 측면에서 송명화의 수필들은 하나같이 순도 높은 삶의 진실을 들려주고 있다. 수필 쓰기는 창작이면서 동시에 문학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모든 예술작품도 항상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도 예술의 순기능적 측면보다도 상업적인 측면에서 관객의 자극을 더 부추기고 공포감과 혐오심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붉은 피를 강조한다. 이런 영화를 보면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문학인에게는 이런 상업영화의 대중 기호 영합에 대해 감시하고, 청소년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주는 선정적 장면을 줄이도록 요구할 사회적인 책무가 있다. 송명화는 문학의 멋과 맛을 살리기 위해 직설적인 비판이나 비난 대신 비유로 그리고 통섭의 지식과 세련된 지성으로 수필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영상물 제작자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글을 쓴 것이다.
Ⅲ.
[식물] 제재
벌레잡이통발이라.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묘한 식물 이름은 네펜데스라고 하였다. 재미난 이름이 궁금하여 요리조리 살폈다. 통발에 담긴 액체 속에서 형태가 일그러진 날파리가 보였다. 꽃집주인이 요즘 식충식물 키우기가 유행이라며 한번 골라보라고 권하였다. 매끈한 주머니 모양과 윤기 흐르는 새빨간 입술이 매력적이었지만 움직이던 것들의 사체를 보고 싶지는 않아서 사양하였다. 그래도 초록바탕에 빨간 표범무늬 화려한 색깔이 마음을 끌었다.
[영화] 경험
그날 목적지는 영화관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보는 공짜영화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참으로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장기밀매라는 예사롭지 않은 제재를 소홀히 다룬 나의 불찰이다. 시작부터 찰진 욕설이며 가혹한 불법행위가 사뭇 보기 힘들었지만 주인공이 워낙 인지도가 있는 배우다 보니 괜찮은 영화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중국으로 가는 여객선 안에 있는 공중목욕탕 안에서 범죄를 모의한 일당들이 납치한 사람들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는 수술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스크린에서 날뛰는 배우들이 미친 듯이 울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내가, 놀라서, 이 순간을 어찌 모면할지 몰라서, 기가 막혀 소리를 지르고 또 질렀다.
피범벅이 된 화면을 보며 숨을 죽였다. 눈을 감았다. ‘요즘 범죄영화가 다 그렇지 뭐.’라고 다독이며 침을 삼켰다. 나를 초대해준 친구에게 미안해서라도 영화를 제대로 봐주어야지 다짐까지 했는데 이십여 분 정도 또다시 비명을 지르다가 나는 벌떡 일어섰다. “더 못 보겠어. 먼저 간다.” 후다닥 일어나서 출구를 찾았다. 어두운 계단에서 발목을 조금 접질렸지만 다행히 비상구를 열 수 있었다. 입구로 내달렸다. 붉은 카펫으로 덮인 복도를 지나며 나는 속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귀를 막고 보고 싶지 않은 화면으로부터, 고막을 찢을 듯한 피해자의 비명으로부터, 가해자의 더러운 욕설들로부터 도망쳤다. 식은땀이 흘렀다. 속이 메슥거렸다. 누군가 손이라도 스쳤다면 소스라쳐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악몽] 뭉크 절규 속 주인공
그 후 며칠 밤이나 악몽을 꾸었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질러대는 고통을 아는가. 알 수 없는 추격자를 피해 음암한 동굴 속으로 끝없이 도망치며 허덕였다. “대피하라. 대피하라.” 숨이 막힐 듯 헐떡이며 가위눌린 끝에 눈을 떴다. 캄캄한 방구석 희끄무레한 물체에 놀라 마침내 소리를 내지른다. 꿈속의 나는 뭉크의 그림 「절규」 속 주인공이었다. 피처럼 일렁이는 붉은 구름 아래 검푸르게 요동치는 바다가 보이고 그것들을 배경으로 다리 위에서 해골 형상을 한 남자가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전경에 혼자 고립되어 버린 남자는 눈동자를 크게 뜨고 비현실적으로 몸통까지 일그러진다. 나도 공포와 소스라침 같은 좀체 마주할 일 없는 낱말에 포위되고 말았다.
[식물]제재: 죽음의 수조
네펜데스의 통발은 크고 깊다. 암울한 죽음의 수조다. 통발의 미끄러운 벽에 몸을 밀어 넣었다면 탈출의 가능성은 낮다. 내가 도망쳐 나온 메가플렉스의 긴 회랑도 어둡고 길었다. 자유로운 상상으로 영화를 즐기러 들렀던 곳에서 내가 온힘을 다해 뛰쳐나왔듯이 통발을 탈출하는 미물들은 얼마나 될까. 동영상으로 네펜데스의 사냥을 본다. 포충낭의 뚜껑이 열리고, 다디단 꿀과 양분을 입힌 빨간 주둥이는 유혹의 향을 뿜는다. 달콤한 죽음의 덫을 감지하지 못하고 개미들은 입을 맞추고 조금씩 경계를 풀어나간다. 서서히 폭력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길들여져 누구든 머리를 감싸고 뛰쳐나가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게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어느 순간 미끄러운 벽을 타고 소화액에 빠져 서서히 죽어간다. 정신이 오염되고 순순히 본성을 내주고 만다.
[문제제기 1] 무각각한 세상:흉터
가혹한 영상폭력이 마음에 그은 생채기는 시간이 지나면 흉터로 남는다. 흉터는 감각이 무딘 법이다. 굳은살이 더께진 감성으로 세상을 제대로 보기는 어려울 터이지. 횟수를 더해갈수록 위기가 일상이 되고 잔혹함이 예사롭게 받아들여진다면 세상사에서 온화한 빛을 논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림 「절규」의 후경에서 공포에 떠는 뭉크를 버려두고 핏빛 하늘 속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두 남자가 내 이웃이고 내 삶의 배경이어야 하는 것일까. 도망쳐야 할 현실에서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세상,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무감각한 세상이 된다면 내 비명소리를 들어줄 이도 없을 터이지. 다시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대안] 예술적 조정
심리적 지지자를 찾아 나섰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나처럼 도망친 사람이 몇 있었다. 내가 유난을 떤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고른 숨을 쉰다. 흥행이 제법 된다는 연예기사도 보인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누가 보는가. 왜 보는가.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보며 어떤 점에 만족하는가.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가. 질문을 해 보지만 나 혼자만의 독백이다. 사실 이웃나라와 관련된 장기밀매 사건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실화이다. 아마도 그는 사람들에게 이런 범죄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사회비판의 강도를 높이느라 실감을 위해 붉은 액체를 강조함으로써 공포심과 혐오감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었던 것 같다. 비유라는 렌즈로 그 사건을, 그 화면을 감독이 예술적으로 조정할 수 있었다면 나의 도망은 그 이유를 잃었으련만….
[문제제기 2] 청소년에게 노출
영상은 현실보다 전능하다. 자유로운 상상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감동도 평화도 폭력도 분노도 그 속에서는 고삐가 풀린다. 멀지 않아 그 영화는 안방 텔레비전에 진출할 것이리라. 그때 아이들은 19란 글자를 보면서도 화면을 끄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를 키울 때 컴퓨터 게임계를 풍미하던 공포액션 게임 때문에 얼마나 갈등하였던가. 사람을 겨누고 총을 쏴대면 적이 고꾸라지고 화면에 뿌려지는 붉은 피 때문에 내 가슴이 얼어붙었다. 아이가 제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게임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 때문에 떨던 내 위장은 그때부터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위를 지그시 누른다. 묵직하게 느낌을 전해오는 위경련의 전조가 두렵다. 뉴스든 영화든 인터넷이든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폭력의 손바닥 위에서 놓여나고 싶다. 눈빛 맑은 아이들을 어찌할거나.
[의미화]
네펜데스가 사회 곳곳에 통발을 벌려놓고 누구든 걸리라고 주문을 왼다. 영상폭력의 바다는 닥치는 대로 녹여버리는 네펜데스의 소화샘이다. 누가 나서서 통발의 뚜껑을 닫을 것인가.
[구조도식]
시각의 은유화
[새빨간-빨간]-(붉은-붉은) -[빨간-핓빛]-(붉은-붉은)
2. 질료의 구체화
입술-<무늬>-[카펫]-(구름) -주둥이-(하늘)-<액체>–[피]
3. 제재의 의미화
네펜데스-폭력영상 노출-희생자들-장기매매-폭력의 바다
4. 담론의 개성화
사회 곳곳 통발 ---------------> 네펜네스의 소화샘
[평가]
톨스토이의 말처럼, 모든 폭력은 상대를 굴복시킬 수는 있겠지만, 상대를 순종시킬 수는 없다. 네펜데스의 통발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질펀하게 깔려 있다. ‘death’와 ‘통발’의 결합 이미지는 죽음을 닥치는 대로, 걸리는 대로 쓸어 담는 느낌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네펜네스의 통발은 폭력성의 적재라 하겠다. 어촌에서 살아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통발은 안에 들어오면 못 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 대상한테는 치명적이다. 우리 사회가 디지털화되면서 영상물의 폭력노출지수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송명화는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이슈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겠다. 제재 자체를 간접화해야 될 수필의 주제와 잘 상관화시킨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잔인성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인으로, 부모로서,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을 적재에 담아 문학적 담론형식으로 형상화했다는 데 대해 큰 박수를 보낸다. 이로써 송명화는 에세이문예 주간, 대한민국 대표 젊은 수필가 30인 중의 한 명이라는 값에 크게 부응하고 있다고 하겠다.
Ⅳ.
송명화 수필의 가치인 미학성은 깨달음을 의미화하는 그의 수법에서 나온다. 드킨시의 말대로 훌륭한 문학 작품은 작가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고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녀는 우선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수필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과 글로 사회를 바꾸겠다는 작가의 신념이다. 진실한 삶의 접근법이 중요하다. 필자는 우선 그런 자세와 의지를 높게 평가한다. 제재를 통해 주제를 겨냥하기 위해, 그녀는 전이의 미학에 포커스를 두었다. 그리고 송명화는 ‘입상진의’의 시적 기법을 구사했다. 입상진의란 말로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동양의 전통적 시학이다.
평소 관찰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이 수필 창작에 있어 기본이다. 그래야 사찰에 들 수가 있는 것이다. 관찰-고찰-통찰-성찰로 나아가는 송명화는 예술가적 자세로 예술적 의미화 기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주제와 제재의 상관화를 이끌고 경험 속에 제재를 용해시켜 구체성을 살리고 담론층으로 끌고가서 메시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켜 독특한 미적 울림을 이끌어 내는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 근원은 다음의 진술, “네펜데스가 사회 곳곳에 통발을 벌려놓고 누구든 걸리라고 주문을 왼다. 영상폭력의 바다는 닥치는 대로 녹여버리는 네펜데스의 소화샘이다. 누가 나서서 통발의 뚜껑을 닫을 것인가.”에서 알 수 있다. ‘녹여버리는’과 ‘소화샘’을 지배적 정황으로 해서 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에서 우리는 그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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