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어떤 장로님 한 분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다니시는 교회에서 후임 목사님을 한 분 찾고 계시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여러명의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설교를 들으며 '선'을 보고 평가중이시라더군요.
그러면서 이 목사님 저 목사님의 설교를 평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해하는 "설교"가 지금 이 수준입니다.
"설교가 길다 짧다... 재미있다 없다.
저 목사님은 설교를 잘해 못해...
은혜스럽네 그렇지 않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불변의 신성한 그 어떤 것입니다.
조삼모사로 죽끓듯이 변하는 인간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감동받고 말고 은혜받고 말고 하는 등의 평가에 의해 판단될만한 것이 아닙니다.
소위 "지까짓게" 은혜를 받건 말건 "복음은 복음 그 자체로 복음"이며 설교또한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불변의 신성한 그 어떤 것입니다.
조삼모사로 죽끓듯이 변하는 인간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감동받고 말고 은혜받고 말고 하는 등의 평가에 의해 판단될만한 것이 아닙니다.
소위 "지까짓게" 은혜를 받건 말건 "복음은 복음 그 자체로 복음"이며 설교또한 그러합니다.
현대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는 "설교(Devine Revelation)"를
인간의 "웅변(Human Speech)" 정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준으로 재미있네 없네...
은혜 받았네 마네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고 은혜스럽다는 설교나
재미없고 은혜스럽지 못하다는 설교나...
거의 대부분 공통점이 있습니다.
복음이 쏘옥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경이라면,
사실 그런 수준의 설교여야만 한다면,
저는 설교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현 시대 일부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설교론,
어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세상 웅변론에 기반한 설교론이라면
그딴 설교는 교회에 필요없다고도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저 그만그만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시덕 거리면서 교제랍시고 농담따먹기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프랭크 바이올라는 자신의 저서 "교회가 없다"에서 현대 기독교의 설교는
고대 희랍 철학자들의 철학웅변에 기반한 것이라고 하며, 현행의 설교들을 혹평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건 없건... (저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만)
현시대의 허다한 설교들에서 고대희랍 웅변과의 공통점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말하는 인간들이 각자 옳다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고
듣는 인간들 또한 각자 옳다생각하는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라면 없어도 무방합니다.
설교자는 당장 가증한 짓들을 그만하고 강단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복음을 아는 형제들이 대화나누는 편이 훨씬 낫지요.
그런데... 마틴 로이드존스는 그의 책 "설교와 설교자"의
"설교라야만 한다"라는 제하의 쳅터에서
설교의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고 강한 논조로 말합니다.
교회에 성경을 풀어 가르치는 자의 직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외로히 서서 말씀을 받은 자들이
그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외로히 독대하도록 하는 것으로서의 설교'를 말합니다.
그러한 설교는 교회에 절대 필요한 것이며,
진정 "설교라야만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설교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세우신 설교자'를 통해서
나에게 전해지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설교자들이 거의 없으니 진정한 설교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 수준의 설교와 설교비평이 있고
서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것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2:13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준 성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설교자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미국에서의 "대각성" 기간에 찰스 피니, 무디 등의 설교가들의 설교는 장장 4-6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설교는 하늘의 신령한 것들로 가득했고, 인간들을 무릎꿇게 했으며,
십자가를 통해 중생케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짧네 기네 말하는 사람 없었으며...
장시간의 설교가 끝나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해 눈물로 밤을 새는 기도자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런 설교라면, '왜 설교라야만 하는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로서의 교사를 교회 가운데 두시고,
그들을 통해 말씀하심을 알면 진정 "설교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절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두 세시간 설파하는 설교 또한 필요하며,
질문 받으며 중간중간 끊기는 설교 또한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대화식의 교제 또한 설교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라 정의한다면 말이죠.
문제는...
교회 안에 복음이 희박해졌다는 것이며...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설교에 복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설교가 설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전에 다니던 대형교회당이 있었습니다.
주일 공예배 후 어떤 분이 나오시면서 그러시더군요.
"오늘은 설교가 기네, 저번에 짧고도 은혜롭던데... 투덜투덜..."
설교하는 입도 없고 설교들을 귀도 없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Preacher, John Piper
첫댓글 예전에 타카페에 써두었던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가져와봅니다...
저도 프랭크 바이올라의 책 "교회가 없다"를 다 읽었습니다.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