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매천야록에 나오는 山人 萬印과 2代天子之地라는 알 수 없는 소문에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추리한 픽션이다.
남연군 묘는 일제의 풍수를 이용한 고도의 계략과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조선민중들에게 신앙과도 같았던 풍수를 역이용하기로 한다. 장소는 덕산의 가야사 터를 정하고 풍수는 당시 제법 이름난 산인 만인을 포섭하기에 이른다.
일제는 가야사 터가 겉보기에는 웅장하여 명당으로 보이지만, 물이 길게 빠지기 때문에 속빈 강정과도 같은 땅임을 파악한 뒤였다. 만인도 가야사 터가 웅장한 듯 보이지만 물이 곧게 빠지는 곳으로 크게 위험한 땅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이미 일제에 의해 깊이 매수당한 뒤였다.
그리고 일제는 가짜 풍수비결록을 만들어 가야산 인근에 2대천자지지가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유포시킨다.
설사 그 계획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손해 볼 것 없다. 2代天子之地라는 유언비어 자체만으로도 조선민중들의 불안감을 선동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이하응은 목숨조차 위태로운 절대 절명의 위기의식과 함께 어떻게 하든 奪神功改天命해서 안동 김씨들을 몰아내고 왕실의 위엄을 되찾겠다는 일념뿐이었는데, 萬印이라는 지사가 찾아와서는 자신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듯 “충청도 가야산에 2代天子之地가 있는데 어떠하신지요”하고 묻는다.
당시 흥선군의 풍수안목은 비록 젊은 왕족의 신분이었으나 걸출하고 영민해서 방안에서 책과 씨름하는 글 풍수의 단계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평상시 같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안동김씨들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과 자신의 욕망 때문에 천추의 한이 될 뼈아픈 판단 착오를 한다.
그길로 바로 가야사를 불 태우고 그 터에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 묘를 쓴다.
당시 흥선군도 萬印이 말한 2代라는 말뜻을 왜 몰랐겠는가?
2代라면 길어야 50~60년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몰락한 왕실을 다시 일으킬 수만 있다면...
그리고 전설과도 같은 紫微垣局 명당이 이곳 가야산 어디엔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기에 그곳을 찾아서 자신의 사후 신후지지로 삼으면 그 후부터는 紫微垣局 발복으로 거만한 청나라와 러시아 그리고 임진왜란 때 우리의 강토를 무참히 짓밟은 일본까지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웅대한 포부가 숨겨져 있던 것이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이하응이 가야산 절터에 자신의 부친 묘를 쓰자 일제는 다음 단계의 공작을 구체화 시킨다.
풍수의 이치가 어긋남 없다면 이하응 일가의 몰락은 이제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조선왕실의 파멸이다
따라서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이하응의 자식이 임금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머지는 세월이 말해 줄 것이다.
풍수를 이용한 일제의 1차 계략이 성공하자, 2차 계획을 돌입한다.
일제는 철종의 후사가 없고 또 몸이 병약한 것을 감지하고는 왕실의 가장 어른이었던 조대비와 흥선군 이하응을 연결시켜준다. 쉽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이하응의 둘째아들 명복을 임금으로 추대하기로 묵계를 세우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몰아내기로 한다.
趙大妃로서는 명복이 임금에 오르면 자신의 양자가 됨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세와 친정세력인 풍양조씨들이 복권할 수 있다는 명분이 있고이하응은 마침내 고대하던 왕실의 위엄과 스스로의 야망에 섭정을 할 요량으로 나이 어린 명복을 내세운다.
그리고 일제는 자신들의 풍수를 이용한 조선침략의 꿈이 바야흐로 시작되었으니 3자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편 萬印은 남연군 묘를 일제의 지시와 감시 속에서 무지막지하게 쇳물까지 부어가며 작업한다. 萬印은 이 모든 사실이 일제의 치밀한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다가올 조선의 앞날을 예감하고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만약 임금이 되지 않았다면 남연군 묘로 인한 모든 재앙이 이하응 일가에만 국한되겠지만, 임금일 경우에는 상상할 수 없는 끔직한 일이 조선 전체에서 벌어질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쇳물까지 부어가며 작업했기에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아예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깊숙이 숨어 버리기로 한다.
조선의 명운 따위는 관심 없다.
지긋지긋한 신분의 굴레와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일념뿐이다.
또 그들이 약속한 대일본국 風水國師로 모실 것 이라는 말에 일제가 마련해준 배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떠난다.
山人 萬印이 고종이 잠저에 있을 때 찾아와서 두 번 절을 올린 뒤 “후일 中興主가 될 것입니다”라고 축하를 하였다. 甲子年(고종2년) 초에 대원군은 萬印을 찾아 헤매다가 그를 만나서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산에서 사는 사람이 어찌 하고 싶은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海印寺 대장경 1,000부만 하사하여 주시면 소원이 없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대원군이 허락하여 간행하였다. 이때 印은 자신이 직접 간행하고 작업이 끝난 후 바닷길로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참고로 1423년 일본의 사신들이 세종임금을 알현하여 崇儒抑佛의 조선에서는 불교의 교리를 새긴 팔만대장경이 필요 없을 것이므로 자신들에게 줄 것을 요구하며 3일간 단식까지 한다.
萬印은 개인적으로 팔만대장경이 1000부씩이나 무엇에 필요했을까?
萬印이 간행한 팔만대장경은 그 후 국내에서 발견된 바 없다.
萬印을 매수하고 이용한 日人들은 더 이상 활용가치가 없고 자신들의 비밀스런 음모와 계략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운 생각에 그들 가족을 서해바다 깊숙한 곳에서 배와 함께 통째로 수장시킨다.
물론 팔만대장경은 이미 빼돌린 후이다.
훗날 일제는 자신들의 계획대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나서 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풍수의 무서운 위력에 새삼 놀라워한다. 그래서 더 이상 조선에서는 일본을 위협할 걸출한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명나라의 이여송이 했던 것처럼 온 산에 쇠말뚝을 박고 산허리를 끊으며, 조선의 산천을 철저하게 망가뜨린다.
이와 같은 일본의 음모와 계략을 간파한 풍수사가 있었으니, 그는 최선일(최지혁)이라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다.
최선일은 목숨을 걸고 흥선대원군을 찾아가 덕산의 묘 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왕실과 조선이 위태롭다고 말하지만, 그의 말은 일언지하 묵살당하고 만다. 하지만 최선일은 남연군 묘로 인한 조선의 운명을 예감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궁리 끝에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로 하고 프랑스 선교사 페롱을 찾아가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병인박해와 같은 천주교 탄압을 중단시킬 방책이 있으니 남연군 묘를 도굴할 것을 제의한다. 페롱을 통역관으로 삼은 오페르트는 남연군 체백을 이용해 조선과의 통상교섭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의도였다.
최선일은 개인적 윤리보다는 조선의 흥망이 걸린 것이기에 엄청난 도박을 결행하기로 한다. 자신의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짓이지만, 조선과 만백성을 구하는 길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도굴은 수천포의 강회와 쇳물로 철옹성같이 굳어있었기 때문에 실패한다. 최선일은 조선의 국운이 다했음을 절감하며 통분의 눈물을 뿌리며 발길을 돌린다.
“천주님! 부디 나의 예상이 틀리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후세에 전하여 삼가 지극히 경계토록 할 것입니다.“
1895년 일본의 풍수를 이용한 조선병탄 시나리오가 순조롭게 진행되던 것이 명성황후에 의해 주춤거리자 일본의 낭인들이 궁궐에 침입해 조선의 국모를 무참하게 시해하는 일이 벌어진다.(을미사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수모와 피를 토할 것 같은 분함에도 누구하나 칼을 들고 저항은커녕 꽁무니를 빼며 자신들의 자리보전에만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저 힘없는 백성들만 낫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국모의 죽음에 분연히 봉기할 따름이다.
1904년 일제는 60년간 지속된 길고 긴 작전의 마지막 절차로 남연군 묘의 알량한 龍脈조차 끊어버린다. 몇명 안 되는 상가리 주민들을 위해서 저수지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묘소까지 이어지는 고갯마루의 능선을 무참하게 파헤쳐서 둑을 쌓는데 써버린다.
마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듯이···
그 이듬해 고종황제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통한의 을사늑약에 굴욕적인 서명을 하고 만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되었는가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고종황제가 유약했던 것인가?
명성황후 총명함이 지나쳤던 것인가?
아니면 이 나라 조정대신들이 무능했던가?
그것도 아니면 이 나라 백성들의 우국충정이 부족했던 것인가?
그러나 조선이라는 배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정해진 수순에 의해 폭풍 속의 난파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단 한사람 천주교 地師 “최선일”만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을 뿐이다.
https://youtu.be/DqnVvYmCrOA