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말하자면
재앙 그 자체다.
말 위에서는 천하를 얻을 수 있지만
말 위에서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몸소 실천하는 인물.
딱 마오쩌둥그야말로 거시적인 모습이 전혀 없는 인물로, 전략적인 이점의 설명을 듣고도 관중을 버리고 '고향에 자랑하기 위해' 되돌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항우가 취한 행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또한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20만의 포로를 묻어버리고, 함양에 입성해서 진왕
자영을 죽이고 대학살을 자행하는 모습, 그리고 이후 제후들을 분봉하는 모습은 항우의 국가관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항우는 '천하를 아우른다' 는 의미보다는 마치
전국시대의 개념으로 진나라를 대했다. 타국을 정복하고 '외국인'을 학살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본래 관중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던 강소성 출신 유방이 관중의 사람들을 위로해서 인심을 후하게 산 부분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부분. 이후 이어지는 분봉 조치도 마찬가지다. 이때의 모습으로 보면 항우는
중국의
통일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예 이해를 못하거나 혹은 조국을 멸망시킨 진나라 때문에 군현제 등에 극도의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단, 이러한 모습을 항우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항우가 가진 세력로 문제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스스로가 초나라 귀족의 후예이자 초나라 땅에서 거병하여 그 세력이 주축이 된 항우로서는 초나라 땅이 아닌 관중을 중심지로 삼는건 불가능한 일이고, 진나라에 대한 잔혹한 모습 역시 통일 진나라와 그 제도에 반감이 극심한 세력으로서는 당연하다는 이야기. 어찌되었건 이러한 모습이 항우라는 개성의 개인적인 모습때문이든, 혹은 그 세력 자체의 모습 때문이든 초나라 귀족 가문 출신 항우가
춘추전국시대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것과 반대로 유방과 그 패거리는 오히려 그 출신 성분 때문에 이런 점에서는 한없이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런 춘추전국시대 관점으로 제후들에게 땅을 나눠준다고 해도, 실제 그 조치도 엉망 그 자체였다. 유방은 견제를 위해 파촉에 처밖아 놓았지만 항백의 설득 하나로 한중까지 지배 영역으로 퍼주는가 하면,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제나라의 장수에 불과했던 전도를 제나라 왕으로 봉하고 본래 제나라 왕을 교동왕(膠東王)으로 옮겨버린 일때문에 전영의 분노를 샀으며, 그 전영은 자신이 직접 들고 일어남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후원해서 항우가 세운 천하를 단번에 뒤흔들어 버렸다.
전영의 협조를 얻은 진여도 항우가 자신을 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왕에 봉하지 않아 불만이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이후 정말 지독하게 항우를 괴롭힌 팽월에게 항우는 아무런 봉국도 내리지 않았다. 결국 알아서 적을 만든 셈이나 다름 없는것. 항우가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씨앗은 결국 스스로가 뿌린 셈이다.
무엇보다 항우가 밥먹듯이 자행한 생매장, 대학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잘 알려진건
신안대학살 이지만, 실제 항우는 이런 학살을 여러번 자행핬다. 기록된 사례만 하더라도 다음과 같다.
- 양성 학살 : 항량 생전, 별동대로 출전하여 양성이 쉽게 함락되지 않자, 성을 함락시키고 주민들을 생매장했다.
- 성양 학살 : 유방과 별동대로 움직일때 성양을 함락하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다만 이 건은 항우 본인만의 결정인지, 유방의 동의가 있었는지, 주체가 유방이었는지 불분명하다.
- 신안 학살 : 항복한 진나라 군 20만을 생매장한 전대미문의 학살이다.
- 제나라 학살 : 제나라에서 주민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고, 포로들을 생매장해서 죽였다.
- 외항 학살 미수 : 여기서도 학살을 자행하려고 하다가, 소년의 설득을 듣고 그만두었다.
그 외에도 틈만 나면 사람을 태워 죽이거나 삶아 죽였다.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한국에도 인지도가 있는
대진제국(大秦帝国)의 저자 손호휘(孫皓暉)는 학살 사례를 보고 화들짝 놀라
"어이쿠, 이런 놈이 영웅 취급을 받다니!" 하고
노골적으로 까기도 했다. 현대에 비해 고대의 인구가 적고,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히틀러나 스탈린 급으로, 하다 못해 이 경우는 전장의 열악함과 더불어 일단은 살려서 노동력으로 쓰려고 하기도 하였지만, 일단 항우는
상황을 떠나 죽이고 봤다. 게다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까지.
물론 각종 협약 등에 체결된 현대의 전쟁과 과거의 전쟁에서 민간인 피해를 동일선상에서 놓을 순 없지만, 일단 그 당대에도 항우의 경쟁자인 유방이 함양에 입성했을때 어떤 조치를 취했고, 이로 인해 백성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기억하자. 게다가 이런 학살은 윤리적인 부분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전략적으로도 최악의 악수였다.
항우의 학살에서 분풀이 외의 목적을 찾을 수 있다면 '본보기'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학살은 전혀 본보기가 되지 못했으며, 가장 극심했던 진나라에서는 당연히 적대감이 폭발하여
한신은 유방에게 전략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더욱이 항왕의 군대가 지나간 곳은 학살과 도륙을 당하여 살아남은 것이 없게 되어 천하 백성들은 모두가 원망하며 아무도 항우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나, 단지 그의 위세에 눌려 복종하고 있는 체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겉으로는 패자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천하 인심을 잃고 있습니다."
"또한 삼진(三秦)의 왕은 모두 진나라 장수들 출신으로, 그들이 진나라 장군으로 몇 년간을 군사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싸움 중에 전사시킨 진나라 자제들의 수효는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더욱이 그 남은 군사들을 속여 제후군들에게 항복시킨 다음 진나라에 들어오다가 신안(新安)에 이르자 항왕이 20여 만에 달하는 그들을 속여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 놓고도 유독 장한(章邯), 사마흔(司馬欣), 동예(董翳) 등만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진나라의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은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오늘 항우가 그의 위세를 믿고 이 세 사람을 삼진의 왕에 임명했으나 진나라 백성들은 아무도 그들을 믿고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대왕께서 무관(武關)을 통해서 관중으로 진입하실 때, 터럭하나도 건들지 않음으로 해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하고 법삼장(法三章만을 두기로 백성들과 약속함으로 해서 진나라 백성들치고 대왕께서 진왕(秦王)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기 회음후열전 中
이후 관중은 유방의 세력권이 되었는데, 진나라 사람들이
항우와 유방 중 누가 이기기를 바랄지는 너무 뻔한 일이다. 또한 유방이 동진하고 있을때 재빨리 끝낼 필요가 있던 제나라에서의 싸움은 쓸데없는 학살로 오히려 사람들의 공분만 사고 한없이 길어지게 되었다. 일단 유방의 세력은 팽성대전으로 격파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이용한 전횡이 제나라를 다시 부활시키는 바람에 항우의 제나라 원정은 결과적으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런 항우과 굉장한 유사점을 보이는건 과거
일본군이
중일전쟁 도중 벌였던
삼광 작전(三光作戰)인데, 이 경우도 공포심으로 저항을 눌러버리는데 목적이 있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후 13살 짜리 어린 아이의 설득을 따르자 학살을 자행할 때는 그토록 저항하던 성들이 항복하는 장면은
블랙 코미디 급.
또한 항우가 황제가 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이미 실권이 없었던 초회왕을 굳이 살해한 것 역시 유방에게 명분만 주는 행위였으며, 유방이 슬금슬금 우군을 다 끌어들이는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마지막에는 거의 혼자가 되어버린 모습를 혀를 차게 될 정도.
하지만 항우는 "나를 망하게 한 건 하늘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것이 아니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날렸다. 즉 항우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절망스러울 정도다.
첫댓글 역발산기개세 항우 하지만 다굴에 장사없다는걸 보여준 대표적 사례
항우랑은 같은시대에 산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할거같아요
영웅들은 강점에는 특출나지만 약점에 있어서는 일반인보다도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음. 학살이나 진나라 멸망 이후의 행보를 보면 항우랑 그냥 개념 박힌 선비 A랑 스위치해도 패권 더 오래 유지할 것 같은데. 유방이 밉상이어도 일반 백성 입장에서는 항우보다야 훨씬 좋은 군주죠.
지난번에 봤을때는 삼국지 인물들에 비해 굉장히 빈약했었는데 많이 보충이 되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항우랑 같은 시대에 만났으면 공포 그 자체였겠죠? 흠;;
미치광이 연쇄살인마 ㅎㄷㄷ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항우는 그냥 변명할 자격따위도 없는 패배자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